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과제 법적 측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08 ㅣ No.1666

[알아볼까요]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과제 법적 측면

 

 

1.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

 

지난 4월11일 헌법재판소에서는 낙태죄(형법 제269조 1항과 제270조 1항)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선고가 있었습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하여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들은 2020.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2017헌바127)라고 결정하였습니다.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는 ‘헌법불합치(憲法不合致)’ 결정입니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위헌(違憲) 결정 중의 하나로, 해당 법률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입법자의 입법 형성의 자유를 존중하고 법의 공백과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일정 기간 법률로서 그 효력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2020년 12월31일 이전까지 입법자들은 낙태죄에 대한 개정 법안을 마련해야 하며, 그때까지 낙태죄는 유효합니다. 하지만 개선 입법이 없다면, 낙태죄는 2021년 1월1일부터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헌재 결정에 따른 후속 입법 마련을 위해서 전문가를 통한 법 개정안의 논의와 발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낙태죄 위헌 여부에 관해서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의 연속적 발전 과정에 대하여 생명이라는 공통 요소만을 이유로 하여 언제나 동일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형법의 낙태죄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법익 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이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생명이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하는 인격적 주체라면, 국가와 사회와 법은 ‘모든 개인이 가지는 생명에 대한 이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은 인간 생명에 관한 기본권 보장이 보편적으로 확립되지 못하고 있으며, 억압과 불의로 인간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같은 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신 김희중 대주교님 명의로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서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라고 깊은 유감을 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강조하셨습니다.

 

 

2. 태아의 권리인 생명권

 

낙태죄 논쟁의 주된 갈등은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대립에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 두 권리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은 어렵습니다. 태아가 갖는 유일한 권리인 생명권은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본권 중의 기본권입니다. 태아는 그 자체로 인간으로 완성될 수 있는 존재이므로 국가는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임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입법자는 자기낙태죄 조항을 형성함에 있어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실제적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아니하여,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공익과 사익간의 적정한 균형관계를 달성하지 못하였다.”라고 지적하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낙태죄는 그동안 법으로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낙태죄가 사라진다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 하루 3000명 이상의 태아가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1973년 모자보건법이 제정된 이래 낙태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그에 대한 처벌은 거의 없었습니다. 모자보건법에 따라서 우생학적과 유전학적 사유로, 강간과 준강간에 의한 사유로, 그리고 산모의 건강상 사유로 낙태를 묵인해 왔습니다. 사회·경제적 사유로 행해진 낙태는 불법이지만, 우리 사회는 침묵해 왔고, 지금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법적인 장치나 사회적 교육, 그리고 제도 마련은 미흡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는 태아의 생명과 그 보호에 대해 무관심했고, 또 차별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임신한 여성을 대했습니다. 우리는 임신한 여성이 짊어진 고통과 그들이 겪는 차별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의 잘못으로 인해 생겨난 생명이 아니기에 사회가 책임지고 태아를 한 인간으로 탄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또한 수없이 행해지고 있는 태아의 죽음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것은 죄라는 사실도 인식해야 합니다.

 

 

3. 태아와 그의 부모를 위한 법과 제도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낙태죄를 폐지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 알려진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독일의 경우, 형법 218조에 낙태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고, 프랑스는 낙태에 관하여 형법(제5장 223-10조)과 공중 보건법(L2212-1~2)으로 나누어 규정하고 있고, 미국도 주마다 법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들 국가가 낙태와 관련한 상담과 설명, 또는 숙려기간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해서 태아와 산모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안전하게 아이를 낳고 키우며, 차별 없이 자신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제도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이것은 법 개정이 논의되는 현시점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회는 태아의 생명 보호와 그 생명을 선택한 임산 부모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법과 제도의 도입을 대한민국 입법부와 행정부에 강력히 촉구하면서, 이미 실행되고 있는 법과 제도(한부모가족지원법, 양육비 이행법, 미혼모부초기지원사업 등)에 대한 보완과 관리 감독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무죄한 모든 개개인의 생명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는 시민사회와 그 법률의 기본 요소가 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273)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법은 무죄한 태아의 권리를 확실하게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현재 법 개정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이때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권리를 존중하는 법을 다시 제정할 기회입니다. 형법의 낙태죄가 더 이상 존속될 수 없다면, 오히려 태아 보호를 위한 법안 발의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떠한 법이라도 “자연법과 하느님 법에 반대되는 행위들이 합법적으로, 사회 안에 침투하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된”(인간생명 23항)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법은 ‘무죄한 이들의 생명 불가침의 권리를 보호하고’(가톨릭교회교리서 2270)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현명한 정책과 지혜로운 교육에 힘을 써야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7월호, 유성현 베드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1,07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