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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새해를 또 다시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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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07 ㅣ No.610

[레지오 영성] 새해를 또 다시 맞이하며...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지금 놀 때가 아니라 공부할 때야. 어른이 되고나서는 공부할 시간도 없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내 말을 명심해!”

 

실제로 10대에는 대입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공부에 쏟아붓습니다. 그리고 20대가 되어서는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양의 공부를 합니다. 문제는 취업을 하고난 뒤입니다. 공부와 담을 쌓게 됩니다. 20년 넘게 한 공부에 지친 것일까요? 한 조사에 의하면 30대 이후의 40%가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하긴 예전에는 지하철만 타도 책을 읽는 분들을 많이 볼 수가 있었지만, 이제는 어디를 가도 책 읽는 사람을 보기가 힘듭니다.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저의 학창시절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맞는 것일까요? 공부할 시기인 10~20대에만 열심히 공부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공부할 시간이 전혀 없는 것일까요? 솔직히 존경하는 선생님이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공부는 한 순간에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그리고 계속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자주 깨닫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책을 읽고 또 공부하면서 제 자신이 더 나아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세상이 더욱 더 새롭고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주님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역시 아는 만큼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더욱 더 뜨겁게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으로 어렵고 힘들다는 세상을 기쁘게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순명은 하느님을 알기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가능

 

2019년 기해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그 새해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시작합니다. 바로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서 올 한 해를 잘 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모님의 삶을 묵상하다보면 지금의 우리들처럼 세상의 판단을 내세워 하느님을 만나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듣게 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라면서 거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따라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하시지요.

 

자기 삶의 주도권을 하느님께 맡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순명은 하느님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셨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순명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그의 고백록에서 “당신께서는 저와 함께 계시건만 저는 당신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깨달음에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당신과 함께 하지 않았던 자신의 몸을 계속 담금질해서 기도와 묵상 그리고 끊임없는 회개의 삶을 통해 주님을 점차 알 수 있었습니다. 아는 만큼 더욱 더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성인께서는 그 결과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실 수가 있었지요.

 

이처럼 성모님을 비롯해서 많은 성인성녀께서는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 노력을 통해 자기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맡기면서 그 안에서 커다란 기쁨과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알아가고 있을까요? 또한 주님 안에서 기쁨과 위로를 받으면서 살고 있나요?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내 곁에 오셔도 알아챌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은총의 선물을 주셔도 그 선물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청원을 들어주셔도 이 청원이 이루어졌는지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감사의 기도를 바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만큼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사랑은 ‘얼마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느냐 안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님께 “사랑합니다. 주님~~”이라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입으로만 이런 외침을 하고 있으며, 마지못해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말 한 마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실천을 하는 것, 그래서 주님을 알기 위해서 더욱 더 힘내서 노력하는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좋은 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또 다시 맞이하는 새해라고 가볍게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또 한 살 더 먹는구나”하면서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올해만큼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특별히 주님을 알기위해 더욱 더 노력하는 해가 된다면 어떨까요? 미사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집중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더 많이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또한 성경이나 각종 피정 참석을 통해 주님을 알아간다면 어떨까요? 더 활발한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통해 세상에 주님을 증거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예년과 똑같은 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 더 새롭고 의미 있는 해가 되어 기쁨과 행복을 간직할 수 있는 은총의 해라고 말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올해는 멈추지 않는 노력이 되어 하나의 습관으로 자신 안에 새겨질 수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나쁜 습관을 바꾸고 좋은 습관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대한 믿음과 습관이 형성될 때까지의 반복 행동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시간은 보통 66일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따라서 나의 나쁜 습관을 벗어 버리고, 대신 주님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좋은 습관을 간직할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시는 주님이시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주님께서도 함께 하시면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어머니께서도 큰 박수를 쳐주시면서 우리 곁에 커다란 응원을 해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이루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복이 아닐까요?

 

또 다시 맞이하는 새해, 한숨 짓는 새해가 아닌 기쁘게 웃을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복 많이 받으십시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월호, 조명연 마태오 신부(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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