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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유사종교: 신흥유사종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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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07 ㅣ No.1297

유사종교 ▶ 신흥유사종교에 대하여 - 신흥유사종교에 대하여

 

 

1.1.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구원파.. 우리는 뉴스나 여러 매체를 통해 이러한 그리스도교를 표방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그 집단이 일으킨 문제들에 대해 들어왔다. ‘아, 그런 이들이 있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하고는 무방한 현상들로 치부하며 외면해 왔다. 실례로 모 교회가 남태평양의 피지로 400여명의 신도들을 이주시킨 후 거기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고발이 뉴스의 한 꼭지를 차지해도, ‘그런 일이~, 그 사람들은 정신적 문제나 사회 경제적인 이유가 있을 거야~’ 등으로 반응하며 사회면의 또 다른 뉴스들 중의 하나로 바라보는 이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이 교회만이 아니다. 1,000여 명을 브라질로 이주시켜 농장을 운영하는 교회도 있고, 우리 교구 지역의 어떤 개신교는 남아공으로 이주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다 유사하다. 곧 말세가 될 것이며, 그 혼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자신들이 제시하는 약속의 땅이라며 신도들에게 재산을 헌납하고 이주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반응하고 있을 때, 곧 주변의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상태로 머물고 있는 동안 수많은 이들이 복음을 왜곡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이들에 빠져들고 있다.

 

1.2. 우리나라의 신흥종교들은 여러 계통이 있다. 구한말의 동학에서 발전한 천도교와 그 영향 아래에서 발전한 증산교, 원불교와 같이 민족주의와 결합한 종교들부터, 미륵불 사상을 바탕으로 발전해 온 불교 계열, 현세적 복락을 우선시하는 무속 계열, 청학동의 갱정유도 같이 유교계열, ‘남묘호렌게쿄’라는 주문을 외우는 창가학회와 천리교 등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계열까지 다양하다.

 

1.3. 우리 교회와 신앙에 직접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은 ‘성경을 들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복음을 왜곡하는 이들이다.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 하나님의 교회 세계 복음협의회(안상홍 증인회), JMS, 한국기독교 에덴 성회,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 승리제단, 중앙 예루살렘교회, 천국복음전도회, 엘리아복음선교회, 만민중앙교회, 예수중심교회, 구원파, 천부교(옛 전도관), 통일교, 마리아의 구원방주(나주) 등 국내에서 발생한 것들부터, 로사리오의 성모회(성 미카엘회),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라고 불리는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등 미국에서 온 종말론 성향의 교회들이 그 대표들이라 할 것이다.

 

1.4.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 현상들 중, 근래에 등장해 교회와 사회에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이나 그 집단을 ‘신흥유사종교’(줄여서 유사종교)라고 통칭하며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 ‘국가나 정부가 이러한 신흥유사종교들에 대해 개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이렇게 문제를 일으키는 종교들을 그대로 두는가?’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자유국가이다. 기존의 종교 입장에서 ‘잘못된 교리’를 전파한다고 해서 그것을 제한할 이유나 근거가 법적으로 없다. 그러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경우, 수사와 법적인 조치들이, 교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범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사종교에 현혹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경계하고 주의해야 한다. [2019년 6월 16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신흥유사종교 – 용어정리

 

 

2.1. 신흥종교(新興宗敎)라는 말은 기존의 종교가 아닌 새로이 발생한 종교라는 뜻의 말이다. 대체적으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이후 발생한 종교들을 일컫는다. 한국전쟁 이후 신흥종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 안에서 분화되어 나왔다. 이들은 그 교리나 사상, 종교적 의례, 교단의 조직 등이 아직 체계화되지 못하고 고착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 지도자 또는 지도 집단의 몇 마디 말로 그 주장이나 종교적 실천이 바뀌기도 한다.

 

2.2. 이단(異端)은 기존의 종교 안에서 정통적인 입장과 다른 교리 해석으로 그 공동체를 해치는 집단과 그 주장을 말한다. 개신교에서 ‘이단’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 단죄와 해소가 그리스도교 교리의 문제일 때는 이러한 판단이 정당화 될 수 있다. 그러나 때로 개신교 교파간의 논쟁이나 기득권 문제, 물질적인 이유 등 교리와는 무관한 경우도 있다. 이는 우리나라 개신교계가 여러 교파로 끊임없이 분화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 더 복잡하다.

 

2.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현재 유사(類似)종교라는 말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먼저 반사회성이 가장 중심적인 항목으로 꼽힌다. 즉 성윤리의 문제나 말세 개벽 등 현세를 부정하는 태도가 반사회성의 지표로 떠오르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형사상의 불법행위이다. 신도들의 성금을 유용하는 것은 공갈이나 사기횡령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교리상 황당무계하거나 비과학적인지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기성종교의 교리를 혼합하였을 경우에도 유사종교라 판명한다.” ‘유사종교’라는 말에서 보이듯이 이들은 기존의 종교와 닮은 것이 있지만 다른 행태를 보이는 이들을 일컫는다. 이 용어가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민족종교운동(천도교, 대종교 등)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 사용에 있어 부정적인 입장이 있다.

 

2.4. 사이비(似而非)는 유사종교보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그 한자말이 의미하듯이 ‘비슷하지만 아닌 것’ 곧, 종교를 표방하지만 그 본질이나 목적이 종교와는 무관한 이들의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교주에 대한 영웅-신격화와 지나친 숭배, 자신들의 절대성 강조와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 기존의 종교에 대한 공격적인 비판(기존 종교의 부패 강조), 내부의 일들(교리, 집회장소, 재산, 신앙활동, 분쟁 등)에 대한 강한 비밀주의 등의 특징을 보인다. 때로 이들이 일으키는 사회적인 문제와 불법적인 행위(홍보활동을 위한 주거침입, 사기와 속임수, 책자나 동영상, 집회나 설교를 통한 공포감의 조성, 가출이나 이혼의 조장, 강제합숙과 집단 동원, 헌금 갈취, 재산의 유용과 착복, 신도들의(무임금/저임금) 노동력 착취, 신도의 사생활 통제, 탈퇴자나 반대자 등에 대한 폭력 행사)로 정부로부터 제재나 수사, 집단의 해체와 지도자의 구속과 실형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2.5. 여기서 우리는 공통적인 것을 발견한다. 바로 기존의 사회와 종교들에 대한 비판이다. 사회가 혼란하고 갈피를 잡지 못할 때(교회를 포함한), 기존의 권위들이 방향성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그 혼란에 휩싸이거나 또는 원인이 될 때, 교회가 희망이 되지 못할 때 이러한 이들이 더 득세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신앙을 왜곡한다며 배타적 입장에서만 이들을 대할 것이 아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삶과 실천에 대한 도전으로서 이들을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2019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유사종교의 발생 원인

 

 

2.1. 사회적 원인

 

신흥종교들이 발생하는 시기를 살펴보면 유사한 사회 현상들이 나타난다.

 

⓵ 급격한 사회의 변동과 불안이 증가할 때 나타난다.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 6.25 전쟁기와 그 직후 등, 사회적으로 혼란이 극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을 구원해주겠다며 자신을 따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했고, 그들을 숭배하는 이들이 모여들어 종교를 형성했다.

 

⓶ 현대사회의 물질만능주의, 물량주의(더 많이 더 크게), 개인주의의 팽배와 무한 경쟁은 사람들 사이의 연대의식을 약화시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실패한 이들, 패배한 이들은 주류에서 밀려나고 소외된다. 자신의 자아를 찾고 삶의 의미를 되찾고자 한다. 유사종교들은 소규모 집단이라는 특성으로 강한 집단의식을 강조한다. 거기서 소외를 겪던 이들은 위로를 얻으며, 비록 그 논리나 행태가 이상하다 해도 일종의 ‘행복감’을 느끼며 그 안에 빠져드는 것이다.

