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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시성]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위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위한 현장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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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3-11 ㅣ No.1803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위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위한 현장 조사


시복 염원 담아 근현대 순교자 발자취 돌아보다

 

 

유흥식 주교 등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재판진이 2월 27일 서울 정릉동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평화의 동산’을 찾아 한국전쟁 중 피랍되거나 월남하지 못한 수도자들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1945년 해방과 남북 분단, 1950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우리 민족은 역사상 최대의 고통을 겪었다. 종교인들은 특히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남북 분단 후 이북 지역에 종교의 자유가 점차 사라졌고 한국전쟁으로 전 국토가 포화에 휩싸이면서 종교인들은 북한 정권에 의해 박해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는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이하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는 바로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근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최후까지 신앙을 지켰던 이들이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와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는 2월 26~28일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서울대교구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법정 제11회기로 진행된 서울대교구 현장 조사는 언론에도 공개됐다. 

 

 

‘공적 경배 없음’ 확인 위한 시복 현장 조사

 

시복 법정 제11회기는 2월 26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 교구청 신관 3층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시복시성특위 위원장 유흥식 주교(재판관), 서울대교구 유경촌·정순택·손희송 보좌주교, 시복 재판진 박선용 신부(재판관 대리), 이정주 신부(검찰관), 류한영 신부(시복시성특위 총무, 청원인), 장후남(클라라) 공증관, 서울대교구 관계자로 홍근표 신부(교구 사무처장), 조한건 신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정했다.

 

- 염수정 추기경(오른쪽에서 네 번째)과 유흥식 주교(염 추기경 왼쪽),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재판진이 2월 26일 오전 시복 법정 제11회기 개정식 후 구 서울대교구 주교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서울대교구 현장 조사는 ‘하느님의 종’의 ‘공적 경배 없음’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로서 그들의 탄생지, 활동지, 순교지, 묘소 등 현장 방문으로 구성됐다. 

 

하느님의 종은 시복이 된 이후부터 지역교회 즉 한국교회에서 공적 경배가 가능하지만 시복 전에는 ‘개인적 차원’의 경배는 가능해도 공적 경배는 허용되지 않는다. 시성 후에는 전 세계 보편교회에서 경배 대상이 된다. 

 

시복 법정 제11회기 개정식에 참석한 홍근표 신부는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에 대해 서울대교구 내에서 공적 경배가 없었음을 확인한다”고 선언했다. 

 

유흥식 주교는 시복 법정 개정식 인사말에서 “주교, 신부, 평신도가 모두 포함되는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는 하느님을 위해 신앙을 증거하고 이웃 사랑을 보여준 분들”이라며 “남북 화해 분위기를 열어가는 이 시기에 이분들을 기억하며 현장 조사를 하는 것은 큰 은총”이라고 말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많은 분들이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가 빨리 시복시성되길 고대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료 수집이 어려워지고 목격증인도 사라져 가는 만큼 이번 현장 조사와 이후 시복 재판절차를 통해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의 행적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시복 법정 제11회기 개정식 참석자들은 현장 조사 방문지 중 한 곳인 서울대교구 구 주교관(1890년 건립)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본격적인 현장 조사에 돌입했다.

 

유흥식 주교(왼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박선용 신부(유 주교 오른쪽), 이정주 신부(맨 오른쪽) 등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재판진이 2월 26일 서울 명동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역사전시관에서 한국전쟁 중 ‘죽음의 행진’ 상황을 보여주는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신앙의 발자취를 찾아

 

시복 현장 조사 첫 방문지는 초대 교황 사절 패트릭 번 주교(메리놀 외방선교회, 재임 기간 1947년 4월 7일~1950년 11월 25일)가 부임 후 한국전쟁 발발 시점까지 머물렀던 서울 궁정동 주한 교황청 대사관이었다. 

 

재판진을 맞이한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는 “오늘(2월 26일)은 제가 꼭 1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주한 교황대사로 임명된 뜻깊은 날”이라고 운을 뗀 뒤 “번 주교님은 한국교회 초대 교황 사절이었고 저는 교황대사 첫 부임지로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슈에레브 대주교는 주한 교황청 대사관 경당 제의실에 걸려 있는 번 주교 초상화를 가져와 재판진에게 보여주며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번 주교님을 저의 선임자로 본받기 위해 그와 영적으로 손잡고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매일 제의실에서 번 주교님 사진을 볼 때마다 그의 신앙적 용기에 감동 받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메리놀 외방선교회 한국지부장 함제도 신부도 주한 교황청 대사관 현장 조사에 참석해 번 주교가 한국에 부임하기까지의 과정과 한국전쟁 발발에 따라 주한 교황청 대사관에서 명동 주교관, 소공동을 거쳐 중강진에 북송된 경로를 설명했다. 

