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남미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멕시코, 페루,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15 ㅣ No.1797

[남미 성지순례기] 남미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1) 멕시코, 페루,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0월 1일부터 20박 22일간의 남미 성지순례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의정부교구 능곡성당 신자들을 중심으로 대구, 청주, 안동, 거제 등 40명의 형제, 자매들이 함께한 멀고도 긴 순례였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성지순례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하신 장소를 중심으로 거룩하고 신비스러운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예루살렘이 우선적이고, 그 외에 거룩한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성인들과 교회 공동체의 유산이 관련된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과 동유럽을 거쳐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위대한 창조업적과 구원능력이 드러난 세계의 곳곳을 둘러보아야 하겠지만, 나는 지구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중남미로 가는 순례 여정을 받아들였다. 이유는 남미에서 10년 가까이 선교활동을 하다가 귀국한 신부님들의 배려로 특별히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체험을 곁들인 남미 순례여행이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지도 신부님과 함께 4개월에 걸친 여행준비를 잘 마치고 10월 1일 12시 30분, 드디어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현지 시간 10월 1일 11시 30분경 약 14시간의 긴 비행 끝에 멕시코시티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과달루페 성지로 향했다.

 

 

1. 과달루페 성지

 

첫 순례지는 멕시코 시내에 있는 과달루페 성지로, 1531년 원주민 모습의 성모님이 발현한 곳이다. 과달루페 성모님의 발현은 루르드나 파티마의 성모님보다 300년 이상 앞선 세계 최초의 발현으로, 가톨릭 신자들의 크나큰 사랑을 받는 곳이다. 특히 멕시코 국민들에게는 거의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에는 여러 개의 대성당 과 소성당들이 있는데 가장 의미있는 곳은 성모님의 발현 당시 성모님의 모습이 새겨진 틸마(용설란에서 추출한 섬유로 짠 망토 같은 멕시코 외투)가 보존된 대성당으로 순례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기도드리고 미사를 봉헌하는 곳이다. 본래는 바로 옆에 대성당이 있는데 지반 침하로 성당의 기초가 약해져 한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새 성당을 지어 사용하 고 있다. 이 성당 외관 중앙에는 “No Estoy yo aqui que soy to MADRE.”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그 해석은 “너의 어머니인 내가 여기 있지 않느냐.”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관심과 보호, 축복을 약속하는 성모님의 메시지이다.

 

성모님은 인디오 출신 농부였던 후안 디에고에게 나타나 테페악 언덕에 성당을 지으면 멕시코 땅의 모든 백성이 안고 있는 아픔과 불안, 슬픔을 위로해 주고 사랑과 자비를 베풀겠다는 메시지를 전하셨다. 1531년 당시는 잉카제국과 문화가 스페인에 정복당하여 원주민들은 극도의 혼란과 불안 속에 나라와 종교를 잃고 시름에 젖어 있었다.  테페악 언덕은 잉카의 아즈텍인들이 섬기던 뱀신을 비롯한 수많은 포악한 동물들의 신전이 있던 곳으로 해마다 여자와 아이들을 뱀신에게 바치던 곳이다. 인신공양을 하면서 흘리는 피가 신전의 제단을 물들이던 두려운 장소였다. 당시 잉카 문명의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은 미신적인 원시 종교 같은 원주민들의 종교를 무시하며 그들의 신전에 가톨릭 성당을 건축했다.

 

세례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후안 디에고는 미사에 참례하러 성당에 가다가 테페악 언덕에서 처음으로 성모님의 발현을 보고 메시지를 받게 된다. 그는 멕시코의 첫 주교인 스페인 사람 후안 수마라가를 찾아 가서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였지만 주교는 이를 믿지 않고 사실을 증명할 표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디에고는 다시 만난 성모님께 그대로 전하였고, 이에 성모님은 디에고에게 장미 꽃송이를 옷에 싸서 주교에게 보이라고 하였다. 주교는 디에고의 틸마(망토)에 새겨진 성모님의 모습을 보고 감동과 경외심을 느끼며 그 기적을 받아들였다. 그는 후안 디에고의 말을 믿고 테페악 언덕 위에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그후 인디언들은 성모님을 ‘토나친’, 즉 ‘우리 어머니’라고 불렀으며, 성모님의 자비와 사랑에 의지하여 삶의 의욕을 찾았다고 한다. 틸마에 새겨진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의 성모 마리아 성화는 신기하게도 481년이 지난 지금도 원래의 모습으로 대성당에 보존되어 기도와 헌신의 중심이 되었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 후 멕시코는 많은 변화가 생겼고, 후안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인디오들은 정복자들의 종교에 마음을 열어 이후 8년간 900만 명이 세례를 받는 기적을 보였다고도 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79년을 시작으로 네 번이나 과달루페 성모성지를 순례했으며, 마지막 순례 때인 2002년 7월에는 발현을 목격한 후안  디에고를 시성하였다. 지금도 많은 멕시코인들은 가능하면 자주 이곳을 순례한다고 한다.