 

⓷ 기존 권위의 약화도 그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다원화이다. 다원화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내게 해주고, 사회의 변화와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런데 반대로 단번에 결정하고 방향을 정해 이끌어가는 강력한 권위를 사라지게 했다. 이 속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하는 교주는 권위 있는 모습으로 비치고 의지할 곳, 나아갈 방향을 찾는 사람들을 현혹하게 된다.

 

⓸ 가치관의 변화도 한몫을 한다. 예전에 절대적인 것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면, 지금은 모든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본다. 이는 개인의 취향이나 주장에 대한 존중이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때로 아예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체적 판단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거나 자아의식이 완전히 형성되지 못한 이들은 방향성을 잃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게 된다. 유사종교들이 파고드는 틈이 바로 이곳이다.

 

⑤ 상대적 박탈감을 꼽기도 한다. 경제 성장과 발전은 사회를 번영하게 하는 것 같지만 언제나 그늘을 동반한다. 그 그늘에 있는 이들은 성장과 발전의 혜택에서 멀어지고 더 많은 박탈감을 갖는다. 그 박탈감을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을 유사종교들이 파고든다.

 

이러한 사회적 원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소외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감에 찬 이들, 유행하는 말로 ‘인싸’(insider)는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지만, 약한 이들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바란다. 누군가 자신을 이끌어주고 인정해주길 바란다. 그러한 심리를 파고들고, 그러한 마음을 키우도록 유도해 유사종교들이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가 드러난다. 바로 주변의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약한 이, 소외된 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벗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9년 7월 7일 연중 제14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유사종교의 발생 원인 2

 

 

2.2. 종교적 원인 1

 

사회의 문제만이 신흥유사종교 현상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 교회 내부의 문제도 이러한 현상에 신자들이 빠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⓵ 신자들의 증가와 대형교회의 출현은 교회 안에 익명화와 소외를 가져왔다. 굳이 내 이름을 밝히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교회에 다닐 수 있다(익명화). 그런데 교회에 나와 보면, 어울리는 사람들끼리 인사하고 함께 하고 있다. 그런 자리에 끼지 못하는 이들(냉담했던 이, 이사 온 이, 신영세자, 소심한 사람 등등)은 교회 안에서 배타적인 분위기를 느낀다. 함께 앉아 있지만 홀로 있는 느낌을 받는다(소외). 복음에 따른 삶을 꿈꾸며 행복을 느끼겠다고 왔는데 반대로 불행함을 얻는 것이다. 그러한 이들에게 유사종교로 끌고 가려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⓶ 교회가 커지다 보니 많은 재정이 요구된다. 화려함과 편리함, 확실한 냉난방 등, 신자들은 집에서 누리는 것을 교회 안에서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다보니 교회 지출의 상당부분이 교회 내적인 수요를 위해 쓰인다. 한편, 주간 평일의 모임이나 모임 이후의 식사 등은 여유가 있는 이들이 아니면 힘들다. 신앙도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것은 자연히 여러 이유로 시간이나 물질의 여유가 없는 이들을 교회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⓷ 신앙 교육의 부재 : 첫영성체 준비자, 세례 예비자, 견진 준비자가 아니면 교리를 배우는 시간이 없다. 예비자는 처음 듣는 이야기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다 그것도 짧은 시간에 배우다 보니 세례 이후에 대부분의 교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견진 때도 비슷하다. 교리지식이 신앙의 전부는 아니지만 기초적인 교리마저 모른 채로 신앙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엉뚱한 교리를 들고 접근하면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구분할 수 있겠는가?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교리교육이 제대로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리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신,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구세주)께 대한 고백이다. 주 그리스도님께 대한 신앙고백-믿음에 이르지 못한 채로 세례를 받은 이들이 주님을 부정하며 새로운 구세주를 내세우는 유사종교의 논리에 이끌려 신앙에서 멀어지고 있다.

 

⓸ 기복적 현세적 신앙 : 신앙 교육의 부족함은 신앙을 잘못 이해하게 이끈다. 대표적인 것이 현세적 복락이다. 그리스도교는 현세적인 복락을 말하는 종교가 아니다. 물론 은총(!)은 그 모든 것을 허락하지만. 우리 신앙은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에 있다. 우리 신앙은 나의 욕구 해소를 위한 것, 곧 ‘나를 위한 종교’, ‘나 중심’이 아니다. 우리 신앙은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중심이시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현세적인 복락을 얻고자 한다. 마음의 평화가 가장 대표적인 표현 중 하나일 것이다. 구원-하느님을 직접 만나고 그분의 얼굴을 직접 바라보고 그분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한 희망이 우리 신앙인데, 그것을 놓치면, 현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는 소리가 좋은 말로 들리기 마련이다. [2019년 7월 14일 연중 제15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유사종교의 발생 원인 2

 

 

2.2. 종교적 원인 2

 

⑤ 종교인들에 대한 실망 : 김수환 추기경, 이태석 신부 등은 신앙인들에게 자랑이며 모범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모델로서의 성직자, ‘교회의 어른’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추문과 관련된 이, 구태적인 방식으로 교회를 운영하려 하는 이, 고압적인 태도로 신자들을 대하는 이 등을 지적하며, 성직자나 수도자에 대한 실망을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실망은 교회를 떠나게 하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한 원인이 된다. 신흥유사종교들은 이러한 단면들을 들어 ‘교회가 부패했다’, ‘복음이 없다’는 말로 교회를 공격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마치 순수한 양인 것처럼 가장한다.

 

⑥ 신앙과 삶의 분리 : 주일 교중미사가 끝나고 성당 마당을 벗어나면, 좀 전의 신심 깊은 이는 사라지고 자신의 이익과 주장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뛰어 다니는 이로 ‘변신’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신앙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고, 울타리 밖은 다른 논리와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이중적인 삶의 모습, 그것이 신앙을 자꾸만 변형시키는 원인이 된다. 복음에 따른 삶은 교회 울타리 안과 밖 어디서든 추구해야 한다.

 

⑦ 신앙의 열성과 갈망 : 신앙에 대해 좀 더 알고 더 느끼고 더 확실하게 체험하고 싶은 것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미사에 참여하고 피정이나 교육에 참가하고, 성지 순례도 가고, 강연과 도서와 영상을 통해 배우기도 한다. 그런데도 기존의 교회 안에서 그 갈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사람들을 다른 길을 찾는다. 이런 이들에게 ‘쉽게 알 수 있다.’ ‘쉽게 체험할 수 있다.’ 또는 ‘더 자극적이다.’ ‘더 뜨겁다.’ ‘거기서만 이루어진다.’ ‘이 사람을 통하면 된다.’는 말은 큰 유혹이 된다.

 

또는 갈망은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밋밋한 신앙’, 또는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묵시 3,16) 상태에 있는 이들이다. 그래도 그 안에는 ‘나도 무언가 신앙인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깊은 갈망이 있다. 그 갈망을 건드리며 유사종교가 파고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나 스스로 하는’ 기도와 침묵, 삶에 대한 깊은 반성, 하느님의 뜻을 찾는 묵상이 없으면, 다 흩어지는 말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그것은 나의 신앙, 나의 체험이 아닌 남의 것일 뿐이다. 신앙의 갈증이 있다면, 어딘가를 또는 누군가를 쫓아갈 것이 아니라, 멈추고 내려놓고 나 스스로 주님 앞에 나가야 한다. 내가 일어나 주님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지적은 교회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신앙인들이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야 하는지 자주 놓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신앙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그분을 통해 얻는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이를 위해 성사가 있고, 축제와 전례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새겨야 한다. [2019년 7월 21일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한국 신흥 유사 종교의 특징 1

 

 

3.1. 성경에 대하여

 

3.1.1. 그리스도교의 성경과 계시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계시의 원천이다. 계시(Revelation)란,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당신이 누구신지 우리 인간에게 드러내 보이시고 알려주시는 것을 일컫는다. 이를 통해 하느님은 사람들이 당신의 신비에 참여하도록 이끄신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과 무관한 분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삶과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며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고, 인도하는 분임을 알려준다.

