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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선종가의 선생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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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4-21 ㅣ No.1024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선종가’의 선생복종

 

 

천주교에서 죽음을 의미하는 ‘선종’은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일생을 마친다는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줄임말이다. 천주가사 ‘선종가’는 「박동헌본」과 「김지완본」에 전해 온다. 그 가운데 ‘최도마 신부저술’이라 명기된 「박동헌본」 ‘선종가’는 4음보 124행으로 이루어졌다. 이 기록에 따라 학계에서는 최양업 신부의 친작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이를 단정할 수는 없다.

 

 

선종의 방도를 제시하다

 

‘선종가’의 지은이는 첫 행부터 인간은 누구나 죽을 운명이라고 읊는다.

 

가련하다 세상사람 난사람은 다죽는다

보천하(普天下)에 모든사람 백년전에 모두죽네

이렇듯이 헛된세상 경영할것 무엇인고

죽을곳에 가는자가 희락영복 탐할쏘냐

살고죽어 상합(相合)하여 서로없지 못하리라

예로부터 이제까지 안죽는자 하나없네

예수성모 죽으셨네 우리어찌 면할손가

귀천선악 물론하고 죽잖는자 그뉘런고

 

죽음에 이어 사심판과 지옥, 천당, 공심판의 내용을 담은 사말 교리 묵상서 「사후묵상」에서는 죽을 운명에 처한 사람들을 생동감 있게 비유하였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큰 범에게 쫓겨 함정 곁에 있는 나무로 올라갔다. 내려다보니 나무뿌리를 흑충과 백충이 갉아 먹어 금세 나무가 넘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나무 위에 꿀벌 집이 있어 그 사람이 손가락으로 꿀을 찍어 먹었다. 그는 꿀의 달콤함에 위태로움을 잊고 있다가 결국 나무가 넘어져 범의 입에 떨어졌다.”

 

여기서 쫓기는 것은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을, 나무는 생명을, 함정은 지옥을, 흑충과 백충은 밤과 낮을, 꿀벌 집은 부귀영화를, 범의 입은 마귀를 비유한다.

 

‘선종가’의 지은이는 선종하려면 현세에서 잘 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선한 이와 악한 자의 삶을 대비함으로써 선종의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73행에 ‘사람사람 임종시에 선자악자 다르도다’라고 전제한 뒤, 74-78행에서 선자의 삶을 노래한다.

 

선자들은 이세상을 찬류소(竄流所)로 알았으며

나그네로 지내었고 체읍지곡(涕泣之谷) 있는고로

삼구(三仇)를 저당하고 당한처사 인내하며

십계사규(十誡四規) 열심수계 천주계명 지킨고로

세상옥(世上獄)을 벗어나서 주모대전 즐거울사

 

작자는 이 대목을 과거형으로 읊어 옛 선자들의 모범적인 삶을 상기시킨다. 예로부터 선자는 현세를 본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머물며 귀양살이하는 “찬류소”로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자는 나그네처럼 현세에 집착하지 않고 현세를 눈물의 골짜기인 “체읍지곡”이자 “세상(감)옥”으로 여겼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본향으로 돌아가 천주 앞에 서기 위한 여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선종하고자 현세에서 “삼구”와 맞서 싸우고, 현실에서 당하는 고통을 인내하며, “십계사규”를 비롯한 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 ‘삼구’는 영혼의 세 가지 원수로 인간을 죄로 꾀어내는 마귀, 헛된 욕망으로 가득 찬 세속, 그리고 그릇된 욕망과 감정에 치우친 육신이다. ‘십계사규’는 ‘십계명’과 아울러 교회가 신자들에게 행하도록 권고하는 주일과 의무 축일의 미사 참례, 영성체, 고해성사 등이다.

 

이처럼 선자를 본받아 산 이들은 마침내 천주와 성모를 만나 천상의 즐거움을 누릴 것이라고 노래한다. 이는 옛 선자를 본받아 현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다.

 

앞서 읊은 30행의 죄를 피하고 덕을 닦는 “피죄수덕”(避罪修德), 42행의 평생 선을 행하는 “평생위선”(平生爲善), 64행의 선을 행하여 공을 세우는 “행선입공”(行善立功)의 조건이자 세목인 것이다.

 

지은이는 선자의 삶에 이어 79-83행에서 악자의 삶을 읊는다.

 

악자는 이세상을 영거소(永居所)로 경영하여

부귀영화 많이쓰고 빈궁자를 모만하며

교오간린(驕傲慳吝) 미색분노(迷色憤怒) 탐도질투(貪饕嫉妬) 해태(懈怠)함은

기회따라 행하다가 부지불각 죽는때에

세상영복 다버리고 흑마중에 종이되어

 

악자는 선자와 달리 현세를 영원히 사는 “영거소”로 여겼다는 점을 밝힌다. 그러므로 악자는 부귀영화와 세상의 복을 좇으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여 흉한 마귀의 종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악자가 현세에 집착하여 사람답게 살지 못한 결과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 제시하는 악자의 그릇된 삶의 태도가 주목된다. 사람은 모든 죄의 근원인 칠죄종에 빠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다. 그러나 선인은 이를 칠극으로써 극복한다. 곧 교만은 겸손으로, 인색은 은혜로, 음욕은 정결로, 분노는 인내로, 탐욕은 절제로, 질투는 관용으로, 나태는 근면으로 대처하여 죄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그 반면 악인은 극기로써 이를 수행하지 못하여 선종을 준비하지 못한다. 이 노래를 향유하는 이들은 이러한 악자의 삶을 반면교사이자 타산지석으로 삼게 된다.

 

선자의 삶을 따르는 한편, 악자의 삶을 피해야 하는 까닭은 1675년에 북경에서 발간된 문답식 교리서인 「성교백문답」에서 단적으로 밝히고 있다.

 

(문) 천주가 인류를 창조하심은 무엇을 위함인가? 

(답) 다만 사람이 진정한 주인을 알아 그 명을 준수하여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면 사후에 천국에 올려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하고자 하심이니라.

 

창조주 하느님을 믿고 계명을 지켜 죄와 악을 피하며 선을 행하고 덕을 닦음으로써 천국의 영복을 누리는 것이 인간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지은이는 다소 추상적인 교리 내용을 한글로써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당시 문자를 해독하지 못하거나 믿음이 약한 신자들에게 천주의 자녀다운 삶을 제시하여 교육하는 한편, 천주교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인간답게 살도록 전교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나아가 선한 죽음 또는 거룩한 죽음을 일깨워 주어 당시의 신자들이 천주를 증거하며 순교하는 데 용기와 힘을 주었을 것이다.

 

가치 있는 삶과 의미 있는 죽음을 상기하는 것은 비단 천주가사가 지어진 시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물질주의와 찰나주의가 팽배한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을 뜻깊게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 김문태 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이며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기획홍보위원장으로 계간지 「평신도」 편집장을 맡고 있다. 중국 선교 답사기 「둥베이는 말한다」, 장편 소설 「세 신학생 이야기」 등을 펴냈으며, 「천주가사」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경향잡지, 2019년 4월호, 김문태 힐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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