 

과달루페 성지 내에는 성당 건물뿐 아니라 수많은 조각과 정원 등이 있으며 대성당 부속 박물관 옆 언덕 쪽에 자리한 공원에는 발현 당시를 재현한 동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틸마에 새겨진 성모님 그림의 눈에 드러난 사람들로 현대 과학으로 밝혀낸 것이라고 한다. 대성당에는 성모님의 성화와 디에고의 틸마를 보기 위해 온 많은 사람들로 혼잡하여 무빙워크 3중 구조를 설치하여 사람들이 정체하는걸 방지하였다. 순례객들은 성화를 보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과 성화를 보면서 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무빙워크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았다. 우리 순례팀은 3일간 과달루페 내 각각의 다른 경당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성모님의 모성적 보호와 도움을 간구하며 내 안의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 갈등, 고통을 내려놓고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멕시코 원주민들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기 위하여 멕시코 박물관과 피라미드들을 돌아보았다. 멕시코 근교의 테오티와칸, 해와 달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달리 꼭대기가 평평했는데, 그곳은 제사를 올리기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해, 달, 별, 곤돌 (독수리), 재규어(표범), 뱀 등 수없이 많은 신을 섬기며, 때로는 사람의 심장을 뽑아 바치는 인신공양도 있었는데 제물로 바쳐지는 사람들은 제관, 용사, 어린이 등 다양했다고 한다. 테오티와칸을 가로지르는 ‘죽은 자의 거리’(아즈텍문명 사회에서는 인신공양 풍습이 행해지는 곳이라 제물이 된 사람은 달의 피라미드까지 떨면서 걸어가야 했던 죽음의 길) 주변에는 방대한 양의 건축물이 모여 있었고 달의 피라미드와 태양의 피라미드를 포함한 건축물을 연결하는 도로만 4킬로미터에 달하는데 이 거리로 수많은 유적지와 사원을 갈 수 있었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높이 40미터에 이르는 건축물로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잘 되어 있어 정상에서는 이 지역의 신비롭고 오랜 역사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도 있었다. 건축물 하나하나에서 정치 권력의 힘과 종교적 상징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남미의 여러 지방에 크고 작은 수많은 피라미드들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한두 개만 보았다. 뛰어난 천문학과 영농방법, 건축기술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무자비한 권력과 종교적 무지로 인해 파멸을 몰고 온 흔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멕시코나 남미문화에는 문자가 없어서 그 정확한 내용이 후대에 자세히 전해지지는 않는다.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멕시코 역사 관련 유물이 60여만 점 소장되어 있는 곳으로 전체를 보려면 하루에 보기 힘들 만큼 넓고 방대한 자료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2시간가량 멕시코의 고대문명을 보면서 모든 것이 사람의 힘이 아닌 신의 힘이라고 생각하며 중남미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보고,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찾은 소칼로 광장은 멕시코시티의 광장으로, 이곳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과 대통령궁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특히 광장 주변은 많은 여행자들이 몰리는 곳으로 치안이 불안한 곳이므로 소지품을 특별히 더 잘 간수하라는 가이드의 당부가 이어졌다.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은 1573년부터 240년에 걸쳐 완성한 성당으로 다양한 양식의 건축방식으로 지어졌는데, 대성당 외벽에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품이 장식되어 있고 성당 내부는 5개의 중앙 제단과 14개의 크고 작은 경당이 이루어져 각각의 특징들이 다 달랐다. 성당 제일 안쪽 가운데 있는 제단이 가장 컸으며 온통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어 매우 화려하고 웅장해 유럽의 대성당들 못지않게 호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옛날 식민지 시대의 부황궁전(총독부)이던 대통령궁은 대성당과 인접해 있는 곳으로, 대통령궁이라서 그런지 경비가 삼엄하고 들어갈 때에는 검색 절차를 밟은 후에야 입장이 가능하였다.

 

대통령궁 내부에는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인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이 온 벽면에 그려져 있는데 강렬한 색채로 사실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벽화에는 스페인의 침략으로 고통 받고 있는 멕시코 사람들의 모습 등 여러 훌륭한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 컸는데 많은 그림을 다 감상하기에는 머무는 시간이 너무나 짧아 아쉬웠다. 이렇게 우리 일행은 3일 동안의 멕시코시티를 여행한 후 다음 여정인 페루 리마로 향했다. [월간빛, 2019년 1월호, 정은미 레지나(성김대건성당)]

 

 

[남미 성지순례기] 남미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2) 멕시코, 페루,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2. 페루 리마

 

멕시코에서 밤비행기를 타고 이른 아침에 페루 공항에 도착한 우리 순례팀은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페루 서부 해안의 황량한 지역을 4시간 정도 달리고 나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주변의 삭막한 풍경과는 달리 숙소는 바다와 근접하여 관광지로 조성된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숙소 내에 작지만 아담한 성당이 있어 그곳에 머무는 내내 미사를 할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지도신부님이 처음부터 숙소를 정할 때 성당이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정하신 것 같았다. 리마에 도착한 날은 마침 페루에서 가이드를 맡은 단테 씨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라 혼배미사를 하게 되어 현지의 결혼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오후 5시 혼배미사로 시작된 결혼식은 페루의 전통 예식과 함께 늦은 밤까지 춤과 노래를 곁들인 흥겨운 축하파티가 이어졌다. 

