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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광주인권평화재단: 교회가 5·18 광주를 기억하는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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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6-16 ㅣ No.131

[세상에 열린 공동체] 광주대교구 ‘광주인권평화재단’


교회가 5·18 광주를 기억하는 통로

 

 

1980년 5월 광주는 고립무원의 땅이었다. 정부는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았고, 언론은 진실을 감추는 데 앞장섰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슬픔을 슬픔이라, 고통을 고통이라 말할 수 없었다. 그때, 광주 가톨릭교회가 고난과 아픔을 함께하며, 그것을 고통이라고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게 했다. 끊임없이 진실을 외쳤으며, 믿음과 격려의 손을 내밀었다.

 

 

5·18의 아픔을 교회가 함께하다

 

한국 사회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된 1980년 5·18 광주 민중 항쟁(이하 5·18)은 지역에 엄청난 시련을 안겨 주었다. 5·18은 당시 광주에 있는 모든 이의 현장이었으므로 시민 사회뿐 아니라 가톨릭교회에도 큰 충격이었다.

 

교구민들은 물론 당시 광주대교구 한국인 사제 40여 명 가운데 9명이 체포와 연행을 당하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5·18과 광주 가톨릭교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이유다.

 

그런 엄혹한 상황에서 광주대교구는 5·18의 진상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항쟁 이후에도 사형 선고를 받은 이들을 위한 구명 활동에 나서는 등 광주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진상을 규명하는 데 앞장섰다. 5·18 기념 재단과 5·18 유족회를 비롯한 광주의 시민 사회 단체와 연대하며 피해자들과 함께했다.

 

5·18 25주년을 맞이한 2005년에는 5월 18일을 교구 기념일로, 남동성당을 ‘5·18 기념 성당’으로 정했고, 해마다 모든 성당에서 ‘5·18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2010년에는 5·18 30주년을 맞이하여 5·18 정신을 계승하고, 당시 광주를 도운 은인들의 고마운 마음을 기억하며, 광주와 비슷한 처지의 고통과 슬픔을 겪은 이웃들의 어려움에 함께하며 도우려고 광주인권평화재단(이하 재단)을 설립하였다.

 

당시 고초를 겪었던 이들의 보상금이 재단 설립에 겨자씨가 되었고, 윤공희 대주교를 비롯해 광주의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했다. 여기에 해마다 부활 제5주일에 광주의 모든 성당에서 2차 헌금을 모아 기금을 마련했다. 광주의 가톨릭교회는 함께 뜻을 모아 이렇게 지역사회인 ‘광주의 5·18 정신과 진실’을 지키고자 했다.

 

 

광주 정신을 지구촌 이웃들에게

 

광주인권평화재단은 정치, 사회, 제도로 고통받는 지구촌의 이웃들과 연대하고 소통하는 통로다. 국가 폭력 앞에서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정신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보여 준 1980년 5월의 정신을 잇고, 인권과 평화 증진을 위한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교회는 사회 정의를 위해 사회 부조리, 불의, 불평등, 인권의 침해 등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하고, 교회 정신에 입각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여전히 국가 폭력이 일어나고 이로 말미암아 5월의 광주처럼 인권 유린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5·18을 기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국내외 이웃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마음을 보여 주며, 구체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김민석 신부는 재단 활동을 이렇게 소개했다.

 

재단은 국내에서 인권 교육과 조사연구 사업, 인권 관련 학술 활동, 풀뿌리 단체 지원 사업 등을 펼치고, 해외에서는 스리랑카와 인도, 필리핀,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태국 등 아시아 지역 가운데 인권 상황이 열악한 곳과 연대하고 협력하며, 기록하고 조사하는 일을 한다.

 

그동안 스리랑카의 전쟁미망인 자립과 고아 교육, 트라우마 치료, 태국의 소수 민족 여성 역량 강화 프로그램, 버마 난민 아동들의 영양과 위생 설비 구축, 필리핀 실종자 단체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 몽골 여성 지도자 대상 인권 의식과 풀뿌리 민주주의 교육, 인도의 불가촉천민인 달리트의 인권 향상과 빼앗긴 땅을 돌려받으려는 공동체 운동 등을 지원했다.

 

지난해에도 방글라데시 국가 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행사와 이들의 가정 방문, 로힝야 난민 활동가 역량 강화와 인권 피해 기록 사업 등에도 참여했다.

 

2016년부터는 ‘국제연합(UN)고문 생존자 지원의 날’(6월 26일)에 국가 폭력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생존자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이들의 삶을 지지하는 오찬을 진행하고 있다. 유가족을 초청하여 한 끼 식사를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지만 이들은 위안을 받고 큰 힘을 얻어간다고 말한다. ‘가톨릭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여전히 기억해 주고 있다.’면서 말이다.

 

아시아연대평화센터의 아시아 청년 아카데미와 아시아 신학 포럼 행사, 청소년 모의 인권 이사회, 시민 단체 활동가 심리 지원 워크숍, 지역에서 민주 인권 정의 평화 증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활동하는 풀뿌리 시민 단체를 지원하는 일도 한다.

 

또한 재단의 중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는 5·18 민중 항쟁과 교회의 역할을 다방면으로 살펴보는 학술 심포지엄이다. 5·18과 관련한 교회의 역할을 이어 가고 학술적으로 정리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삶의 방향과 복음적인 실천 과제로 삼자는 것이다.

 

 

5·18과 교회의 길은 하나로 통한다

 

1980년 5월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이보다 더 큰 아픔은 5·18 광주 민중 항쟁을 민주화 운동으로 국가가 공식 기념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일부 언론과 정치인이 북한에서 내려온 무리가 사주를 받아 일으킨 폭동으로 왜곡 비방하고, 5월의 숭고한 뜻을 무참히 짓밟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인권평화재단은 광주라는 지역을 넘어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세계의 민주 인사들에게 정의 평화와 인권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5·18 정신을 계승한 활동 단체 가운데 종교 단체는 광주인권평화재단 하나뿐이다.

 

“시대의 고난, 시대의 아픔, 지금도 계속되는 지역의 고통과 함께하는 것은 교회의 과제입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가 5·18 정신을 구체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재단 상임이사를 지낸 김정용 신부의 말이다.

 

36주년을 기념하는 학술 심포지엄에서 옥현진 보좌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5·18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민석 신부는 앞으로 재단의 활동에 대해 교우들의 도움으로 시작된 사업이 이웃 형제들에게 치유와 감동으로 소통될 수 있도록 좋은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아직 의혹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제주 4·3 사건이나 여순 사건 등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대변하겠다며,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행해지는 국가 폭력과 이에 따른 인권 유린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소외된 이웃과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 땅에서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소명을 갖고 있다.

 

지금도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며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가 많다. 광주의 5월에 물질적으로, 기도로, 따뜻한 마음으로 손길을 내민 은인들처럼 지금 우리도 그렇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신앙인이라면,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대에 사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늘 고민하고 질문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지구촌에 우리와 같은 아픔을 가진 이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의 고통을 돌보고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재단 사무국장 이진영 체칠리아 수녀가 전하는 말은 오늘 우리에게 5·18을 어떻게 기억하며 증언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문의: ☎062-234-2737 광주인권평화재단(www.ghpf.or.kr)

 

[경향잡지, 2019년 6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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