 

3.1.2. 계시, 예언, 묵시

 

일부 사람들이 ‘계시’를 ‘미래의 사건을 미리 말하는 것’(흔히 말하는 예언)과 혼동하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안에는 ‘예언’과 ‘계시’에 대한 몰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미래에 벌어질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예언은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며,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려 하느님의 백성다운 삶으로 나아오라는 초대’이다. 곧 예언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에 따른 회개로의 초대이다.

 

묵시(Apocalypse)는 계시나 예언과 다른 것이다. 묵시는 박해나 배교의 위험에 처한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계획을 말하며, 그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는 권고의 말을, 박해자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신앙의 언어로 암시적으로 전달하는 문학기법이다. 다니엘서의 일부와 요한묵시록이 대표적인 묵시문학이다.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 묵시록”을 개신교에서 “계시록”이라고 부르며, 오해의 소지가 발생했다. 일부 사람들이 이 책을 ‘미래의 사건을 말하는 예언서’라며, 현재에 벌어질 일에 대한 예고라고 주장하는 오류가 나타났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이들은 역사를 구약시대/신약시대/ ‘계시록 시대’라는 시대구분론까지 만들어냈다. 그러나 요한 묵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그분이 세상의 구원자라는 것을 선포하는 “신약성경의 일부”이다.

 

3.2. 근본주의

 

3.2.1.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문자 하나하나가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문화-역사-언어적 해석에는 관심이 없다. 그대로를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것이 오역이나 심각한 오류를 범한 것이라도, 그대로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들은 특정한 구절이나 단어에 집착한다. 앞뒤의 문맥에는 관심이 없다. 특정 단어(본래의 의미는 상관없는 한글 번역)에 집중하여 그 의미를 과장하고 자신들의 논리를 펴는 데 이용한다. 이러한 이들을 만났을 때 앞뒤로 몇 장을 천천히 읽어보면 이들의 오류를 금세 찾을 수 있다.

 

3.2.2. 성경은 긴 역사를 거치며 그 당시의 문화와 역사를 그대로 안고 있는 언어(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로 작성되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 역사문화적 배경과 고대 언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바탕이 된다. 하지만 성경은 문맥 안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계획’이라는 큰 틀 안에서 ‘앞뒤의 단락과 더 큰 단위를 참고하며 읽으면’ 난해한 구절들도 이해할 수 있다. 협조자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28일 연중 제17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한국 신흥 유사 종교의 특징 2 – 종말론

 

 

유사종교들의 교주들은 대부분 정식 신학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앞선 사이비 지도자들의 저서나 강연, 그들과의 직접적인 만남과 추종 등의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나름대로 변형 발전시키며 이론화하고 있다.

 

4.1. 시한부 종말론과 천년 왕국설

 

유사종교들이 자주 이용하는 것이 ‘천년왕국설’이다. 성경이 말하는 창조는, 성경을 거꾸로 거슬러 계산해보면, 6,000년 전에 일어난 일이며, 제 칠천 년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천 년, 안식의 때가 열린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날짜를 계산하면, 종말의 날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한부 종말론이 등장한다.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도 이 시한부 종말론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성경은 구체적인 역사, 실제 역사(歷史)를 전달하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하느님이 누구신지, 그 하느님 앞의 인간은 누구인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무엇이며, 하느님께서 인간과 이루시고자 하는 바(구원)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성경의 관심은 정확한 역사가 아니라, 하느님 구원의 계획과 활동에 놓여 있다. 그래서 때로 역사적 사건을 말하지만, 전혀 역사와 무관한 것들도 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시간을 계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4.2. 조건부 종말론

 

조건부 종말론자들은 일정한 조건이 채워지면 종말이 온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주로 144,000명설, 곧 자신들의 신도 수가 144,000이 되면 종말이 시작된다는 주장을 편다. 신천지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신천지는 20만이 넘었다!)

 

4.3. 파괴적 종말론

 

시한부나 조건부나 사이비 종말론은 구원이 아니라 파멸을 말한다. 살아남는 자들은 오로지 자신들 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일종의 공포감을 심어 자신들을 따라오게 만든다. 파괴적 환난의 때에 특정한 장소로 도피해야 한다거나 특별한 물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는 이들도 이런 부류다.

 

4.4. 그리스도교의 종말론

 

마지막 때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주님이 가르쳐주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 아신다.”(마태 24,36; 마르 13,32) ‘주님의 날’, ‘마지막 때’, ‘심판의 날’ 등의 표현으로 성경에 표현되는 이날은, 주님께서 직접 나타나 당신을 보여주시는 날이다. 이날은 주님 앞에서 모든 부정적이고 악한 것들이 사라지는 날이며, 동시에 미완성의 것들이 완성되고 부족한 것들이 채워지는 날이다. 이날은 주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는 날이다.

 

우리의 종말론은 이처럼 구원론에 바탕한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 피 흘리려 목숨을 바치심으로써 이루신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 바로 마지막 날이며, 예수님 재림의 날이다. 곧 종말은 파멸의 날이 아니라 완성과 구원의 날이다.

 

덧붙여서, 성경에서 말하는 파괴적 종말에 대한 말씀은 회개로 이끌기 위한 경고, 곧 구원으로 초대하는 말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기 바란다. [2019년 8월 4일 연중 제18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한국 신흥 유사 종교의 특징 3 – 무속 신앙과 민간 신앙의 결합(종교혼합주의)

 

 

5.1. 한국에서의 유사종교들은 무속과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신령한 세계와 접촉한다.’는 ‘특정 인물(교주)’과 만나서 그를 통해 ‘치유나 은사, 축복을 받는다.’고 말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 경우, 교주가 영매나 무당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교주의 입신 체험(성령 체험, ‘피가름’, 두루마리 사건과 같은 환시적 체험), 망아(忘我)나 황홀경에의 도달, 현세적 복락의 약속, 기성종교 교리의 수용과 변형, 범신론적 세계관, 치유-방언-예언 등을 그가 신과 소통하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성경을 펼쳐 들고 이야기하지만, 마치 무당이나 점쟁이가 불상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무속에다 그리스도교를 뒤섞은 것일 뿐이다(이런 것을 종교혼합주의syncretism라고 한다). 예수님을 말하고 성경을 펼친다고 다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나자렛 예수님에 대한 고백으로 이끌지, 우리 시대의 한 사람(!)을 신격화하도록 이끌지 않는다.