 

다음날은 페루의 ‘나스카 라인’의 신기한 문화유산과 사막을 체험할 수 있었다. 광야와 같은 이 지역은 탈출기의 광야를 연상시켰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엄청난 규모의 대평원과 거대한 사막을 보면서 남미가 대륙의 나라임을 실감케 했다. 고대 수수께끼인 나스카 라인은 종교적인 의례의 결과로 생긴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신비 속에 쌓여 있고 워낙 광활하다 보니 그 전체적인 윤곽을 보기 위해서는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보아야 잘 볼 수 있었다. 황량하고 메마른 건조지대에 독특한 문명이 만들어낸 수많은 기하학적인 모형들과 그림들은 콘도르 문양, 수십 종의 동식물그림, 수백 개의 다양한 선들, 어떻게 어떤 용도로 왜 만들어졌는지 지금도 의문이라고 한다. 기원전 500년의 역사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는 걸 보면 얼마나 건조한 곳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경이로운 페루의 인류문화유산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위대한 신비를 느끼며 그 오묘한 섭리를 묵상했다.

 

점심은 수백 년 묵은 선인장이 집안을 가득 채운 식당에서 요리한 현지식 닭고기와 옥수수, 채소 등으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와카치나 사막체험을 하러 갔는데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우리가 도착할 때 즈음은 해가 지기 시작하여 어두운 사막 위를 달리게 되었다. 지프차를 개조해서 만든 버기차를 타고 사막 위를 달리는데 가파른 모래 언덕을 속도제한도 없는지 버기차는 혼이 쏙 빠질 듯이 질주하였고 주변은 사방 천지가 모래 산이었다. 조명을 켜고 달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의 멋진 장관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어느 모래 언덕에서 아래로 야간조명을 켜고 내리 달리는 샌드보딩 체험은 정말 신이 났다.

 

다음날은 리조트 인근에 위치한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하느님의 또 다른 창조 신비인 바예스타 새 섬 투어에 나섰다. 바예스타섬으로 가는 도중에 나스카 라인을 따라 만든 건지 바닷가 언덕의 사막에도 거대한 피스코 라인이 있었다. 주변의 바닷가와 섬들은 오랜 세월 파도에 침식되어 기이한 형태의 동굴과 절벽바위들이 있었는데. 그 위로 수많은 새들과 바다 동물들, 물개, 남극에 산다는 펭귄무리, 그리고 난생 처음 펠리칸이란 새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신비롭고, 다양한 해양 동물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새 섬 투어를 마치고 우리들은 다시 인구 천만 명 가까운 대도시 리마로 돌아왔다. 이곳은 변두리의 산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달동네로 그곳에서 10년 가까이 선교사로 여러 본당을 동시에 사목하던 지도신부님과 인연이 있는 곳이라 특별한 환대를 받으며 현지인 가정에서 4~5명씩 나뉘어 2박 3일 간의 홈스테이체험을 하게 되었다. 가난하지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깊은 사랑의 정과 친절한 삶의 모습이 깊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페루는 태평양 해안의 건조한 평야에서 안데스산맥을 끼고 열대우림까지 다양한 기후를 가진 척박한 조건에 빈부격차가 심하고 전체적으로 빈곤율이 높은 나라지만 인구의 77%가 가톨릭 신자인 나라다. 홈스테이 가정에서의 첫날 아침식사는 페루의 가정식인 삶은 옥수수와 감자, 삶은 계란과 절인 올리브, 커피, 우유가 나왔는데 우리나라 식으로 그야말로 웰빙 식단이었다. 내가 묵었던 홈스테이집 큰딸 자넷은 스페인어 외에 영어도 아주 잘하고, 밝게 잘 웃는 아가씨로 그의 가족들과 함께 미사도 하고, 동네투어도 했다. 저녁에는 우리가 리마 가족들을 위해 재래시장에서 장을 봐 직접 요리를 했는데 주메뉴로 해물탕, 돼지갈비찜, 무생채 등 한국식 요리를 대접했더니 굉장히 좋아하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다음날은 홈스테이 가족들과 성지순례팀 모두가 함께 시내관광을 나갔다. 리마 시내에 들어서면서 페루를 정복한 피사로의 기마상과 옛 성벽이 있는 작은 공원을 출발점으로 성 프란치스코대성당과 주교좌성당을 거쳐, 시내 중심가에 있는 남미의 첫 성녀인 로사 성녀(1586~1617)의 생가와 성당에 가서 설명을 듣고 기도를 했다. 로사 성녀는 스페인의 부유한 귀족가문 출신으로, 시에나의 카타리나를 모범으로 삼아 평생을 단식과 고행, 자선과 기도로 살면서 어떻게 하면 좀더 주님 수난 고통을 나눠 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침대를 버리고 밤새 기도를 바치는 등 극심한 고행을 스스로 실천했다고 한다. 완덕의 길을 향해 걸어간 성녀 로사의 삶을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리마의 또 다른 성인인 산 마르틴 데 포레스(1579~1639)는 ‘빗자루 수사’, ‘흑인의 성자’로 불리며 생가나 특별한 기념관도 없이 그저 그의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통하여 위대한 활동과 뛰어난 성덕으로 많이 알려졌다. 그는 가난한 메티즈(혼혈인)로, 페루 리마에서 태어나 일찍이 이발사 겸 의학공부를 한 후 도미니코회의 문지기로 들어가 가난한 이들과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인종,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사랑을 실천하여 놀라운 모범을 보였고 수많은 기적도 이루었다고 한다. 이렇게 로사 성녀와 마르틴 성인은 같은 시대에 살면서 서로 상반된 환경과 활동을 했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위대한 리마의 성인, 성녀로 추앙을 받고 있다. 리마 중심가에 있는 광장과 바실리카의 건물 및 박물관, 그리고 수만 명의 유골이 묻힌 성당과 놀라운 조각과 그림들을 보면서 스페인 점령시기의 비극과 위대함을 볼 수 있었다. 성 빈센트 성당에서 홈스테이 가족과 함께 마지막 저녁미사를 한 후 우리는 3일 간의 리마 일정을 마치고 다음 여정인 파라과이로 출발했다. [월간빛, 2019년 2월호, 정은미 레지나(성김대건성당)]

