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8일 (일)
(자)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종교철학ㅣ사상

시 읽어주는 신부: 세속 일상의 수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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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2-13 ㅣ No.365

[시(詩) 읽어주는 신부] 세속 일상의 수행자

 

 

돌아보니, 늘 사람과 삶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과 삶의 신비는 논리적으로 해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아마도 그 신비를 깨닫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과 삶에 대해 생각합니다. 시 읽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의 문학성과 미학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시인의 삶의 궤적과 사유의 흔적을 읽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시적 언어 자체가 갖는 독립성과 창조성을 긍정하고 좋아하지만, 표현된 언어 안에 담겨있는 시인의 사유와 감성과 정서를 읽어내는 일이 더 즐겁습니다. 시의 고유한 자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숭배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시는 사람과 삶에 대해 알려주는 매개체일 뿐입니다. 사람들의 사유(인식)와 감성과 정서는 시대와 세대를 넘어서는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사유와 감성과 정서는 시대와 세대의 한계와 울타리 속에서 작동되기도 합니다.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한 감흥으로 다가오는 시가 있습니다. 반면 예전에 읽었을 때는 나름의 울림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어 지금 다시 읽어보면 뭔가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시도 있습니다. 그 시절 그 세대의 문법에서는 당연했던 것들이 지금의 자리에서 낯선 감수성으로 다가올 때 가끔 당혹스럽습니다. 친숙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옛 시절의 시를 읽다보면 많은 것들이 낯설고 낡은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내가 지금의 현실에 너무 순응하며 살아온 탓인지. 이 시대의 감수성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진 건지, 그 시절 그 느낌은 분명 순정한 것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지금은 그것이 이렇게 유치하게 느껴지는지. 내가 변한 건지, 세상이 변한 건지, 나의 사유와 감성과 정서가 달라진 건지, 아니면 예전에 내가 제대로 이해를 못했던 것인지. 시대와 세대의 변환 속에서 혼돈스러울 때가 간혹 있습니다.

 