 

5.2. 한국인들이 민간-무속적인 것에 익숙하다는 점이 이러한 이들이 폭넓게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미신적 행위들’(사주, 관상, 손금, 궁합, 별자리, 이사나 결혼에 좋은 날(손 없는 날), 점, 철학관, 타로, 운세, 토정비결,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행동, 해나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 등)이나 ‘미신적 금기 사항들’(다리를 떨면 복 나간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지 마라, 밤에 휘파람 불지 마라, 문지방을 밟지 마라, 밥상 모서리에 앉지 마라, 밥그릇에 숟가락을 꽂지 마라), ‘일상의 언어 습관’(전생에 무슨 죄가 있다고, 귀신은 다 뭐하나, 다시 태어나면 ~하리라), 또는 유행이라고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좋다며 ‘남 따라 하는 것들’(기가 나온다는 돌이나 재료, 인도식 요가와 명상, 심신을 건강하게 해준다는 특별한 음악, 우주의 기운이나 자연의 기 등 뉴에이지에 속하는 것들)에 우리가 너무 쉽게 끌리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5.3. 건강하든 병들었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의 뜻에 순명하는 것이 신앙의 핵심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점쟁이나 무당이 말하듯이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사는 이들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께 대한 고백을 통해 하늘나라의 시민이 된 자들,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자들로, 하느님의 계획안에 사는 이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운명의 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아 그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

 

5.4. 다른 한편, 우리에게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미신과 불교의 영향에서 형성된 문화와 생활습관, 일상 언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무심하게 따라갈 것이 아니라, 신앙인의 눈으로, 신앙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에 부합하거나 신앙을 전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수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야겠지만, 반대로 우리의 신앙에 저해되거나 반대되는 것이 있다면, 수정하고 변화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도전해야 한다. 언어도, 삶의 형태도, 문화도 다 복음화의 대상이다. [2019년 8월 11일 연중 제19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한국 신흥 유사 종교의 특징 4 – 교주의 신격화

 

 

신흥 유사종교들은 자신들의 지도자(교주)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6.1. 교주는 특별한 사람

 

첫째 유형은 교주가 선택받은 자라는 것이다. 성령을 통해 직접 계시를 받는다거나, 하느님의 대전에 갔다 왔다거나, 예수님을 만났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자신을 찾아와 자신의 죄에 물든 피를 빼내고 예수님의 피로 바꾸어주셨다(피가름)거나, 예수님이 자신에게 예수님의 능력을 전달해주었다거나, 하늘에서 내려온 (성경) 두루마리를 받아먹고 성경을 통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6.2. 재림 예수

 

다른 유형은 교주가 ‘재림한 예수’라고 주장한다. 묵시록에 등장하는 표현들, ‘황금 등잔 사이에 서 있는 자, 하느님의 아들, 쌍날칼을 가진 자,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자, 승리하는 이(이긴 자), 어린 양, 하느님의 인장을 지닌 자, 흰 말을 탄 이, 쇠 지팡이를 지닌 자, 동방의 의인’을 교주에게 적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표현은 ‘한국인 누구’가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6.3. 교주 신격화와 그 이유

 

교주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를 신격화 – 예수님과 동급화하기 위한 작업이다. 아니, 이러한 신격화의 더 깊은 배경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구원을 부정하고 실패한 일로 치부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밀어내고 새로운 구원자 - 자신들의 교주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6.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 1,22-23) 우리 신앙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고백이다. 주일마다 고백하듯이,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곧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사건을 통해 우리를 위해 수난하시고 피흘리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해주시는 분이시다.

 

이미 예수님께서 ‘속이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셨다.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여쭈었다. “저희에게 일러 주십시오.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스승님의 재림과 세상 종말의 표징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누구에게도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마태 24,3-5; 참조 마르 13,4-6; 루카 21,7-8)

 

이러한 유혹자들,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이들을 이기는 힘은 기도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2019년 8월 18일 연중 제20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한국 신흥 유사 종교의 특징 5 – 기성 교회 비판

 

 

1. 유사종교들은 기존 교회의 문제들 – 성 추문, 물질 관련 비리, 교회 내 권력 다툼, 교회 세습이나 집단 이기주의 등을 강조하며, 현재의 교회가 부패했다고 비판한다. 심지어 교회를 ‘탕녀 바빌론’이라고까지 부른다. 일부 유사종교 집단에서는 교회의 추문들과 비판의 목소리를 자료로 정리(신문 스크랩, 인터넷을 통한 검색 자료 등)해서 보여주기까지 한다.

 

2. 사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교회 안에도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정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고 드러난다. 범법 행위만이 아니라, 반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문제까지 일으키는 이들이 있다. 신앙을 찾아온 이들은 자신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이러한 추문 앞에서 실망한다.

 

3. 이러한 비판은 일면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 목적이 교회의 쇄신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 비판의 이면에는 자신들의 집단이 기존의 교회와는 다르며, 소위 ‘성경적 순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 주장은 교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실망한 이들을 유혹하기 위한 발판이다.

 

4. 반면, 그들은 자신들의 집단에 대한 공격이라고 판단되는 여러 문제 제기들(교리, 사회 윤리적 문제, 가정문제, 재산문제, 성범죄 등)에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소송이나 시위 등을 감행한다.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방영이 예고되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넣어 방송을 못하게 하기도 하고, 신문사나 방송국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하거나 시설의 점거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반강제적인 집단행동은, 자신들의 비리가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신도들에게 자신들의 집단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이것이 열성을 드러내는 길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추종자들이 자신들의 집단에 제기되는 문제들로 인해 흔들리지 않게 유도하며, 탈퇴를 막는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다.

 

5. 교회는 순수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죄인’이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이들,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필요한 이들이 모인 곳이다. 죄인이며 부족한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주시는 하느님을 찾아와 용서와 자비의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순명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그래서 교부들은 교회를 ‘죄인들의 공동체’라고 불렀다.

 

그러나 교회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에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이 쇄신하고 변화하기 위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또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주님은 이러한 교회 안에 성령의 은사를 베푸시고 다양한 성인들을 일으켜 세우심으로써 교회가 성장하고 하느님 나라의 증인이 되도록 이끄신다.

 

6. 교회 내부에 문제들이 생겨나고 그것이 드러나는 것은 분명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죄에 대한 인식이며, 이는 회개와 쇄신의 기회이기도 하다.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며 겸손하게 새로운 변화의 길을 찾아가는 교회, 그것이 진정 ‘주님의 제자들의 공동체’의 모습이다. 비판은 성장을 위한 것이어야지 파괴를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19년 9월 8일 연중 제23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한국 신흥 유사 종교의 특징 6 – 기타

 

 

1. 소규모 집단

 

유사종교들은 수십만에 이르는 집단도 있지만, 대부분 100-200명 내외의 소규모 집단이다. 이러한 규모의 특징은 깊은 인격적 만남과 상호 이해에 바탕한 강한 상호 결집력으로 이어진다. 규모가 커진 집단들도 지역마다 작은 단위의 소집단을 만들어 초기의 운영 방식을 이어가게 한다. 그 안에서 신도들은 이 집단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일종의 ‘행복감’(집단 소속감을 통한 안정감)마저 얻는다. 그래서 일부는 이 집단이 사이비라는 것을 알지만, 이러한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그대로 머물러 있다. 신앙의 이유가 아닌 인간적 관계에 얽혀, 인생을 망치는 그물에 스스로 갇혀 있는 것이다.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고 관계를 끊어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

 

2. 비밀주의

 

이러한 집단들은 그 교리나 실천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규모라는 이유도 있지만, 비의적인 교리나 실천, 헌금과 재산의 활용, (비)윤리적인 부분 등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일종의 ‘비밀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비밀주의는 의문을 품거나 탈퇴하는 이들이 등장할 때 문제가 된다. 집단의 비밀이 새어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들은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 부드러운 방법부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까지 사용한다. 이른바 ‘악에 물든’ 이들을 감금하거나 폭행을 가하기도 하고, 탈퇴한 이들의 집까지 찾아가 협박하기도 한다. 미국의 ‘인민사원(Peoples Temple of the Disciples of Christ 1953-1978)’, 한국의 ‘오대양’(1987) 등은 집단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간 대표적인 예이다.

 

3. 민족주의

 

유사종교들은 ‘선민의식’(뽑힌 사람들)을 강조한다. 한반도가 세계 변화의 중심이 되고, 한민족이 세계를 다스리게 될 것인데, 뽑힌 이들이 그 중심이 될 것(임금이 되어 다스린다)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다른 나라의 유사종교들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국의 ‘전능신교’는 중국 한족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새로 선택된 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선민사상의 바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스라엘이 실패해서 한(韓)민족이 선택되었다는 주장과 동학에서 출발한 ‘후천개벽’ 사상과 연결되는 주장이다. 민족주의적 선민의식이 민족적 정체성의 확립이나 특정 교주 추종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줄지는 몰라도, 성경이나 그리스도교 전통과는 무관하다는 말이다.