 

 

[남미 성지순례기] 남미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3) 멕시코, 페루,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3. 파라과이, 이구아수 폭포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은 리마에서 비행기로 약 6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다. 파라과이는 남아메리카 심장부에 위치한 내륙 국가로 인구 689만 명(2018년 통계), 가톨릭 신자 630만 명(2013년 통계)으로 전체 인구의 90퍼센트가 가톨릭 신자로 국교가 가톨릭이다. 이는 남미가 스페인에 점령된 이후 특별한 선교방법으로 원주민들과 혼혈인(메티즈)들을 감싸고 보호하며 그들의 인권과 자유로운 공동체 삶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오래 전 한국에서도 상영되었던 영화 ‘미션’에서 이러한 과거의 역사를 조금 보여주고 있었다.

 

파라과이 공항에 도착하니 파라과이 한인성당 주임 정도영 신부님께서 마중을 나와 계셨다. 밤 비행에 피곤한 우리 일행은 성당에 도착하여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오후에는 버스를 타고 근처에 위치한 신학교를 방문했다. 열악한 학교시설에도 불구하고 200여 명의 신학생들이 생동감 있게 생활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파라과이는 예수회 소속의 선교지로 대통령보다 주교가 더 존경받는 나라이고 그만큼 가톨릭의 위상이 높은 나라라는 현지 교포사목 중이신 신부님의 얘기를 들으며 신학교 내의 여러 건물들을 구경했다. 우리 순례팀의 방문에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함께 마련한 특별한 점심으로 닭고기 구이와 만디오까(고구마처럼 생긴 야채로 고기 먹을 때 꼭 먹는다고 함)를 준비해 주어서 맛있게 식사를 한 다음, 한인 교우들의 후원으로 새로 짓고 있는 성당으로 향했는데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이곳에 와서 보니 파라과이 교회의 가난한 현실에 한국 교회의 작은 후원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미션’의 현장에서 후원과 나눔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의미 있는 일들을 이루어지게 하는지, 하느님의 무한한 힘을 또 한 번 느낀 시간이었다. 신학교 방문 후 아순시온의 주교좌성당인 메트로폴리타나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드린 후 다음 여정지인 이구아수 폭포가 있는 브라질 아르헨티나로 가기 위해 침대버스처럼 편안한 버스를 탔다.

 

