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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사회교리13: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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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3-19 ㅣ No.512

[교부들의 사회교리] (13) 전쟁과 평화


평화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경기에 출전하거나 참여하는 기사는 이를 그만둘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돌려보낼 것이다. 검투사나 그들에게 싸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 경기장에서 맹수를 사냥하는 투사나 칼싸움 경기에 종사하는 직원은 이를 그만둘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돌려보낼 것이다. 우상숭배의 제관들이나 우상들을 경비하는 사람은 이를 그만둘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돌려보낼 것이다. 권력하에 있는 군인은 사람을 죽이지 말 것이다. 만일 그런 명령을 받으면 이를 이행하지 말 것이며, 선서도 하지 말 것이다. 만일 그가 이런 조건을 거부하면 돌려보낼 것이다. 만일 칼의 권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나 자줏빛 옷을 입을 정도의 지역 통치자이면 이를 그만둘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돌려보낼 것이다. 군인이 되기를 원하는 예비신자나 신자는 내쫓을 것이니, 이는 하느님을 경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히폴리투스, 「사도 전승」 16. 이형우 옮김)

 

 

선서 거부하고 순교 택해 

 

「사도 전승」은 로마를 비롯한 서방과 동방 교회에 널리 퍼져 있던 전례와 교회에 관한 문헌이다. 3세기경 로마의 히폴리투스가 썼다고 알려져 있으며, 가장 오래된 보편 교회 전례 규범집이다. 

 

여기서는 세례 청원자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들을 제시하는데, 그리스도인이나 예비신자는 군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규정한다. 인명 살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이미 군 복무를 하고 있는 경우라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며, 죽이라는 명령을 받더라도 이를 거부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병역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예외적 상황을 인정하되, 비전투 영역에만 국한한 것이다. 

 

선서 금지 규정은 순교의 동기가 되기도 했다. 박해 시대에 군인들은 황제의 상이나 신상 앞에서 선서해야 했지만, 그리스도 신앙을 지닌 군인들은 이를 우상숭배로 여겨 거부했고, 그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복음과 현실 사이, 평화와 무력 사이

 

“칼의 권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나 자줏빛 옷을 입은 통치자”는 사형을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사람들을 일컫는다. 사형도 살인 행위라고 보았기에 이러한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인이 될 자격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놀이나 스포츠처럼 포장된 잔인한 싸움이나 격투기를 비롯하여 전쟁과 사형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모든 행위는 하느님을 경멸하는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갖은 비난과 몰이해, 고통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집총 거부를 실천하는 소수집단과 소수인들이 있다. 이것이 비정통 특정 교단의 어리석고 비현실적인 범법 행위인지, 아니면 평화와 무력, 복음과 현실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초기 교회의 고뇌에 찬 결단 또는 목숨을 건 실천과 맞닿아 있는 종교적 신념이자 양심의 행위인지를 다시금 성찰케 하는 교부 문헌이다. 

 

주님의 평화는 총구에서 나오는가? “전쟁은 비참 말고는 그 무엇도 이루어내지 못하고, 무기는 죽음 말고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2019년 2월 4일 아랍에미리트 연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3월 17일,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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