 

주님은 민족의 경계를 넘어 모든 이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셨다(마태 28,19).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 민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는가가 핵심이다. [2019년 9월 15일 연중 제24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성경과 신앙고백

 

 

그리스도교는 나자렛 예수님, 복음과 역사가 증언하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신앙고백에 기초한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읽고 교회의 가르침을 들으며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아=구세주)라는 고백에 이르고 그를 통해 구원의 길로 들어선다.

 

그런데, 성경을 펼치고 그 말씀을 읽으며 예수님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다 그리스도교는 아니라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가 거리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 듣고 보는, 또는 직접적인 만남으로 마주치는 많은 유사종교 추종자들은 성경을 들고 있지만, (우리의)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만일 누군가 다가와 성경을 펼치고 예수님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우리가 믿는 그 예수님’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유사종교에 빠진 이들은 ‘우리 신앙의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도자(회장, 목자, 선생 등의 호칭으로 불리는 이들, 흔히 교주)를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의 영을 받았다기도 하고, 성령의 화신이라고도 하고, 성경이 말한 ‘오실 분’이라고도 하지만, 결국에는, 우리 신앙의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도자가 현 세상에 나타난 구원자라는 것을 주장하려 그런 말을 늘어놓는 것이다. 우리 신앙의 예수님이 구원자가 아니라는 것은 그분이 그리스도(=메시아=구원자)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 않기에 그들의 종교 예식에서, 많은 경우,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신앙고백 -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유사(!) 그리스도교에서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논리(교리)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본적인 ‘하느님의 자기 계시’(당신이 누구신지 하느님께서 보여주시고 알려주시는 것)는 성경에 담겨 있다. 이렇게 성경에서 발견하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활동, 곧 말씀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에 대한 앎을 체계적,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교리이며 신학이다. 곧 교리와 신학의 출발점은 하느님이시다. 그런데 유사종교는 하느님이 아니라, 그 지도자(교주)의 체험과 삶에서 나온 것, 곧 (인간) 교주에게서 나온 것을 성경을 이용해 설명하고 있다. 그가 깨달은 것이 성경에 있다는 식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주변에서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고 그들이 다 그리스도인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체험하고 있다. 책에서, 강단에서, TV나 영화에서, 스님의 설법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거나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나자렛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이들이다. 이 믿음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아야 한다. 그 길은 성경, 특히 복음을 자주 읽고 묵상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때 우리는 어떤 개념이나 상상의 주님이 아니라, 계시된 말씀,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구체적인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으로 나아갈 수 있다. [2019년 9월 22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의정부주보 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현대 유사종교의 뿌리 1

 

 

‘유사 그리스도교’의 추종자들은 교주가 특별한 사람이며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한다(8월18일 연중 제20주일 주보 참고). 그런데 그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들이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앞선 다른 사이비 교주들에게서 배운 것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에는 그들의 뿌리와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일제 강점기 1920~30년대 개신교가 성했던 북한 지역에서 ‘신령파’(신비 체험을 강조하는 이들)의 바람이 불었다. 유명화, 백남주, 이호빈, 황국주 등이 이용도를 앞세우고 원산을 중심으로 ‘예수교회’를 설립 활동하다 감리교단의 제재를 받았다. 평안북도 지역에서는 장로교회의 권사 김성도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일명 ‘새주파’(새로운 주님을 모시는 이들, 성주교회)가 등장했다. 신비체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 여인은 [죄의 뿌리는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 아니라 남녀의 관계, 곧 음란이 타락의 동기다. 예수님은 돌아가시지 않고 뜻을 이루어야 했는데 억울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재림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는 게 아니라 여인의 몸을 통해 오시는데, 한국으로 오신다. 그러면 만민이 한국을 신앙의 종주국으로 알고 찾아오게 된다.]는 주장을 했다.

 

이 신령파에 푹 빠져 있던 사람 중의 하나가 김백문이었다. 그는 1940년대에 경기도 파주로 내려와 ‘야소교1) 이스라엘 수도원’을 세우고, 서울과 경기도에서 추종자를 모았다. 그는 [성신신학]과 [기독교 근본원리]라는 책을 써서 새주파 김성도의 이론을 퍼뜨렸다. 한편 정득은이라는 여성이 나타나 ‘성혈전수’(피가름 - 정화된 자의 피를 먹여 다른 이를 정화하는 행위)또는 ‘영체교환’(정화된 자와의 성관계를 통한 정화)을 주장하게 된다. 김백문과 정득은의 영향을 받은 이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문선명과 박태선 장로이다. 문선명은 [원리강론], 박태선은 [오묘원리]에서 이들의 이론을 베끼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1950년대에 신령파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자신들의 교단을 세우기 시작한다. 평양에서 신령파 신도들을 모아 활동하던 문선명은 한국전쟁기에 부산으로 내려가 추종자들을 규합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1954)를 세운다. 박태선은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1955)를 설립한 후 1957년부터는 ‘신앙촌’(부천, 남양주 덕소, 부산 기장)을 만든다. 그는 자신을 ‘동방의 의인’, ‘감람나무2)’라고 주장하며 마침내 예수님을 부정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입신체험, 방언, 치유 등의 신비체험을 강조하는 이들이 용문산기도원, 삼각산기도원 등에 모여 박수와 노래, 통성기도, 안수 등의 열광주의적 운동을 벌인 것도 이때이다.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이들을 따라다니던 이들이 다양한 종교단체를 세워 분열되기 시작한다. 문선명의 통일교 계열의 생령교회, 청수교회, 생수교회, 우주신령학회 등과, 박태선의 전도관 계열로 한국기독교에덴성회, 호생기도원, 대한기독교장막성전, 천국복음전도회, 재창조교회, 동방교,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 등이 등장한다. JMS의 정명석은 통일교의 전도사 출신이고, 신천지의 이만희는 20대 후반에 전도관에 들어갔다가 유재열의 장막성전을 거쳐 다시 거기서 나온 백만봉의 솔로몬 재창조교회까지 따라갔다가 나이 오십에 신천지증거장막을 세웠다.

 

1) 야소: 예전에 예수님을 한자로 이렇게 표현했다.

2) 올리브나무. [2019년 10월 6일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현대 유사종교의 뿌리 2

 

 

신령파의 영향을 받은 김백문, 박태선 계열의 인사들이 분열하며 사방에서 구세주를 자처하던 1960년대에 이들과는 다른 계열의 신흥 유사종교들이 나타난다.

 

 

구원파

 

60년대 초, 선교사 딕 욕(Dick York)과 케이스 글라스(Kays Glass)가 한국에 와서 ‘선교학교’를 연다. 여기에 참여했던 이들이 소위 ‘구원파’를 형성한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아닌, ‘자신이 이루는 깨달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에게 “당신은 거듭나셨나요? 구원을 받으셨나요?”라는 질문으로 다가가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이들은 깨달음의 순간 의인이 되는 것이기에 이후에 회개(죄의 고백과 용서를 청함)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권신찬과 그 사위인 유병언은 ‘기독교복음침례회’를 만들고 세모그룹을 통해 사업을 벌이며 추종자들을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라고 강요하게 된다. 이에 반발한 이요한이 거기서 나와 안양에 ‘서울중앙교회’(대한예수교침례회)를 세운다. 한편 케이스 글라스의 설교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박옥수는 ‘기쁜소식강남교회’(대한예수교침례회)를 세우고 ‘기쁜소식선교회’와 대학생과 청소년을 목표로 하는 ‘IYF’(국제청소년연합)를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이 침례회라는 명칭을 쓰지만 정통 침례교회와는 무관하다.

 

깨달음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주장은 그리스도교의 것이 아닌 이교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님의 은총으로 구원된다’.