황량하고 척박한 땅 페루와 달리 파라과이는 대평원 지역으로 가장 높은 산이 870m에 불과한 숲으로 우거진 비옥한 땅이었다. 아순시온에서 브라질까지의 도로는 그야말로 저 푸른 초원의 연속이었다.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에서 브라질로 가기 위해 버스로 이동하는 길가에는 파라과이 전통복장을 한 여인들이 기름기 없는 베이글 같은 빵을 팔았는데 파라과이 전통 빵 ‘치파’라고 했다. 거리 곳곳에 치파를 파는 아가씨들이 눈에 띄었고, 멀리서 달려온 차들이 잠시 휴식도 취할 겸 간식을 먹기 위해 휴게소에 들어서면 빵이 식지 않도록 천으로 싼 치파 바구니를 들고 기다렸다는 듯이 점원들이 빵을 팔았다. 정 신부님께서 꼭 먹어봐야 하는 빵이라며 달달한 음료수와 함께 담백하고 고소한 치파를 간식으로 사 주셔서 다들 맛있게 먹었다. 브라질 국경에 도착해서는 여권심사를 받은 후 국경을 넘어야 했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밤 11시가 넘어서야 브라질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브라질에서의 첫 일정은 이구아수 폭포 관광! 호텔에서 아침 일찍 미사를 드린 후 식사를 마치고 이구아수 폭포로 향했다. 이구아수 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경지대를 따라 형성된 곳으로 한 해 방문객이 1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국립공원은 워낙 면적이 넓은 곳이라 폭포로 가기 위해서는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열대 밀림의 시원하고 푸른 숲속을 통과해야만 했는데 전체 2.7km의 울창한 밀림은 자연 그대로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었다. 신이 창조하신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이라고 지칭할 만큼 대단한 이구아수 폭포를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그야말로 가히 장관이었다. 폭포가 가까워질수록 물줄기 소리는 더욱 우렁차게 들려 왔고 270여 개의 크고 작은 폭포의 우렁찬 물줄기 소리를 듣고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폭포 속으로 빨려 들어 갈 것만 같았다.

 

최대 높이의 낙차와 웅장함을 자랑하는 ‘악마의 목구멍’은 폭 150m, 길이 700m, 높이 약 82m로 초당 약 6만 톤의 물을 쏟아 낸다고 한다. 이구아수 폭포 전망대는 폭포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모두가 감동을 받는 곳이라고 했다. 폭포에 가까이 갈수록 물줄기는 더욱 세차게 뿜어지므로 다들 비옷을 입고 전망대로 다가갔다. 영화 ‘미션’을 비롯한 여러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구아수 폭포, 마루꼬 사파리 보트투어를 타고 폭포 가까이로 갈 때는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정말로 신이 났었다. 신이 창조한 자연이 이토록 위대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했다.

 

저녁식사 후에는 파라과이 동쪽에 위치해 있으면서 브라질과 국경을 접한 도시로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우다드델에스테에 있는 한인공소를 방문하였다. 아순시온 한인성당 주임으로 사목하고 계시는 정도영 신부님께서 한 달에 한 번 이곳 한인공소에 오셔서 미사를 드린다고 했다. 우리 순례팀도 이곳 한인성당에서 한인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는데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어 무척 감사했다. 미사를 마치고 조촐하게 다과와 차를 준비해 준 한인신자분들의 따뜻함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문득 지구 반대편 이 먼 곳까지 오셔서 사목을 하고 계신 정 신부님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파라과이의 성지순례는 놀라운 하느님의 창조업적과 과거와 현재에 이루어지는 미션을 통해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음날은 규모면에서나 발전량에서나 세계 최대라고 할 만한 이타이푸 수력발전소를 방문했다. 이구아수 폭포와는 14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브라질과 파라과이 두 나라가 협력하여 건설한 댐으로 세계 두 번째로 큰 수력발전소라고 소개했다. 그래서인지 댐에서 흐르는 물의 양이 너무 많고 넓어서 마치 바다처럼 보였는데 사실은 강이라고 했다. 숙소에서 2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이타이푸 댐에 도착하여 입구에서 상영하는 안내 영상물을 보고 댐 가까이 다가가보니 댐의 규모와 역할들에 대한 이해가 한층 쉬웠다. 거대한 댐 벽을 따라 발전 터빈이 장치된 원통형의 시설과 물을 막은 거대한 규모의 댐이 인상적이었다. 이구아수 폭포가 자연 안에 깃든 하느님의 엄청난 선물이라면 이타이푸 댐은 그 큰 선물을 잘 활용하여 인류의 선익을 도모하는 기술의 결실이라 하겠다. 댐 관광을 마친 우리는 브라질에서 비행기로 리마로, 리마에서 다음 여정지인 쿠스코로 이동하였다. [월간빛, 2019년 3월호, 정은미 레지나(성김대건성당)]

 

 

[남미 성지순례기] 남미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4) 멕시코, 페루,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4. 쿠스코 . 마추픽추, 시쿠아니교구

 