차창룡 시인(1966년생)의 시를 읽으면서 그랬습니다. 차창룡 시인의 첫 시집(『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문학과지성사, 1994)과 두 번째 시집(『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민음사, 1997)을 다시 읽었을 때 뭔가 어색하고 예전에 가졌던 인상과 느낌과는 달랐습니다. 어, 어, 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읽지 않았던 그의 다른 시집을 다 읽어 보았습니다. 다섯 권의 시집을 다 읽은 후에야 시인의 삶과 그의 사유와 감성과 정서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시대와 세대가 변했듯이, 시인의 시대와 세대도 변했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것 같습니다. 2018년 11월 21일자 ‘경향신문’에서 신용목 시인이 북한산 중흥사에서 열린 허수경 시인의 49재를 다녀온 후 쓴 글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허수경 시인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마지막 부분에 적혀있습니다. 아, 허수경 시인은 “조금 불편한 몸으로 태어난 아이”를 남겨두고 떠났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울컥했습니다. 허수경 시인의 49재를 주재한 스님이 동명 스님입니다. 그는 출가한 차창룡 시인입니다. 허수경, 진이정, 유하, 차창룡 시인은 ‘21세기 전망’이라는 동인 활동을 함께한 인연이 있습니다. 생의 연은 이렇게 늘 얽혀 있습니다. 2010년 3월 차창룡 시인은 조계종 스님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대학교의 문학 선생이며,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고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한 중견 시인의 출가는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리라’는 일종의 출가의 변에서 시인은 “근기가 강하다면 굳이 승가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련만 너무 부족한 것이 많기에 속세의 인연을 접고 떠나기로 했다.”고 고백합니다. 소설가 송기원이 말한 것을 화두로 붙들고 수행해보겠다고 다짐합니다. “내가 왜 속세에서 견디지 못하고 출가했을까?” 시인의 정직한 고백처럼, 성직자와 수도자는 자질이 우월하고 선택을 받아서 그 길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해서 걷는 것입니다. 간혹 언론매체를 통해 성직자와 수도자의 삶을 향한 수련의 과정이 고단하고 힘들다는 것이 부각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불가에서 행자로서의 수련과정과 가톨릭에서 신학생의 수련과정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무척 힘든 과정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내부의 시선으로 보면, 세속의 삶이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세속을 거부하고 떠난 덕분에 거룩함을 취할 수 있었던 이들을 우리는 성(직)자라고 부릅니다.”(양희송, 『세속성자』, p.12) 하지만 이 시대에 어쩌면 세속의 일상 안에서 신앙과 구도의 길을 걷는 이들이 참다운 성(직)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차창룡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시가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비관과 냉소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가난하고 남루한 현실과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과 풍자의 노래와 그 절박한 상황에서의 사랑에 대한 노래가 그의 시의 주된 정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시인은 자신의 시 도처에서 성과 속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종교적 사유체계를 드러냅니다. 시인은 자신의 첫 시집 첫 시에서 선언합니다. “말하리라/ 분주히 자라온 역사 앞에/ 뼈저리게 굽어온 허리/ 허리처럼 굽어온 진실을/ 두 눈 부릅뜨고 말하리라 억울함/ 서러움”(대[竹])이라고 말입니다. 산업자본주의의 성장의 어두운 뒷면인 농촌의 피폐한 삶과 도시 빈민들의 궁핍한 삶에 대해 시인은 자주 묘사합니다. “아버지와 황소는 힘든지도 모르고,/ 해가 넘어가도 넘어가지 않는 가난으로/ 쟁기질을 한다 쟁기질을 한다.”(「쟁기질 1」)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해 진 후 형광등이 노동을 강요하는 쟁기질.”(「쟁기질 3 . 박제된」) 아버지의 쟁기질로 상징되는 가난한 농촌의 삶과 더불어 고시원의 삶으로 대표되는 도시의 밀려난 이들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노래합니다.

 

이 선원의 선승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오직 혼자이지요

홀로 존귀한 최고의 선승들입니다

108개의 선방에는 선승이 꼭 한 명씩만 들어갈 수 있어요

여느 선방과 달리 방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잠을 자든 공부를 하든 밥을 먹든 자위행위를 하든

혼자서 하는 일은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가끔 심한 소음이 있어도 자기 일이 아니면 가급적

상관하지 않습니다 정 참지 못하면

총무스님에게 호소하면 됩니다

중국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그리고 한국

식탁에는 온통 외국인뿐입니다

이곳은 외국인을 위한 선원인 것이지요

금지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양간에 함께 모인 선승들은 말이 없습니다

말은커녕 입도 벌리지 않고

그들은 밥을 몸속으로 밀어넣습니다

다년간 수행한 덕분이지요

오래 수행한 선승일수록 공양할 때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뱃속으로 고요의 강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면

가끔 화장실에 갑니다 화장실은 늘 만원입니다

괜찮습니다 참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수행법이니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불이 나도 괜찮아요

13호실에 비상용 사다리가 있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는 미덕이 습관이 되어

나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일에는 끼어들지 않습니다

괜찮아요 불이 나도 어차피 열반에 들면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을 테니까요

 