 

 

안상홍 증인회

 

부산에서 안상홍 목사가 1964년 ‘하나님의 교회 예수 증인회’를 세운다. 안상홍은 주일을 지키는 것, 크리스마스, 십자가 등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다며, 구약의 율법이 말하는 ‘안식일을 지키고, 구약의 절기축제 특히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상홍 사후(死後), ‘안상홍 증인회’는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 교회’와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로 갈라졌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것이 후자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이 육신을 입고 나타난 성령이라고도 하고 육화한 ‘아버지 하나님’이라고도 한다. 현재 이 집단의 대표로 활동하는 장길자는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1988년, 2000년, 2012년에 안상홍이 강림하며 종말이 온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가끔 ‘주일이 아닌 안식일(토요일)을 지켜야 한다’는 이들이 있다. 바로 제칠일안식일교회나 하나님의 교회에 다니는 이들이 그렇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부정하는 이들이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안식일 다음 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며, 사도시대부터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안식일 다음 날’ 신자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전례력을 이루는 축제들은 예수님에 대한 기억이며 기념이다. 예수님의 육화, 공생활, 수난과 부활, 승천과 다시 오실 희망(재림)을 주일을 중심으로 일 년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기억하고 기념한다. 주일은 ‘작은 부활절’로서 예수님께서 구원자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날이다. [2019년 10월 13일 연중 제28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미국에서 유래한 종교들 1

 

 

재림파

 

1844년, 미국 침례교회의 윌리엄 밀러가 다니엘서에 따르면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님의 재림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며 수많은 신봉자를 끌어모았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실현될 리 없었다. 이 ‘대실망(The Great Disappointment) 사건’ 이후 그 신봉자들이 갈라져서 새로운 종교들을 세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재림파 윌리엄 밀러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엘렌 화이트가 대실망 사건 이후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며, 흩어지는 재림파 신도들을 다시 모아들여 새로운 교단을 만들었다. 이들은 엘렌 화이트가 보았다는 환시와 계시의 말을 권위 있는 말로 받아들였으며, 1860년부터 자신들의 집단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Seventh Day Adeventist Church; SDA)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구약의 안식일(토요일)을 지켜야 구원받는다.’, ‘영혼불멸과 지옥존재는 거짓이다.’ 등의 주장을 한다. 실천적인 면에서 육식을 피하고 채식을 하라고 권고한다(예전에 TV에 나와 채식을 권고하던 이상구 박사가 안식교 신자였다).

 

한국에는 1904년에 들어왔다. 일제 강점기에 교육과 병원 사업을 통해 선교활동을 펼쳐왔다. 삼육학교, SDA어학원, 출판사 시조사, 삼육병원(옛 위생병원), 삼육식품 등을 운영하고 [The Change(변화)]라는 잡지를 보급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부활과 성령강림의 날인 ‘안식일 다음 날’ 곧 ‘주간 첫날’에 초대교회 때(사도 20,7; 1코린 16,2; 묵시 1,10)부터 모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찬미하며, 빵을 떼어 나누어 먹었다. 안식일 준수를 주장하는 것은, 주님 부활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는 것이며 신약의 실천과 교회의 전통을 부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의 증인’

 

19세기 말 안식일교의 이론을 수용해 변형-발전시킨 인물이 등장했다. 그가 바로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인 찰스 러셀이다. 그와 추종자들은 ‘파수대’라는 잡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전하고 있다. [삼위일체 부정 - 예수님은 단지 피조물 - 천사이며, 성령은 하느님의 활동력이라며, 예수님의 신성과 성령의 위격성을 부정한다. 또 안식교와 마찬가지로 ‘영혼의 불멸과 지옥의 존재’를 부정한다. 여호와의 증인 14만 4천 명만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출발 때부터 1914년을 종말의 해라고 주장하다가, 이루어지지 않자 1925년, 1975년 등으로 날짜를 바꾸어 발표했다. 그러다가 지금은 교리를 수정해서 ‘1914년 이미 예수님이 영적으로 재림했다.’고 말한다. 수혈거부, 군대에서의 총기거부 등으로 여러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전도인’(정식신도)이 되면 전도를 해야 한다. 단계가 올라가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보조 파이오니아(50시간/월), 정규 파이오니아(840시간/년=70시간/월), 특별 파이오니아(120시간 이상/월)] 그래서 그렇게 ‘파수대’와 ‘깨어라’를 들고 집으로 찾아오고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에 맞추어 성경을 재해석 번역한 [신세계역 성경]을 들고 다닌다. 한국에는 1912년에 들어왔으나, 일제에 의해 해산되었다가 6.25 이후 다시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 [2019년 10월 20일 연중 제29주일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미국에서 유래한 종교들 2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

 

미국인 조셉 스미스 주니어가 기도 중에 천사의 안내로 발견했다는 [몰몬경]을 출판(1830년)하며 시작된 종교이다. 이들은 ‘몰몬경’이 기원전에 이미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전한 히브리인들의 역사(기원전 600년 – 기원후 421년)가 기록된 책으로, 그들이 다른 민족과 겪은 역사와 몰락 과정,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아메리카 발현과 메시지 등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몰몬경’ 외에도 ‘값진 진주’, ‘교리와 성약’을 ‘성경’과 함께 종교적 경전으로 받아들인다. 설립 초기부터 신정정치체제, 일부다처제(20세기 초에 없어졌다) 등의 실천적 측면 때문에 미국인들로부터 강한 비판과 직접적 공격(무력충돌)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현재의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는 1956년에 공식적으로 진출했다.

 

‘인간 영이 출생 이전부터 영속적으로 존재한다’, ‘아담의 원죄가 전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시온이 아메리카 대륙에 세워진다’ ‘초대교회의 조직과 체계를 회복한 것이 자신들이다’ ‘현재도 살아있는 선지자에 의해 계시가 주어진다’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 외에도 ‘가정생활의 중시’, ‘윤리적 순결주의’ ‘죽은 이를 위한 대리 침례의식’ ‘매월 첫 주의 금식’ ‘해외 선교사 파견’ 등의 실천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료 영어 교육과 미국 유학 주선 등의 방법으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은 구약과 신약을 담고 있는 [성경]이 유일하다. 다른 모든 문헌은 성경의 가르침과 부합해야 교회 안에서 인정을 받는다. 역사적 진위가 확인되지 않는(거의 창작으로 보이는) 몰몬경 같은 다른 책자를 경전의 위치에 올려놓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그들이 그리스도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계시, 곧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완성되었다. 새로운 계시란 없다. 지금 교회가 내놓는 가르침은 단지 계시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해석일 뿐이다.

 

 

로사리오의 성모회(베이사이드파)

 