성지순례 15일차인 오늘은 페루 수도 리마에서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고대 잉카 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에 내렸다. 여기서 112km 떨어진 우르밤바 계곡에 위치한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미니버스와 기차로 한참 더 가야 하므로 쿠스코에 머물며 쿠스코 시내 관광과 식사를 한 후 오얀따이 딴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시골의 한적한 곳으로 멀리 안데스산맥의 만년설이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저녁미사를 마치고 그동안 순례하면서 느낀 소감을 조별로 간단하게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 뒤 다음 날 마추픽추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드디어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라는 마추픽추를 만나는 날! 우리는 일찍 기상해서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기차를 타기 위해 오전 5시 30분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게 되는데, 마추픽추 동네로 가는 길 위의 풍경은 문명과는 거리가 먼 목가적인 아름다운 풍경들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페루의 신비라는 잉카제국의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은 절벽을 깎아지른 꼬불꼬불한 산길에 고산지대라 매우 험난했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의 주변 경관은 아열대 고원 지대의 특성을 지닌 듯 선인장과 용설란이 특히 눈에 띄었다. 마추픽추는 15세기 중반 잉카제국시대에 건설된 산 속 마을로 잉카제국의 종교와 문화를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해발 2,437m에 위치한 고산지대로 산 아래에서는 어디에 서도 볼 수 없다고 하여 ‘잃어버린 도시’라고도 불린다.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뒤에 이곳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가 1911년 미국의 예일대 교수였던 빙엄에 의해 재발견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버스에서 내리니 입구부터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고, 입장권을 끊고도 한참을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마추픽추로 향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올라가는 내내 단체사진도 찍고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눈인사도 나누며 주변경치를 감상하는 사이 정상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한바탕 소나기가 내려 잠시 비를 피하면서 정상에서 바라본 마추픽추의 모습은 자연의 신비에 탄성이 저절로 나오게 할 만큼 신비로웠다. 촘촘하면서도 정교하게 쌓여진 돌과 고산지대에 계단식 농경지를 시설한 지혜, 그리고 계단 중간 중간마다 있는 수로는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의 주거공간으로 보이는 집터와 곡식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다는 식량저장소의 건물 흔적 등 마추픽추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잉카문명(태양의 후손)이 태양신-하늘(곤돌), 땅(재규어), 지하(뱀)를 섬기기 위한 영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어졌다는 가설이 유력하다고 했다. 뜨거운 남미의 태양을 신으로 모셨던 잉카인들이 이토록 웅장한 건축물을 건설하도록 가능케 한 힘은 무엇인지 그저 놀랍기만 했다. 거대한 자연만큼 위대한 인간의 힘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느낀 곳이었다.

 

다음날은 안데스산맥과 마추픽추 유적으로만 알려진 남미 페루에 위치한 시쿠아니 대목구를 방문하였다. 시쿠아니 대목구는 3,500~4000m의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는 길이 좁고 험난한 관계로 우리 일행들은 25인승 작은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끝없이 이어진 안데스산맥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시쿠아니 대목구로 향했다. 시쿠아니 대목구는 이번 성지순례에 동행한 수원교구 능곡성당 황주원 주임신부님께서 6년간 사목을 하셨던 곳으로 이번 순례에서 많은 의미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대목구는 교구보다는 규모가 작은 곳으로 신자 수는 30만 명에 이르지만 사제는 10~15명 정도이며 본당은 30개 정도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사제가 부족하니 한 사람이 2~3개의 본당을 사목하고 있고 그곳에 소속된 공소의 수는 한 본당에 작게는 5개, 많게는 20개까지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곳 시쿠아니는 지역이 워낙 넓고 교통수단은 열악한 관계로 대부분 공소로 운영되는 곳이 많고, 공소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에 한 번 미사 하는 곳도 있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공소의 축제 행사 때만 가서 세례를 주고 첫영성체도 한다고 한다. 같은 하느님을 믿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사는 우리들이지만 너무나 다른 환경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처지와 현실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시쿠아니 대목구장 로페즈 주교님과 함께한 미사 중에 사제가 부족한 이곳에 많은 신부님이 오셔서 더 많은 선교활동이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렸다.

 

미사 후에 방문한 ‘Hogar de ninas’라는 곳은 ‘소녀들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으로, 야나오카본당에 속해 있으며 약 15년 전쯤 생겼다고 한다. 이곳에 기거하는 소녀들은 유치원생 정도의 아이들부터 고등학생에 이르는 청소년들이 수녀님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고아는 아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있다고 한다. 페루의 시골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는 가정이 많은데 대다수의 가정이 가난해서 여자 아이들은 거의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성적으로 학대받은 아이들도 있고, 많은 형제자매들 틈에서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도 없이 양을 키우다가 오는 경우도 있고, 어려서부터 도시에 나가 마약에 손을 대어 경찰에 의해 인계된 소녀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원장수녀님은 재정의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집 전체를 높은 담으로 쌓아 아이들이 외부세력으로 받는 위협과 유혹의 손길을 차단하고 또 방황하는 아이들이 자주 도망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한다. 이곳 소녀들의 집에서는 세 명의 수녀님과 몇 명의 봉사자들이 소녀들에게 학교 교육과 자수, 뜨개질 등을 가르쳐 미래의 삶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고등학교 정규과정까지 이수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한다.