「고시원은 괜찮아요」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여전히 서늘한 풍자의 시입니다. 어렴풋한 짐작이지만, 시인은 2008년 이혼 후 고시원과 옥탑방의 삶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에 남고/ 남편은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 오는/ 순간/ 흑백논리는 분명해졌다.”(「말장난」) “헤어짐이란 고시와도 같은 것/ 나는 날마다 고시공부하듯 결별의 책을 읽는다/ 벽마다 책이 쌓여서 무너질까봐/ 그 위를 무거운 책으로 눌러놓고는// 나를 포위한 책 속에서 행복하다/ 책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게는/ 책으로 만든 장작불이야말로/ 최고의 다비식을 제공할까.”(「고시원에서」) “고시원의 작은 방에 누우면 친구는/ 아내의 자궁 속에 누운 기분이라나/ 새로운 감옥은 독방이 아님에는 분명하구려.”(「고시원은 괜찮소」) 한편으로 시인에게 고시원과 더불어 도시 자본주의의 풍속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은 헬스클럽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몸은 부처이니/ 공양하라 생로병사라는 네 마리의 뱀에게/ 달려가라 트레드밀이여/ 정진하라 자전거의 페달을 끊임없이/ 법(法)의 페달을 돌려라/… / 몸을 혹사하는 것이 몸을 경배하는 것이니라.”(「헬스클럽에서」) “나(36세, 백수)는 지금 싯다르타가 수행했다는 苦行林이라는 공원을 축소한/ 실내 고행림에 와 있다/ 이 숲에는 고행에 적합한 온갖 형틀이 골고루 마련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돈만 내면 마음껏 고행을 즐길 수 있다.”(「실내 고행림」) 가난의 장소이든 중산층의 공간이든 그 모든 것들에서 수행적(?) 맥락을 읽어내는 시인의 시선이 이채롭습니다. 비록 풍자적 서술 속에서 살짝 비틀린 의미지만, 그래도 삶의 모든 자리가 수행의 장이며 수도의 도량이라는 의미로 저에게는 읽힙니다.

 

출가한 시인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차창룡 시인의 시 안에서 이별과 떠남과 죽음에 대한 사유와 이미지들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시론에서 시간에 대한 쓸쓸한 감상을 고백합니다. “시간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잡아먹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먹여 살립니다… 시간은 우리를 사랑하게도 만들고 이별하게도 만듭니다.”(『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p.113-114) “나는 압니다/ 당신이라는 거대한 촛불은/ 내가 다가가자마자 꺼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 … // 당신의 몸은/ 당신을 만났다는 환상일 뿐/ 색깔을 바꾸어/ 어둠으로 깔릴 뿐.”(「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 오늘은 노을을 만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다니/ 그 사람 분명 존재하거늘/ 사랑을 잃다니/ 사랑이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 오늘은 비를 만나」) “겨울에 나무를 만나면 쓸쓸해지느니/ 무념무상의 열반에 잠겨 있는/ 뼈만 남은 참선으로 봄을 길어 올리는 나무는/ 봄이 올라올수록 땅속으로/ 무덤을 파느니 미리/ 무덤을 파기에 쓸쓸함이 없느니.”(「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 오늘은 봄을 만나」) 자신이 먼저 이별(떠남, 출가)을 고하는 것이 시간이 주는 이별(소멸과 죽음)의 잔인함에 대한 시인의 소박한 저항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하 시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진이정(본명 박수남) 시인의 죽음은 차창룡 시인에게도 깊은 상흔을 남겼던 것 같습니다. “뼈만 남은 사람은 만져봐야 한다/ 뼈만이라도 만져서/ 확인해야 한다 사람을.”(「뼈만 남은 사람은 . 진이정 시인을 그리며」) “너무 춥다 수남이 형 떠나는 날/ 안녕, 이별의 인사가 그립다/ 이제는 기침도 멈춘 청춘의 각혈아/ 무덤 하나도 짊어지지 않은 가벼운/ 뼛가루야, 너 밤새 눈으로 내려/ 이별은 이토록 미끄럽구나/ 젊은 햇살마저 주르륵 미끄러져/ 흔들리는 풍경 소리에 빠지네.”(「안녕, 오늘이여」)

 

