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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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화로 만난 하느님14: 삼위일체 하느님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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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08 ㅣ No.653

[성화로 만난 하느님] (14) ‘삼위일체 하느님의 형상’


성부는 연로하신 분, 성령은 비둘기 모습으로 상상

 

 

- ‘은총의 옥좌 - 캉브레 미사경본’, 12세기경, 채색 필사본, 프랑스 캉브레 시립도서관.

 

 

수 세기 동안 화가들은 하느님의 모습을 그렸지만, 구체적인 대상이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징과 알레고리의 비유적 치환에 기초해 형상화해 왔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근본적인 교의 중 하나인 ‘삼위일체’도 화가들에게는 참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位格)으로 계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형상화한다는 것은 힘든 과제였다.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의 모습은 인간적인 묘사가 가능했지만, 하느님을 묘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느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성경에도 그분의 모습을 보게 되면 죽으리라는 말씀이 있었기에 하느님을 눈으로 보는 어떤 형상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화가들은 하느님을 삼각형이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손, 굽어보는 눈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 다음에는 구약에 나오는 마므레의 참나무 아래에서 아브라함을 방문한 세 천사의 모습으로부터(창세 18,1) 하느님의 가시적인 모습을 떠올리며 삼위일체인 하느님을 형상화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삼위일체의 도상은 하나의 고정된 규범적 모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표현 방식들이 나타났다. 보통 화가들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깊게 느낄 수 있도록 같은 모습을 한 세 사람(혹은 똑같은 천사 모습)으로 묘사하거나, 성부를 ‘연로하신 분’(다니 7,9)으로 나타내 영원하신 분임을 드러내거나,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 등으로 제작했다. 12세기 경 제작된 캉브레(Cambrai)의 미사경본 채색 필사본(彩色筆寫本, 삽화가 들어간 필사본)에는 처음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떠받치고 있는 성부 하느님의 모습이 등장한다. 신성한 하늘과 빛 그리고 영광을 의미하는 커다란 만돌라(Mandola)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위로 비둘기 모양을 한 성령과 노인의 모습을 한 성부가 수직을 이루며 배열돼 있다.

 

성부 하느님은 화려한 옥좌에 앉아 양팔을 벌려 십자가 위 예수를 떠받치고 있다. 성부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 예수를 세상에 파견한 분으로, 영원으로부터 스스로 존재한다. 따라서 성부가 흰 수염이 달린 노인으로 묘사된 것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함을 상징한다.

 

성부 하느님 앞에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은 그의 양쪽 날개 끝으로 성부의 입과 예수의 입을 연결하고 있다. 성경에서 성령이라는 말은 고유한 형태가 아닌 무정형의 단어로, 바람(風), 숨, 입김(氣息)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루아’(Ruah)로 사용된다. 

 

채색 필사본의 화가는 성령을 비둘기 이미지로 표현했다. 성부의 입에서 나오는 숨(입김)의 이미지로 성령을 나타낸 것이다. 성령은 하느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거룩한 기운이다. 비록 지금은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예수께서 힘없는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하고 있지만, 예수는 성부께 부여받은 인류 구원의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께서 행한 업적과 가르침, 즉 예수의 전 생애는 성령이 함께 활동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성부가 걸친 옷 색은 예수가 입은 것과 동일하며 커다란 녹색 십자가 또한 성부와 예수를 연결하고 있다. 녹색은 영적 재생을 의미하는 색이다. 녹색 십자가는 예수가 고통을 당할 때마다 성부께 자신의 영을 맡기고 힘과 위로의 원천인 성부는 예수를 사랑의 손으로 받쳐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사본 아래는 ‘그러므로, 인자하신 아버지’(Te ígitur, clementíssime Pater)라고 적혀 있다. 이 필사본이 미사경본의 어느 부분인가를 알 수 있는 글이다. 이것은 미사의 성찬례 중 감사기도 시작 부분으로 사제는 계속해서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간절히 청하오니, 이 거룩하고 흠 없는 예물을 받으시고 ✠ 강복하소서”라고 이어간다. 이후 성령을 통해 빵과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성부(노인)와 성자(십자가 상 사람)와 성령(비둘기)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역할과 활동을 하고 있지만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거룩한 공간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네 복음서의 상징과 십자가 위에 있는 어린양’, 11세기, 상아, 23.5x13.7x0.9cm,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옥좌를 에워싼 네 생물의 형상 

 

화면의 사각 모서리에는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에제 1,5)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공간인 만돌라를 에워싸고 있다. 요한묵시록에 따르면 네 생물이 가장 높은 옥좌를 에워싸고 있다고 한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묵시 4,7) 사람, 사자, 황소, 독수리는 그리스도교에서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복음서를 상징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상아 부조로 만들어진, 네 복음서를 상징하는 생물들은 십자가의 교차점에 자리한 ‘하느님의 어린양’인 예수를 에워싸고 있다.

 

마태오복음서는 인간 삶의 여정인 족보로 시작하기 때문에 사람으로, 마르코복음서는 요한 세례자의 광야 설교로 시작하기에 광야의 왕 사자로, 루카복음서는 사제 즈카르야가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장면부터 시작하기에 황소로 나타낸다. 

 

또 요한복음서의 신학이 날카롭고 깊다는 의미에서 요한복음서는 독수리로 표상된다. 독수리만이 조류 가운데 유일하게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가톨릭신문, 2019년 7월 7일,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 ·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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