 

이렇게 공부를 마친 소녀들은 페루 수도 리마에 가서 다른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기숙사에 살면서 직장을 다니며 독립적인 삶을 준비한다고 한다. 황 신부님은 리마에서 4년간 사목하시면서 이곳 소녀의 집에 재정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빵 만드는 기계 한 세트를 한국에서 도움을 받아 사 주었는데, 이 기계를 이용하여 아이들이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주변에 판매도 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수녀님들과 봉사자들이 준비한 정성 가득한 점심식사를 한 후 방문해 준 우리 일행을 위해 준비한 소녀들의 여러 가지 장기자랑을 보며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물질적으로 영성적으로 너무나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곳 소녀의 집에 순례를 다녀온 뒤 실제로 많은 신자 분들의 후원이 있었다. 쿠스코는 듣던 대로 고산지대라 우리 일행은 대부분 고산증으로 숨이 차고 약간의 두통에 시달려 힘들어 했는데, 그곳을 벗어나니 정말로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시쿠아니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쿠스코로 가는 시골동네의 풍경은 그지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페루에서의 마지막 날 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숙소에서 하루를 묵고, 숙소 내 성당에서 아침미사와 식사를 한 뒤 쿠스코의 주광장이며 잉카제국시대의 중심지였던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했다. 시내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도시 곳곳에 아직도 남아있는 잉카문명의 흔적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석조건축물을 많이 보았는데 작은 틈새 하나 없이 모서리를 맞춰 쌓아올린 돌담은 대지진에도 끄떡없이 오랜 세월을 잘 견뎌내고 있었다. 쿠스코의 마지막 일정으로 잉카인들의 지혜와 영농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모라이의 농업연구소와 살리네라스의 염전을 찾았다. 계단식으로 땅 속 깊이 들어가면서 옥수수의 성장과 결실을 비교 연구한 모라이의 계단식 농경지는 오늘날에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으며, 잉카인들의 지혜와 과학을 엿볼 수 있었다.

 

살리네라스의 소금밭은 수백 개의 염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옛날 잉카인들은 현명하게도 내륙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소금 물줄기를 모아 계단식으로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하였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곳의 소금은 쓴맛과 떫은맛이 없고 광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인기가 많고 유명하여 많은 관광객이 소금을 사가는 걸 보았다. 넓게 펼쳐진 페루의 대지는 다양하면서도 광활했고 계절적으로 봄이 시작되는 때라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과 맑고 푸른 하늘은 여행하기에 최적의 기후를 선사해 주었다. 비록 역사의 무지와 우상숭배,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부정 부패와 독재로 얼룩져 국민들이 빈곤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자연 안에서의 페루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페루 쿠스코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친 우리는 리마공항에서 이번 성지순례의 마지막 여정지인 멕시코 칸쿤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월간빛, 2019년 4월호, 정은미 레지나(성김대건성당)]

 

 

[남미 성지순례기] 남미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5 · 끝) 멕시코, 페루,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5. 멕시코 - 칸쿤

 

성지순례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성지순례의 마지막 코스인 칸쿤은 멕시코에 있는 미국풍 휴양도시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리마에서 5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멕시코 칸쿤에 도착한 우리 순례팀은 그동안 빠르게 진행된 일정에 피로와 함께 약간 지친 상태에 있었다. 그간의 일정을 보상하고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칸쿤에서는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휴식하며 지금까지의 순례를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칸쿤은 멕시코반도에서 카리브해로 뻗어간 유카탄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바다를 따라 길게 펼쳐진 호텔들은 칸쿤의 명소로 세계 각지에서 각광받고 있는 꿈의 휴양지로 우리나라에서는 신혼여행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도 한다. 공항에서부터 대리석으로 멋지게 치장된 대합실과 편리한 주차시설, 아열대 기후에 밝은 햇살, 싱그러운 야자수 나무 그늘의 가로수 길, 시원하게 펼쳐진 천연의 숲은 가장 아름다운 휴양지로 개발할 만큼 전망과 경치가 아주 멋진 곳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주변은 아름다운 섬들과 칸쿤의 명소들을 방문하기 좋은 장소였고 호텔 안에는 모든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즐겁고 편안한 휴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호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칸쿤성당이 있다는 점이다.

 

