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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행복을 찾아서: 사랑 - 아낌없이 주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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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8-17 ㅣ No.950

[행복을 찾아서 – 사랑]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마태 7,12).

 

 

사랑이란

 

인간이 가진 많은 감정의 정체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물론 분노나 슬픔, 불안, 짜증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연구가 많다. 당연한 일이다. 우울 장애나 불안 장애 등 마음의 병과 관련되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긍정적인 감정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진다. 겸손이나 회복 탄력성, 인내, 공감 등이다. 조만간 인간의 감정과 관련한 미스터리가 전부 풀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조금 성급한 이야기다. 가장 기본적인 긍정적 감정이자 행동인 ‘사랑’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것이 없는데 말이다. 남녀 간이나 가족 간의 사랑에 대해서는 제법 알려졌지만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다. 흔히 ‘카리타스’라고 하는 사랑이다.

 

독일의 정신 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존경, 책임, 보살핌, 건강한 호기심’이 사랑의 요체라고 하였다. 어떤 이익이나 대가에 대한 기대 없이 다른 이에게 온전하고 따뜻한 관심을 주는 선한 행동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행동은 도무지 이성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속옷을 달라고 하는데 겉옷까지 주는 행동이 아름답기는 하겠지만, 그러다가는 곧 얼어 죽고 말 것이다. 오른뺨을 맞았는데 왼뺨을 대다가는 양 볼이 만두처럼 퉁퉁 붓고 말 것이다.

 

 

사랑과 탐욕

 

그저 도통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초월적 경지일까? 그렇다면 오히려 실망스럽다.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너무 높은 수준의 사랑이다. 그런 사랑을 주기도 어렵고, 받는 일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위대한 사랑은 겨우 성경에서나 읽을 수 있는 ‘상상의 일’이라니, 결국 우리 삶에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로마의 시인이었던 아우렐리우스 클레멘스 프루덴티우스는 사랑을 통해서 탐욕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사랑은 우리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부정적 감정, 곧 욕심을 잠재우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무조건 쌓아 두려고 하는 어두운 본성을 이기는 밝은 힘이다. 분명 존재하며 오늘도 세상 어디선가 행해지는 일이다.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탐욕이다. 물질과 관계에 대한 강력한 욕망은 풍족한 사회를 만들어 주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불행의 씨앗이 되고 있다. 남보다 더 가지려는 욕망, 더 돋보이려는 갈망은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오히려 갈증은 더 심해진다.

 

한 번뿐인 인생은 절대 채워지지 않는 욕심을 만족하게 하려는 실현 불가능한 목적으로 허비된다.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무엇보다도 많은 은행 잔고와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를 달성하는 것이 삶의 목표일까? 경주라도 하듯이 모두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지만, 이내 경기는 끝나고 결국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높이 쌓아 둔 것은 흩어지고 반짝거리는 이름은 잊힐 것이다.

 

 

사랑의 첫 번째 미스터리

 

프롬은 더 많은 것을 얻어 내고 꼭꼭 쌓아 두려는 성격을 착취형 성격과 저장형 성격이라고 했다. 탐욕으로 가득한 성격이다. 욕심은 모든 사람이 가진 보편적 본성이지만 그러한 본성에 지배당하면 정신은 점점 피폐해진다.

 

건강한 영혼을 얻으려면 세상과 하나가 되어 필연적 고독과 분리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사랑이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들고 이를 나누어 주려는 마음, 따뜻한 공감과 이해에 바탕을 둔 조건 없는 사랑이다.

 

사랑의 첫 번째 미스터리가 바로 이것이다. 남을 생각하고 남을 위하는 마음인데, 도리어 자신의 영혼을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만들어 주는 역설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개인과 세계 전체의 관계를 결정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다.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만 핵심에는 자기 자신이 있다. 내가 주는 것이지만, 도리어 내가 받는다.

 

그렇다면 스스로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타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언어도단이다. 이기적인 동기가 들어서는 순간,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는 사랑의 힘이 사라져 버린다. 다른 사람을 위한 건강한 관심이 전제되지 않으면 결국 거짓된 탈을 쓴 ‘세련된 탐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살찌우는 강력한 정신적 힘이지만, 의도한 목적이 전제되지 않을 때만 빛을 발할 수 있다.

 

 

사랑의 두 번째 미스터리

 

사랑의 두 번째 미스터리가 바로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 도움’이다. 흔히 인간의 고유한 특징으로 협력을 말한다. 인류가 이루어 놓은 높은 수준의 문화는 협력을 통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협력은 상호 호혜성이 근본 바탕이다. 주는 만큼 받는 것이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둘이 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협력은 양자에게 이익이다.

 

하지만 협력은 사랑이 없어도 가능하다. 개미도 협력하고 박쥐도 협력한다. 심지어 나쁜 짓을 하는 범죄자도 서로 협력한다. 악한 일을 위한 협력이 얼마나 쉽게 이루어지는가? 그런데 사랑이란 무조건 주는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주는 사람은 결국 손해만 볼 텐데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실천 이성 비판」에서 주관적 경험과 무관한 도덕성의 보편적 기초가 존재한다고 했다. 각자 자신의 욕망과 성향을 가진 다양한 군상 속에서 이를 관통하는 이성적 판단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나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게 하려고, 나는 다른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받기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 주라.’는 황금률이다.

 

무조건적인 따뜻한 사랑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사랑은 교환을 통해 얻을 수 없다. 주고받기를 약속하는 순간,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전제 조건이 깨져 버린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러한 사랑을 베풀어 주길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받기만 바라는 사람이 가득한 곳에서 누가 먼저 주려고 할 것인가?

 

방법은 단 하나다. 스스로 먼저 주는 것뿐이다.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았으니 받지 못해도 괜찮다. 아니 조건 없는 사랑이 ‘횡행’하는 세상이라니…. 도무지 실현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조건 없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기대하지 못한 것을 받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도 좀 미심쩍은가? 뭐 상관없다. 어차피 처음부터 대가 없이 주기로 한 사랑이 아닌가?

 

* 박한선 - 정신과 전문의. 신경 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강사로 지내며, 서울대학교 비교무화연구소에서 인간의 정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서울대학교 병원, 성안드레아병원에서 일했다.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를 펴냈다.

 

[경향잡지, 2019년 5월호, 글 박한선 · 그림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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