주일 미사가 끝나고 성당을 나설 때, 스카풀라와 함께 성모님의 메시지를 담았다는 유인물을 나눠주는 사람들을 보았을 것이다. 이들은 1970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 뉴욕의 베이사이드(Bayside)라는 곳에서 베로니카 루에켄이라는 여성이 받았다는 성모님과 예수님, 성인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들이다. ‘성 미카엘회’, ‘로사리오의 성모회’ 등으로 자칭하지만, ‘베이사이드파’라고 부른다. 이들은 ‘묵주기도를 포함한 기도의 생활화, 매일의 성경 독서, 순교신심, 결혼의 중요성, 가정에서의 신앙교육, 생명 존중’ 등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도 말하지만, [무릎을 꿇고 입으로만 하는 영성체, 손으로 하는 영성체 금지, 부적처럼 스카풀라나 분도패 등의 착용, 다가오는 환난에 대비한 통조림, 담요, 물의 준비, 1964년 이전의 성경 소유,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전례의 회복] 등의 주장과 [666, 바코드와 생체칩, 십자군 기도, 우주선 UFO] 등과 관련된 황당한 말까지 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사회의 변화와 발전, 교회의 학문 연구의 결과물, 현대 교회를 이루게 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결정’ 등을 수용하지 못한 데다가 종말론적 착각이 결합한 데서 온 것이다. 전통적인 것을 말하는 듯하지만, 결국 이들도 ‘종말론자’로서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것을 말하는 집단이다. 진실과 거짓을 섞어말하는 이들은 사기꾼이며 사이비이다. [2019년 10월 27일 연중 제30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신천지는 이만희(1931년생)에 의해 시작된 신흥유사그리스도교이다. 이만희는 박태선 장로의 ‘전도관’의 추종자였다. 그 후 유인구-유재열 부자가 이끈 ‘증거장막성전’에 참여했다. 1980년 이 단체가 해산될 때 벌어진 여러 고소 고발 사건으로 이만희도 실형을 선고받아 3년 정도 집행유예 기간을 보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 ‘신천지’를 시작한다(1984년, 신천지 추종자들은 이때를 원년으로 삼아 ‘신천지 몇 년’(2019년은 신36년)이라고 표기한다). ‘천국비밀 계시록의 실상’, ‘종교세계의 관심사’, ‘천지창조’ 등의 책을 출간해 자신들의 교리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만희가 깨달아 전한다는 신천지의 교리나 성경풀이 방법 등은 앞선 사이비 지도자들이 펼친 이론을 변형 발전시킨 것이다. ‘한국에 등장하는 마지막 시대의 구원자’, ‘이긴 자’, ‘동방의 의인’, ‘새로운 감람나무’, ‘어린 양’ 등의 호칭, ‘비유와 상징으로 봉인된 성경 말씀을 풀어내기 위해 짝이 되는 말씀을 찾아야 한다’, ‘계시록의 일곱 봉인이 말세가 되면 진리의 성령 안에서 풀리게 되며 하나님의 비밀이 드러난다’, ‘자신들을 따라 오는 자만이 천상의 영들과 결합하여 영생하게 될 것이다’, ‘14만 4천 명의 신도들만이 육체영생하게 될 것이며 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등의 주장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주장은 김백문, 박태선, 유재열, 백만봉 등 이만희에 앞서 활동한 사이비 교주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론화한 것일 뿐이다.

 

신천지는 1990년대부터 이른바 ‘무료성경신학원’을 열어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하고 있다. 짝풀이-비유풀이 방식에 따라, ‘씨’(사람의 씨, 짐승의 씨)는 말씀, ‘나무’는 사람, ‘새’는 성령이라는 식으로 성경의 말씀에 대한 해석과 풀이, 성경과 인간의 역사가 ‘배도-멸망-구원’이라는 역사의 순환을 이루고 있으며, 그에 따른 시대별 구원자가 등장했다는 역사관, 묵시록(계시록)에 전해진 예언들이 우리 시대에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실상 교육 등을 하고 있다. 이 교육과정은 결국 이 모든 것이 이만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신격화로 이어진다. 현재 20만이 넘는 신천지 신도들은 이만희를 따른다면 이 세상에서 영생하게 될 것이라는 헛된 희망(망상)에 빠져 있다.

 

신천지는 전국을 12개 지파로 나누고, 신학원(센터), 교회, 문화단체 등의 위장 단체(겉으로는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단체)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천지일보, 하늘문화평화광복, 자원봉사단체 만남 등이 대표적이다.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성경 공부하자며 접근하는 소극적 전도방식과, 거리에서 전단지 등을 나눠주거나 자원봉사활동을 펼치는 적극적 방식 등으로 전도하고 있다. 문화강좌, 심리상담 등을 통해 접근하여, 신학원(주 4회, 3시간/1회)으로 이끈다. 젊은이들이 ‘딱 떨어지는 듯한 설명, 어릴 적부터 익숙한 학원식 강좌와 암기교육, 그 과정에서의 세뇌로 인한 망상의 형성’ 등으로 쉽게 빠져들며, ‘구역원’ 간의 상호연락과 인간적 친밀감, 탈퇴할 경우 영생에서 제외된다는 두려움 등으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오로지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감언이설로 포장했다 해도 ‘나자렛 예수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말하는 자는 그리스도교가 아닌 사이비이다. 남의 말만 듣지 말고 스스로 깊이 있게 숙고하는 것도 이러한 사이비에 걸려들지 않는 방법 중 하나이다. [2019년 11월 17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는 안상홍 증인회(10월 13일자 주보 참조)에서 나온 것이다. 안상홍은 자신이 이 시대에 온 ‘성령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모아 1964년 “하나님의 교회 예수증인회”를 세웠다. 그러다가 1985년 (죽지 않을 것이라던) 안상홍이 사망한 후, 본래의 부산교회와 수도권의 교회가 갈라서게 된다. 이때 수도권의 추종자들은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로 개칭했다가 후일에 지금의 이름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로 바꾸었다.

 

이들은 안상홍을 하느님의 자리에 앉히고 ‘아버지 하나님’이라 부르며, 또한 사람이 남자와 여자이듯, 하느님도 남성과 여성이 있다며, 서울 지역에서 안상홍을 동반하며 전교 활동을 하던 ‘장길자’라는 여인을 ‘성령의 신부’, ‘어린 양의 신부’, ‘새 예루살렘’,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곧 이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안상홍’과 ‘장길자’ 두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기도할 때, ‘우리 주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한다. 이들은 성경보다 안상홍이 썼다는 [진리책자]를 내부적으로 더 높게 본다. 개신교 성가를 개사해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등장하는 부분에 ‘안상홍’을 넣어 노래 부른다. 또 여자들은 우리의 미사보 같은 것을 쓰고 예배에 참석한다.

 

한편 이들은 안상홍이 죽은 지 3년 후에 재림할 것이라고, 곧 1988년에 종말이 온다고 했다가, 수정해서 1994년, 다시 1999년, 또 2012년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시한부종말론). [구약의 절기 축제 중 ‘유월절’(파스카축제)을 지켜야 한다, 주일이 아닌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지키면 안 된다, 십자가를 세우면 안 된다] 등을 주장한다.

 

[멜키세덱 출판사]와 watv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하고 있다. [샛별 선교원]이라는 조기교육 기관은 4세부터 7세까지의 어린아이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며, 아이들에게 ‘안상홍 하나님, 장길자 하늘 어머니’ 등의 교리를 암암리에 가르치고 아이들의 부모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편 [메시아 오케스트라]의 문화활동과 다양한 봉사활동(환경, 아동, 노인, 난민 구호)을 펼치고 이를 자신들의 종교를 홍보하는 데에 이용하고 있다.

 

2인 1조로 구성된 전도팀이, 자신들의 봉사활동과 관련된 영상물이나 신문, 잡지 등을 보여주기도 하고, ‘기독교 교리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다며, 교리에 대해 묻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름, 성별, 나이, 연락처를 기재하도록 유도한다. 기성교회에 대한 비판과 성경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로 현혹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이끌려 들어가면 반복적인 교육과 발표훈련이라는 방식을 통해 세뇌되어 그들의 말을 무조건 따르게 된다.

 

우리는 ‘이천 년 전 예루살렘에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나자렛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는다. 그래서 십자가 아래 모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분이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여 주일에 모여 주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같은 샘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성경책을 들고 말하고 아무리 선한 행동(봉사활동)을 하더라도, 우리 신앙의 예수님이 아닌 다른 구원자를 말하는 이들은 사이비이며 구원의 길에서 떨어뜨리려는 자들이다. [2019년 11월 24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기독교복음선교회 CGM(Chritian Gospel Mission) 일명 JMS

 

 

기독교복음선교회, 일명 JMS는 통일교 출신의 정명석(1945년생)이 1978년에 만든 종교단체이다. 처음에는 애천(愛天)선교회 혹은 애천교회라 했다가 세계청년대학생MS연맹으로, 90년대 중반에는 국제크리스천연합, 동서크리스챤선교회라 칭하다가 1999년 이후 기독교복음선교회로 개칭했다. JMS 신도들은 섭리(攝理 Providence) 교회라고 부른다. 교인들끼리 부를 때는 섭리인, JMS 역사는 섭리역사라 한다. 정명석의 말을 모은 ‘잠언집’을 중요 서적으로 삼는다. 본부는 충남 금산의 월명동에 있다.