매일 아침 식사 전에는 시원한 야자수 가로수 길을 여유롭게 걸어서 성당으로 갔다. 성당은 현대식 건축물로 내부에는 여러 가지 열대식물들과 함께 천장과 양 사방 벽이 트여 있어서 시원한 자연의 바람을 쐬며 미사를 드릴 수 있었던 색다른 모습의 성당이었다. 대성당과 소성당이 있는데 우리는 대성당에서 현지 신자들과 여행 온 관광객들 속에서 미사를 봉헌하기도 하고, 우리끼리 아담하고 작은 공간인 소성당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묵상하고 성체를 모시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호텔에서 자동차로 3시간가량 걸리는 곳에는 비교적 잘 보존 된 마야문명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태양신 숭배와 인신공양, 하늘과 땅 위, 땅 속의 사나운 동물들(독수리, 재규어, 뱀)을 공경하며, 문자 없이도 놀라운 건축 솜씨를 드러내고 영농법을 발전시킨 인디오문명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불가사의 중 하나인 쿠쿨칸신전이 있는 치첸이사의 피라미드와 용사들의 투지를 불사르는 경기장, 그리고 ‘세노테’라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있었다. 중남미에서 일어난 3대 고대문명은 멕시코의 아즈텍문명, 페루의 잉카문명과 유카탄반도를 비롯한 중남미에 넓게 분포된 마야문명으로 나뉘는데, 고대문명들이 큰 강을 끼고 발생하는 것과 달리 마야문명은 깊은 오지나 밀림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사실 그곳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3시간 내내 밀림 속을 가로질러 가는 듯했다. 쿠쿨칸신전과 전사의 신전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희생 제물로 사람들을 바쳤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아즈텍문명, 잉카문명, 마야문명은 건축물이나 종교의식은 비슷했지만 언어는 서로 달랐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참 특별하고도 신기하게 본 관광지 중 하나인 세노테! 이곳은 세상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만큼 아름다우면서도 신비스러운 형태의 엄청난 규모의 우물 같은 물웅덩이였다. 세노테란 멕시코 유카탄반도 일대에서 볼 수 있는 지형의 하나로 지반이 무너져 내린 싱크홀에 의해 노출된 석회암 암반에 비나 지하수가 스며들고 침식작용으로 자연우물이나 동굴 같은 형태를 이루는데 그 규모가 지상에서 수면까지 약 50m, 지름 60m, 수심 40m 정도라고 했다. 이곳에서 순례객들이나 관광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들어가 수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물을 무서워하는 나에겐 공포의 순간이었다. 사실 가이드가 나중에 설명한 바에 의하면 이 웅덩이는 인신공양을 위해서 희생된 어린이들을 버리는 무덤과 같은 곳이라고 했는데 그곳의 물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시원했다. 살해당한 어린이들의 시체가 버려진 곳이라고 미리 이야기 했다면 아무도 그곳에 가서 목욕을 하거나 수영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어리석은 인간의 그릇된 종교의식이 끔찍한 인신공양의 제례를 가져왔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렇게 희생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어왔을 때 상상할 수도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대제국의 수많은 백성들이 수십 명의 스페인 기마군에게 정복당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러한 무지와 공포의 종교심으로 나라가 멸망하고 종교심이 무너지고 난 뒤, 허탈감에 빠져있는 중남미인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며 보호자로 발현하신 과다루페의 성모님의 모습은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 같다.

 

오늘날의 멕시코 칸쿤은 사실 전통적인 성지의 개념과는 동떨어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하느님의 사랑과 거룩하심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아름다운 해변과 원시적인 숲이라고 할 수 있는 아열대의 밀림들, 기묘한 모양을 가진 섬들의 모습과 자연환경이 하느님께로 이끄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의 무지와 죄악으로 빚어진 역사의 비극들을 통하여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돌봐주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묵상거리는 생생하고도 강렬하게 다가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수많은 이야기와 신비의 수수께끼로 치장된 멕시코의 동쪽 바다, 거대한 큐바섬이 지척에 있는 카리브해의 에메랄드빛 아름다운 해변과 고대 마야문명의 웅장함! 신이 내린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마음껏 즐기고 만끽할 수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넓게 이어진 관광지와 바다 가운데 있는 수많은 섬들이 있어서 휴식과 즐거움을 찾는 세계 곳곳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우리도 자연적인 아름다운 곳, 무애레섬(여자들의 섬)을 찾아 하얀 밀가루처럼 부드럽고 고운 바닷가 백사장을 걷기도 하고 수영을 즐기기도 했고, 인공적으로 잘 꾸며진 놀이동산인 엑스칼렛에서는 흥미진진함 속에서 낭만을 찾기도 하고, 호텔에서 편안하게 휴식과 명상에 잠기는 등 자유로운 선택을 하며 여유있게 보낸 멋진 마무리 여행들이 긴 여정의 남미 성지순례를 돋보이게 했다고 본다.

 

우리가 칸쿤에 머문 3일은 그간 힘든 성지순례 중의 피로를 뒤로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재충전하는 시간이 되었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더욱 깊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행운과도 같았던 칸쿤에서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 후 각 조의 대표들이 그간의 성지순례 중 느꼈던 은총 가득한 시간에 대한 소회를 간단하게 발표한 다음 우리는 모든 순례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칸쿤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성지순례는 20박 22일의 비교적 긴 여정이었던 만큼 시간적으로 정해진 일정에 맞게 빠르게 움직여야 했고 각 나라로 이동하기 위해 여러 차례 비행기를 갈아 타야 했으므로 체력적으로 힘도 많이 들었지만, 다들 잘 이해해주고 따라 주었기에 별 탈 없이 무사히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성지순례를 주관해주신 박재식(토마스) 신부님과 좋은 순례가 되도록 이끌어 주신 능곡성당 황주원(미카엘) 신부님, 파라과이 한인성당 정도영(베드로) 신부님, 그리고 성지순례를 함께하면서 순례 처음부터 끝까지 매일 미사를 집전해주시고 좋은 강론을 해주신 원로사제 이성배(사도요한) 신부님께 감사드린다.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과달루페 성모님께 감사와 사랑을 드린다. [월간빛, 2019년 5월호, 정은미 레지나(성김대건성당)]



3,62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