 

재판진이 주한 교황청 대사관을 나와 향한 곳은 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였다. 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는 홍용호 주교를 비롯해 김선영·김필현·박용옥 신부 등 모두 19위의 사제가 공부했거나 학교 관계자 등으로 일했던 한국교회사 안에서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에는 진리와 소신을 지키려 목숨까지 바친 신앙인들의 체취가 남아 있다. 현재는 성심수녀회가 관리하고 있다. 

 

유흥식 주교는 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성직자들이 순교자들처럼 예수님 닮은 목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하자”며 재판진과 함께 주모경을 바쳤다. 

 

인근 용산 성직자 묘지에서 현장 조사를 이어간 재판진은 이현종 신부와 김선영 신부 묘 앞에서 이들의 시복을 기원하며 기도를 바쳤다. 

 

용산에서 다시 명동으로 돌아온 재판진은 서울대교구 구 교구청 및 구 주교관(현 서울대교구 역사관), 주교좌명동대성당과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을 현장 조사했다. 한국전쟁 당시 ‘죽음의 행진’ 상황을 보여주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역사전시관 전시물 앞에서는 순교자들의 안식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장 조사 둘째 날에는 서울 수유동 서울가르멜 여자수도원과 정릉동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원, 혜화동 동성중고등학교, 구 서울가르멜 여자수도원을 현장 조사했다. 한국전쟁 ‘죽음의 행진’ 중 병사한 서울가르멜 여자수도원 마리 메히틸드 수녀, 테레즈 수녀와 북한에서 피랍된 메리놀 수녀회 장정온 수녀,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서원석 수녀에 관한 기록이 유품과 생존자들의 증언 등으로 보존되고 있었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서울 혜화동 구 서울가르멜 여자수도원 터에서도 앙투안 공베르 신부, 쥘리앵 공베르 신부, 마리 메히틸드 수녀, 테레즈 수녀의 행적을 추적했다. 

 

현장 조사 마지막 날인 2월 28일에는 이현종 신부와 서봉구(마리노)가 한국전쟁 중 피살된 장소인 서울 도림동성당, 중국에서 선교사로 일하다 중국 공산당의 오랜 핍박을 받은 끝에 1974년 흑룡강성에서 병사한 김선영 신부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는 서울 절두산순교성지와 중림동약현성당, 한국전쟁 중 ‘죽음의 행진’ 관련 장소인 서울 소공동 일대를 확인하는 것으로 현장 조사를 마쳤다. [가톨릭신문, 2019년 3월 10일, 박지순 기자]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위,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 현장 조사 시작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 이하 시복시성특위)는 한국교회 근현대 신앙의 증인들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이하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첫 현장 조사를 서울대교구 일대에서 2월 26~28일 진행했다.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법정 제11회기에 해당하는 이번 서울대교구 현장 조사는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가 방문지 사전 답사와 자료 정리 등 실무를 주관했다. 

 

서울대교구 현장 조사는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가운데 37위의 활동지, 순교지, 묘소 등 발자취가 남아 있는 유적지를 방문하고 시복 관련 자료를 검토하는 절차이면서 ‘하느님의 종’들에 대한 ‘공적 경배 없음’을 확인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하느님의 종들은 시복이 된 시점부터 지역교회 안에서 공적 경배가 허용되지만 시복 전까지는 ‘개인적 경배’만 가능하다.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서울대교구 현장조사는 2월 26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 교구청 신관 3층 회의실에서 시복시성특위 위원장 유흥식 주교를 비롯한 시복 재판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유경촌·정순택·손희송 보좌주교, 홍근표 신부(교구 사무처장) 등이 참석한 시복 법정 제11회기 개정식으로 시작했다.

 

유흥식 주교는 개정식 인사말에서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대부분이 한국전쟁 전후에 피랍되거나 살해, 행방불명된 점을 염두에 둔 듯 “81위가 시복되기 전에 북한에 복음이 들어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염수정 추기경도 “홍용호 주교님과 동료 80위는 우리와 가까운 시대에 산 신앙의 증거자들”이라며 “이분들의 시복을 추진하면서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시복 법정 제11회기 개정식 후 유 주교와 재판진은 첫 방문 조사지인 서울 궁정동 주한 교황청 대사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초대 교황 사절로 1947년 한국교회에 부임해 한국전쟁 발발 후 ‘죽음의 행진’을 겪고 중강진까지 끌려가 1950년 11월 25일 병사한 하느님의 종 패트릭 번 주교(메리놀 외방선교회)가 일했던 곳이다.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는 주한 교황청 대사관 경당 제의실에 걸려 있는 번 주교 초상화를 가져와 시복 재판진에게 보여주며 “번 주교님의 신앙적 용기에 감명을 받았고 그와 영적으로 손잡고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시복 현장 조사를 통해 한국전쟁 중 1950년 7월 3일 도림동성당에서 피살된 서봉구(마리노)의 영세대장이 추가로 확인되는 등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 [가톨릭신문, 2019년 3월 10일,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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