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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화로 만난 하느님16: 십자가 - 생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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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8-05 ㅣ No.658

[성화로 만난 하느님] (16) 십자가 - 생명나무


죄와 죽음에서 ‘구원’과 ‘생명’의 상징된 십자나무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림은 많이 보았을 것이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인들에게 지독한 혐오의 대상이었다. 당시 십자가는 저주와 공포의 표상으로 고통과 수난, 치욕과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의미하는 잔인한 사형 도구였다. 그러나 처형 도구로서의 십자가는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되며, 그리스도교 시각으로 재해석돼 공식 인호로 정립된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불명예스러웠던 십자가는 유다인들과 다른 민족에게는 걸림돌과 어리석음이었지만, 신앙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안에서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1코린 1,24)를 바라본다. 걸림돌이자 어리석음의 표지였던 십자가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와 구원의 신비를 볼 수 있다.

 

죽음의 표지인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요, 생명의 의미로 변모됐다. 또 십자가를 생명과 풍요로 가득한 구원의 상징을 담은 아름다운 생명의 나무(lignum vitae)로 표현하기도 했다.

 

파치노 디 보나구이다의 ‘십자가 나무’, 1305-1310, 패널 위에 템페라와 금, 이탈리아 피렌체 아카데미아 갤러리.

 

 

나무: 선악과 새 생명

 

예수께서는 ‘십자가 나무’라 불리는 커다란 나무 위에 매달려 있다. 목재로 잘 다듬어진 일반적인 십자가와는 달리 십자가 나무는 잎과 꽃, 열매 등이 달려 살아 있는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십자가 나무는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생명나무의 속성을 가진다. 예수가 매달린 나무 안에 죽음과 생명의 신비가 나타나는 것이다. 

 

‘십자가 나무’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한 파치노 디 보나구이다(Pacino di Bonaguida·1280경~1340)가 몬티첼리(Monticelli)의 클라라수도회 의뢰로 제작한 작품이다.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 나무의 맨 아래쪽에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고 타락하는 과정이 묘사돼 있다. 나무는 인류의 죄로부터 기인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아담과 하와 이야기 바로 위에는 두루마리를 든 모세, 성 프란치스코, 성녀 클라라, 복음사가 요한이 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에덴동산에 탐스러운 온갖 나무를 자라게 하시고 그 가운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생명나무를 자라게 하셨다’(창세 2,9)는 글을 들고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바오로 사도의 고백인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14)라는 글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명시하고 있다. 

 

클라라 성녀에는 “임금님이 잔칫상에 계시는 동안 나의 나르드는 향기를 피우네”(아가 1,12)라고 적혀 있다. 요한은 ‘다달이 열매를 내놓는 강에는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나뭇잎이 열리는 생명나무가 있다’(묵시 22,2)는 말씀을 들고 있다.

 

십자가 나무 위에 있는 펠리컨 양 옆에는 예언자 에제키엘과 다니엘이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에제키엘의 두루마리에는 ‘강가에 잎이 시들지 않고 풍요로운 과일이 열리는 과일나무가 자라고 있다’(에제 47,12)고 적혀 있다. 잎이 시들지 않는 근원이 예수인 것이다. 다니엘은 ‘튼튼하게 자란 나무가 높이 올라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있다’(다니 4,8)며 십자가 나무의 규모와 위엄을 말하고 있다. 결국 십자가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새 생명의 나무로 묘사되고 있다.

 

 

나무: 희생

 

파치노의 ‘십자가 나무’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장인 보나벤투라(Bonaventura)가 「생명나무」(lignum vitae·1259)에서 서술한 명상방법에서 영향을 받았다. 보나벤투라의 텍스트는 구조적으로 나무 형태를 띠며, 12개 가지와 48개의 장으로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 등을 언급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머릿속에 나무 하나를 그리고 명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된다. 예수의 삶을 기억하고 따라가는 동안 믿음의 가지가 자라고, 신자들은 더욱더 그리스도를 닮은 성숙한 사람이 돼 가는 명상방법이다.

 

커다란 ‘십자가-생명나무’에 예수가 매달린 줄기로부터 오른쪽과 왼쪽으로 뻗은 12개의 가지가 있다. 이것은 12사도 혹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한다. 영원성을 상징하는 아칸서스 잎이 달린 가지에 매달린 47개의 원형 메달에는 예수의 탄생부터, 성장,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을 담은 내용이 묘사돼 있다.

 

- 베르톨트 푸르트마이어의 ‘죽음과 생명의 나무 - 베른하르트 폰 로어의 미사경본’, 1481년경, 채색 필사본, 독일 뮌헨 바이에른 주립도서관.

 

 

그림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아래부터 위로 읽어나가면 된다. 성찬식 때 사용되는 성체를 연상케 하는 가지의 원형 메달은 예수의 희생을 기억하며 파스카의 신비를 드러내고 있다. 예수의 희생은 십자가 나무 맨 위에 그려진 펠리컨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아칸서스 잎으로 둘러싸인 둥지 안에 어미 펠리컨은 자신이 쪼아 벌린 가슴에서 흐르는 피로 배고파하는 새끼들을 먹이고 있다. 펠리컨의 사랑은 예수께서 피의 희생으로 인간의 죄를 구원한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하느님은 예수의 ‘십자가-생명나무’를 통해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죄의 역사를 인류 구원의 역사로 뒤바꾼 것이다.

 

 

나무: 죽음과 생명

 

나무에는 에덴동산의 나무에서 시작된 죽음과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나무에서 이뤄진 생명의 신비가 담겨 있다. 인간은 나무로 인해 죄를 짓고 나무로 인해 죄사함을 얻은 것이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대주교였던 베른하르트 폰 로어의 미사경본에는 독일 채색 필사본 화가인 베르톨트 푸르트마이어(Berthold Furtmeyr·1446 ~1501)가 한 나무에서 죽음과 생명을 표현한 작품이 있다. 성경은 생명나무와 선악의 나무를 각각 다른 듯 설명하지만, 그는 한 그루 나무로 묘사해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가운데 선악과를 상징하는 나무에는 사과와 죽음(죄)을 상징하는 해골과 생명(구원)을 상징하는 십자고상이 달려 있다. 나무 양쪽으로는 성모 마리아와 하와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열매를 나눠 주고 있다. 왼쪽의 성모 마리아는 십자가를 통한 생명-성체를, 오른쪽의 하와는 죄를 통한 죽음-사과를 선사하고 있다. 에덴동산의 나무는 생명과 죽음을 함께 지닌 한 그루로 나타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9년 8월 4일,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 ·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 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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