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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두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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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08 ㅣ No.639

[레지오 영성] 두 가지 질문

 

 

여러분에게 두 가지의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 1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연말이 되니 당신 계좌에는 연초보다 3000만원이 늘었습니다. 늘어난 이 돈으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1) 이 돈을 모두 안전한 은행 계좌에 넣어둔다.

2) 펀드에 돈을 투자한다.

3) 그동안 필요했지만 하지 못한 일을 한다(예: 오래되어 엉망이 된 부엌을 개조한다).

4) 호화로운 유람선을 타고 여행을 떠나거나, 카지노에 가서 도박을 한다.

 

이 첫째 질문에 대해서 당연히 1~3번을 선택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은 던져봅니다.

 

두 번째 질문. 당신이 3000만원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이 당첨금으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안 그럴 것 같지만 실제로 이런 상황에 처해지면 대부분 4번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같은 3000만원이지만 선택이 달라집니다. 왜 그럴까요?

 

경제학자 리차드 탈러는 이를 ‘하우스 머니 효과’라고 말합니다. 우연히 얻은 수익은 위험성을 감당할 용의가 커진다는 것이지요. 어차피 행운에 의해 얻은 것이니 모두 잃어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큰 행운이 주어지니 더 큰 행운도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과감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못합니다. 결국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까지 내어 놓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은 이 ‘하우스 머니 효과’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게임머니 제공, 신용카드 보너스 카드, 통신사의 유류 혜택 등등…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주님만이 우리들에게 공짜로 주실 뿐입니다. 그런데 주님으로부터 받는 이 공짜들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공기’, 밝음을 가져다주는 ‘빛’,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는 ‘어둠’, 그밖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공짜로 받고 있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공짜로 구원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주님만이 우리들에게 공짜로 뭐든 다 주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외모가 특출해서? 성격이 좋아서?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빚을 지셨기 때문일까요?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받으려고 그런 것일까요? 그러한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단 하나의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공짜 없다. 주님만이 우리들에게 공짜로 주실 뿐

 

주님께서는 이렇게 큰 사랑을 우리들에게 주시는 이유를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5)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것으로 착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으로 주님의 모습을 따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단 한 번도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높은 지위에 올라가서 사람들을 다스라는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삶을 마치고 나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필요한 것은 사랑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받는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큰 사랑을 하라고 하지요. 그 큰 사랑은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사랑이었습니다. 받는 사랑이 아니라 다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예전에 실내 수영장에 갔다가 물속에서 하는 체조인 아쿠아로빅 수업을 우연히 본 적이 있습니다. 물속에서 하는 운동이지만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도 할 수 있고, 수영처럼 힘들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고 하지요. 그래서일까요? 수업이 막 시작하려고 하는지 한두 명씩 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었습니다. 걷는 것이 힘들어 보이는 분들도 계셨고, 수영장 안으로 내려가는 사다리를 한 발씩 내딛는 것도 불안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들 침묵 속에서 힘들어 하는 표정으로 수업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잠시 후 수업이 시작했습니다.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까요? 서로서로 얼마나 많은 말씀들을 나누시는지 그리고 웃는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물속에서 움직이니 그만큼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았고, 통증이 사라지니 웃으며 옆의 분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 운동을 하면 아직 근육이 덜 풀려서인지 뻐근함이 가득입니다. 인상도 쓰게 되고,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러나 계속 운동을 하다보면 언제 몸이 불편했냐는 듯이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즐기게 됩니다.

 

 

주님 곁에서, 주님의 뜻 실천할 때 그 사랑 안에서 행복한 삶 살아

 

주님을 따르는 것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주님 안에 푹 빠져있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편안함을 느낄 수가 있을까요? 주님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혀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누구나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승강기에 처음 보는 사람과 단 둘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편안하게 원하는 층까지 옮겨주는 고마운 승강기이지만 승강기가 느리게만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가장 불편한 공간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그 좁은 공간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꽉 붙어있으면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면 언제 어디서나 편안함을 느끼면서 힘차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주면서 함께 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서로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관계가 될 수 있을까요? 나 역시 사랑하면 됩니다.

 

우리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곁을 결코 떠나지 않으시면서 사랑을 주시고 계십니다. 이 주님과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큰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우리만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됩니다. 주님을 떠나지 않으면서 주님의 뜻을 실천해 나갈 때 그 큰 사랑 안에서 행복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벌써 7월입니다. 이제 날이 더워지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늘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공짜로 사랑을 주는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7월호, 조명연 마태오 신부(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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