 

통일교에서 나오다 보니, 통일교의 <원리강론>을 베껴서 자신들의 교리를 만들었다. “성경 이야기”에서 출발해 ‘30개론’이란 교리를 가르친다.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인간이 영과 혼과 육으로 갈라진다고 한다. 이는 다음에 이어지는 영적 타락/육적 타락에 대한 것과 영적 구원/육적 구원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위한 바탕이 된다. 또 영/혼/육을 나누고 정신세계를 다시 마음/정신/생각/혼으로 구분하는데, 이는 성경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의 문선명의 말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동양철학에서 온 것이다.

 

인간의 타락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김백문-문선명 등 앞선 사이비 주창자들의 말을 따라, ‘하와가 사탄과 통정해서 영적인 타락을 했고, 다시 아담-하와의 육체적 관계로 육적인 타락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죄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바라보는 성경의 시각이 아닌, 성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타락론은 구원론과 이어진다. 예수님을 통해 영적인 구원만 이루어져서 육적인 구원을 이루어줄 새로운 사명자가 필요하다며, 여러 시대에 걸쳐 그러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시대의 구원자는 정명석이라고 한다. 결국 모든 이론은 교주 정명석(영어 이니셜 JMS. 그런데 이를 Jesus Morning Star의 약자라며 정명석을 예수님과 동일시하고 있다)의 신격화를 위한 것이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을 주 공략층으로 삼고 전교한다. 이들은 문화선교라고 해서 음악이나 스포츠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남자들에게는 기타나 드럼을 가르쳐준다거나, 스포츠 특히 축구를 하자며 불러내고, 여자들에게는 재즈, K-pop 댄스, 응원단(치어리더), 모델 등을 제안하면서 다가온다. “오직 ‘주님’(정명석을 말한다)께만 자신을 바치겠다.”는 서약을 한 젊은 여신도들은 ‘상록수’라는 특별관리 그룹에 들어가게 된다. ‘영매’를 통해 접신하게 하고 그것을 ‘신비체험’이라고 부른다(무속의 신내림과 같다).

 

교주 정명석은 여러 여신도를 성폭행한 것이 드러나 수배된 뒤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하다가 붙잡혀 2009년부터 10년의 징역형을 살고, 2018년 출소해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인간을 영과 혼과 육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진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신 후, 거기에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시자, ‘생명체’가 되었다는 창세기의 말씀(창세 2,7)은 인간이 영과 육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닌 전체로서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말한다. 구원도 영 따로 육 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인(全人)으로 맞게 될 것이다.

 

모든 사이비 그리스도교는 ‘시대별 구원자론’을 전개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불완전한 구원을 이루어서 다른 구원자가 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다 사이비이다. [2019년 12월 1일 대림 제1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신앙의 고백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칭하는 이들은 이전부터 많이 있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유럽처럼 복음을 일찍 받아들인 나라들에서부터 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스스로 시대의 구원자라는 이들이 나타나 그리스도인들을 홀리고, 복음과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게 해왔다. 이는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이다.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누구에게도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 ... 그때에 누가 너희에게 ‘보라,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다!’, 또는 ‘아니, 여기 계시다!’ 하더라도 믿지 마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큰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해 둔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광야에 계시다.’ 하더라도 나가지 마라. ‘보라, 골방에 계시다.’ 하더라도 믿지 마라. (마태 24,4-5.23-26)

 

예수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유혹(‘떼어놓다’에서 온 말)이다. 성경을 들고 찾아오든,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오든, 훌륭한 언변과 놀라운 능력을 보이더라도,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자들은 거짓말쟁이며 유혹자이다. 이러한 유혹자를 알아보고 그들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굳센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신앙-믿음에 따른 삶에 대한 것이다.

 

신앙은 ‘무엇을 아는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가 아니다. 신앙은 주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이다. 곧, 주님과의 관계에 그 기초가 놓여 있다. 신앙은 지식도 아니며, 실천도 아니다. 신앙은 우리보다 먼저 당신을 열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우리보다 앞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 그분을 알아 뵙고 그 앞에 무릎 꿇는 것이며, 그분의 이 놀라우신 ‘우선적 사랑’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 그 속에서 그분에 대해 배우고, 그분의 뜻에 따른 삶의 길을 걷는 것이다. 곧 신앙한다-믿는다는 것은 ‘주님의 우선적 사랑 앞에 사랑으로 응답함으로써 주님과 우리 사이에 유일한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마주치는, 그리스도를 사칭하며 세상의 구원자인 양 하는 이들의 유혹에 흔들리는 이들은, 신앙을 ‘주님과의 관계 맺음’이라는 것을 놓치고, 자꾸 앎과 행함(지식과 실천)에만 매달리다 그렇게 된 것이다. 사랑의 주님을 찾지 않고 지식을 추구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데에 집중해서 그런 것이다.

 

지식과 실천은 분명 신앙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길이고 세상 안에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길이며 신앙을 튼튼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님,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놓으신 하느님의 아드님,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주님께 대한 믿음이며, 그분이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초대하신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2019년 12월 8일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유사종교 ▶ 신앙의 길과 세상의 길

 

 

유사신흥종교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길은 무엇일까?

 

첫째로, 그리스도 신자라는 정체성을 간직하고 살아가야 한다. 세상의 흐름대로 따라가지 말고, 신앙인으로서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세상의 길은 그리스도인의 길과 다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미 하느님 나라(천국)의 시민으로서 이 세상을 사는 이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다운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그들처럼 말하고 그들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의 빛으로 바라보았을 때 아무리 살펴보아도 복음과 맞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아니라는 말이라도 꺼낼 수 있어야 한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간다면, 어찌 자신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늘나라의 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보고 듣고 느낀 다음에 생각해야 한다. 내 삶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말과 소리, 사건과 사고, 인간관계,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의견과 소식 앞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평가하며 판단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한다. 주님의 자녀다운 판단과 표현은 무엇인가 떠올려보고 그것을 스스로 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로, 신앙생활에 충실하게 임해야 한다. 우리 신앙을 살아가는 길, 곧 말씀, 전례, 성사, 기도, 실천의 다섯 가지 길을 균형 있게 살아가야 한다. 성경을 자주 읽고, 미사를 포함한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고해성사를 정기적으로 하며 필요할 때면 병자성사를 청하고, 매일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고, 이웃 사랑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하려 말고 매일매일 조금씩 이루려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순간순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억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신앙을 잘 살아가는 길이다. 이 길에서 가장 우선으로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하는 것은 기도이다. 세상의 말과 흐름, 유혹과 악에 맞서 당당하게 서기 위해서는 주님의 은총이 절실히 필요하다. 꾸준히 기도하는 이는 주님을 찾는 사람이며, 주님의 보호 아래 머무는 자이며, 주님의 은총을 입는 자이다.

 

셋째로, 주님 안에 희망을 두는 것이다. 주님께 대한 희망,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묵시 7,17; 참조 이사 25,8; 묵시 21,4)는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이 ‘믿음의 희망’ 안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해석한다. 그래서 지나가고 사라져버릴 현세적이고 즉각적인 것들에 매몰되지 않는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신앙의 길을 꾸준히 걸어간다. 소음 속에서도 주님의 소리를 알아듣고, 혼란 속에서도 주님의 손길을 알아챈다.

 

유혹은 더 교묘하게 다가와 우리를 흔들 것이다. 유혹이 닥칠 때면, 사도들처럼 외치라!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그리고 청하라!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2019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의정부주보 5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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