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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한반도에 평화를: 평화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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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20 ㅣ No.1145

[경향 돋보기 - 한반도에 평화를] 평화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2018년은 한반도 평화의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4·27 판문점 남북 정상 회담을 시작으로 9월의 평양 남북 정상 회담까지 약 6개월여 동안 한반도와 관련된 일곱 차례의 정상 회담이 개최되었으며, 남북과 북미 정상 간에는 특사와 친서 교환이 수시로 이루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 현안에 해당하는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협상 구도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2018년 한반도 연쇄 정상 회담 평가

 

2018년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은 4·27 판문점 남북 정상 회담이다. 4·27 회담을 통해 남북의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고,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임을 천명함으로써 한국 전쟁을 종식하려는 입구를 마련했다. 남북 관계 발전의 의지를 표명하고 그동안 채택한 남북한 간의 모든 선언과 합의를 이행하기로 한 점도 의미가 있다. 7·4, 6·15, 10·4 남북 공동 성명, 남북 기본 합의서 등 기존의 모든 합의가 이행될 동력을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요청으로 전격 개최된 5·26 통일각 남북 정상 회담은 북미 비핵화 협상의 난기류를 해소하는 계기이자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 회담 성사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는 한반도 운전자로서 한국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된 계기였다.

 

9월 평양 남북 정상 회담 또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연기로 초래된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 국면을 해소하고 2차 북미 정상 회담을 개최하고자 여건을 마련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특히 남북 정상 간 공동 성명에 구체적인 비핵화의 내용이 담긴 것은 최초의 일이며, 지난날 북 핵 협상에서 한국을 철저히 배제해 온 북한의 태도와 비교할 때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볼 수 있다.

 

6·12 북미 정상 회담은 최초의 양국 정상 간 회동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은 북한의 최대 위협이자 적이었으며, 반미·반제국주의는 북한 정권의 정체성이었다는 점에서 북미 정상 회담의 성사는 김정은 위원장이 근본적인 변화를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 성명은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을 한반도 비핵화의 주체로 명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미 간 합의 내용에 다소 다른 의견이 있어도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 회담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중요한 계기로 평가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 시대의 서막

 

한반도의 평화를 모색하는 노력은 2018년이 처음은 아니다. 남북한은 이미 1970년대 냉전 체제에서 7·4 남북 공동 성명을 끌어낸 바 있으며, 1991년에는 남북한 간의 화해와 불가침 그리고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곧,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1992년에는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 선언도 도출했다. 2000년에는 역사적인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여 6·15 공동 선언을 도출했으며, 2007년에는 10·4 선언에 합의했다. 특히 6·15 공동 선언 이후 남북한은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 공단 사업으로 대표되는 남북 관계의 일상화 시대를 열었다.

 

이와 같은 성과에도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진전이 없었다. 동해에서 유람선이 금강산으로 향하는 상황에서 서해 북방 한계선(NLL)에서는 남북 해군 사이에 교전이 발생했다. 결국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 관계는 냉전 체제 수준으로 돌아갔다. 두 차례의 남북 정상 회담에도 북미 간에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때문에 2017년 말까지 북미 관계는 극단적 대립 상태를 유지했다.

 

2018년 한반도의 정세 변화는 지난날과 다른 중요한 특성을 담고 있다. 먼저 안보와 교류의 불균형이 해소되었다. 지난날 남북 관계는 안보적 대립 관계가 해소되지 않아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러나 2018년 남북한 간 군사적 신뢰 구축의 증진으로 교류 협력을 위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지체에도 남북한 간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조치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9월 평양 남북 정상 회담에서 남북의 국방부 장관은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했으며, 공동 경비 구역(JSA)의 비무장화, 철원 화살머리고지 지뢰 제거, 소초(GP) 시범 철거 작업 등 후속 조치들이 신속하고도 철저하게 이행되었다. 이는 한국 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날과 달리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발전이 병행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18년 남북 관계 발전은 미국과 긴밀한 공조 체제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북미 협상의 교착 국면을 타개한 것도 한국 정부가 노력한 결과였다. 2018년 한반도 문제 해결 프로세스가 지난날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유이다.