몸을 지닌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이, 차창룡 시인에게도 몸의 욕망과 성의 문제는 성찰적 화두의 하나입니다. 물론 단순히 성찰을 통해 그 화두가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또 포르노를 보고 말았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욕망의 거름을 먹고/ 세상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에도.”(「자본주의를 위한 자그마한 기여」) “나는 상상한다 볼록한 남자의 성기가/ 오목한 여자의 성기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그 순간의 반복을/ 하느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 이 순간을/ 이 순간의 반복을/ 예측하고 계셨을까/ 그 순간이 품고 있는 배반을 배반의 반복을.”(「성교에 관한 몽상」)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고 고요한 것처럼/ 감각기관의 욕망을 내면의 바다로 끌어들이는 사람은/ 지고의 평화를 누린다/ 하지만 욕망을 좇는 사람은/ 결코 평화의 바다에 이르지 못한다(『바가바드 기타』).”(「말장난」) 시인은 출가를 결심하고 마지막 시집(『벼랑 위의 사랑』, 민음사, 2010)을 묶을 때도 ‘본능’이라는 부제로 성과 욕망에 대한 사유를 담은 여러 편의 시를 담았습니다. 마지막 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1부 이제는 사랑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 2부 본능, 3부 자본주의를 위한 자그마한 기여, 4부 붓다) 각 부의 제목들은 시인의 시적 사유의 전체 궤적을 상징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자본주의 현실이 가져오는 비관적 상황 속에서 욕망에 붙들려 살아가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구원과 사랑의 꿈을 꾸며 종교적 수행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은 칼이 되어/ 세상 모든 일들을 토막 내기 시작했”(「언제부턴가 내 마음은 칼이 되어」)지만 “이제는 사랑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이제는 사랑은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에게 그 길은 자신을 공양해서 타인을 깨우는 목탁과 목어의 삶입니다. “물고기는 죽은 후 나무의 몸을 입어/ 영원히 물고기 되고/ 나무는 죽은 후 물고기의 몸을 입어/ 여의주 입에 물고// 창자를 꺼내고 허공을 넣으니/ 물고기는 하늘을 날고/ 입에 문 여의주 때문에 나무는/ 날마다 두들겨 맞는다.”(「나무 물고기」) “모든 죽어 가는 소리들이/ 살아나는 순간이다”(「목탁 3」)

 

종교인 또는 수행자는 자신을 공양(희생)해서 타인을 깨우고 사랑과 구원으로 안내하는 매개체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저도 한 종교의 성직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돌아보면, 자신을 희생하는 수행자의 삶을 살기보다는 타인의 희생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리는 뻔뻔한 모습으로 살고 있음을 자주 발견합니다. 참다운 종교인으로 살기보다는 종교 공무원(영혼 없는 관리자의 모습으로 사는)이거나 종교 한량(시간과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관성적이고 타락한 종교인이 아니라 건강한 종교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곳 스님들은 배가 충분히 부르거나/ 대단히 게으르다”고 “스님들은 둘러대기도 잘 한다”고 풍자했던(「내소사, 선운사, 동불암 똘감」) 차창룡 시인은 어떤 스님으로 살고 있을까 살짝 궁금하기도 합니다. 삶의 모든 자리가 수행의 장입니다. 성과 속의 자리가 공간적 의미로 구분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이 선 자리가 성당이며 절이며 예배당일 것입니다. 어쩌면, 살면서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응대하는 가에 따라 거룩한 수행자인지 속된 사람인지가 판명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사물과 일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 수행의 본질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신비를 믿습니다. 당연히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사람을 섬기는 일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가난, 이별, 죽음, 사건과 사고, 고통, 질투, 욕망 등 그 숱한 것들에 대해 어떻게 응대하고 있는지.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태도가 있는지. 세상의 아픔에 예민하고 약자와 고통 받는 이들과 연대하려는 마음과 태도가 있는지. 또한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과연 어떤 방식과 태도로 응대하고 있는지. 차창룡 시인의 시를 읽으며, 다시 한 번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수행의 자리임을 생각합니다.

 

[월간빛, 2019년 2월호, 정희완 요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조직신학 교수, 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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