 

2018년 한반도 정세 변화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북한이 전략적 변화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2018년 4월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3차 전원 회의를 개최하여 경제·핵 병진 노선의 결속(종료)을 선언하고 경제 발전에 방점을 둔 새로운 전략 노선의 선택을 공식화했다. 2017년까지 핵·미사일 개발의 가속화를 통해 자위력 확보를 도모한 김정은 위원장 체제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핵·미사일 개발과 연동되어 부과된 대북 제재로 북한 경제 전반에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수출의 90% 이상이 중단된 상태이며, 석유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다. 주요 외화 수입원인 노동자 해외 송출 사업도 중단된 상태다. 대북 제재 국면의 해제 없이 북한의 국가 발전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으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비핵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선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디테일의 악마’ 딜레마

 

2018년 한반도 평화 정착의 계기가 마련되었지만 ‘디테일의 악마’(문제는 세부 사항 속에 있다는 뜻-편집자 주)딜레마도 점차 가시화했다. 6·12 북미 정상 회담 이후 비핵화 협상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2차 북미 정상 회담도 2019년 초로 연기되었다. 연내 목표로 추진된 종전 선언은 도출되지 않았으며, 미국의 대북 제재는 위기 국면이었던 지난해보다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세 차례의 남북 정상 회담에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 공단 사업의 재개, 경협의 활성화 등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조치들은 대북 제재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비핵화 프로세스가 지체된다는 점이며, 특히 북미 양국은 비핵화의 구체적인 단계별 이행안에 대해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동결 → 신고 → 검증 → 폐기’를 내용으로 하는 사찰 매뉴얼 방식의 비핵화이다. 그 반면 북한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모델인 자발적 비핵화 방식을 원한다. 매뉴얼 방식은 초기에 북핵 프로그램의 전모가 공개된다는 점에서 북한에는 부담이 되며, 자발적 비핵화는 투명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수용하기 어렵다. 비핵화 방식에 대한 북미 간 빅딜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협상의 단계마다 난항이 반복될 개연성이 있다.

 

비핵화 과정의 지체는 남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북 제재 국면이 지속되는 한 획기적으로 남북 관계가 발전할 수는 없으며, 남북 정상 간의 합의를 이행하는 데에도 제약이 있다. 한미 간 견해차도 있다. 미국의 목표는 북한 비핵화의 진전이며, 따라서 남북 관계의 발전도 이와 연동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유지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비핵화와 남북 관계를 병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비핵화를 넘어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지속 가능한 남북 관계를 통해 궁극적인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국가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11월 가동된 한미 실무위원회는 양국 간 대북 정책의 조율이라는 순기능과 함께 남북 관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자율성에 대한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다.

 

 

전망과 과제

 

‘디테일의 악마’ 딜레마에도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관계에 대한 전망은 비관적이라고 볼 수 없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이미 불가역적인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으며, 북미 모두 협상의 파기로 발생할 고비용 구조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미 협상이 실패할 경우 대내외에 비핵화 약속을 공언한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적 권위의 추락은 불가피하며, 대북 제재와 군사적 압박은 가중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정치적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 게이트 특검과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라는 벽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은 여론을 반전시키려면 비핵화 협상에서 뚜렷한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 회의를 통해 새로운 전략 노선을 선택하고 인민들에게 경제 발전을 약속했다. 새로운 전략 노선을 관철하려면 비핵화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의 발전도 필요하다. 북한 경제 발전의 전제 조건에 해당하는 철도와 도로 등 인프라의 현대화와 경제 개발구 정책이 성공하려면 남북의 경제 협력은 필수적이다.

 

지금은 비핵화와 평화 정착, 그리고 남북 관계 발전이라는 한반도 문제의 세 가지 핵심 영역 간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우리의 노력이 중요하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재자가 아니라 주체라는 점을 자각해야 하며, 우리의 전략적 목표를 관철하는 촉진자 구실을 해야 한다.

 

평화는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 조한범 -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통일연구원 남북협력연구센터 소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9년 1월호, 조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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