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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협ㅣ사목회

지금 여기 평신도: 평신도 주일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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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1-17 ㅣ No.80

[지금 여기 평신도] 평신도 주일에 생각해 본다

 

 

지난해 11월 19일 평신도 주일에 시작한 ‘한국 평신도의 희년’은 올 11월 11일 평신도 주일로 끝난다. 평신도를 주제로 희년이 선포된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희년이 끝나가는 즈음 진정으로 희년의 정신에 걸맞게 평신도의 삶과 신앙, 부르심과 사명에 온 교회 공동체가 관심을 갖고 뜨겁게 논의하고 쇄신을 모색했는지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물론,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이하 평협)가 나름의 계획을 갖고 여러 행사를 이끌었고, 뜻있는 단체들을 중심으로 몇몇 일들이 진행되었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반향을 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다.

 

필자는 희년을 시작한 날이자 마지막 날인 평신도 주일의 탄생 배경과 오늘날 현실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평신도’가 놓인 현실을 성찰하고 새로운 미래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평신도 주일의 탄생

 

평신도 주일의 탄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하 공의회)덕분이다. 공의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와 이를 통한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재발견이다.

 

위계질서와 제도로서 교회만을 생각하던 시대를 넘어서, 공의회가 선포한 교회는 세상과 함께하고 소통하는 교회였고, 그 주역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1968년 7월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발족하여 평협의 인준과 ‘평신도 사도직의 날’을 제정해 줄 것을 주교회의에 건의했다. 주교회의는 이를 수용하여 평협을 인준하고 대림 첫 주일을 ‘평신도의 날’로 제정했다.

 

그러나 1969년 주교회의에서 교회력의 첫날인 대림 제1주일이 평신도의 날로는 적당치 않다고 논의하여 1970년부터는 그리스도왕 대축일 전(前)주일(연중 제33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정하고 전국 각 본당에서 평신도의 강론과 평신도 사도직을 위한 헌금을 실시하도록 배려하였다.

 

이때부터 전국 평협은 평신도의 날 강론 자료를 작성해서 각 교구 평협과 본당에 전달해 왔고, 2차 헌금을 통해 여러 활동을 수행해 왔다. 한편 주교회의 2017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는 연중 제33주일에 거행하던 평신도 주일을 올해부터 연중 제32주일로 옮겨 거행하기로 하였다.

 

 

평신도 주일의 현실

 

그러나 평신도 주일이 지난 40여 년의 시간 동안 얼마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지는 의문이다. 1980년 세례를 받고 지속적으로 교회 전례에 참여했던 필자의 기억에 남는 뜻깊었던 평신도 주일은 없었다.

 

평협이 작성해서 전달한 강론 자료를 본당 미사에서 들어본 적이 없고, 가끔 평신도가 강론하게 되는 경우 대부분 본당의 사목협의회장이 지난 1년 동안 사목협의회의 활동을 보고하거나 본당 사제들의 노고에 대한 칭송으로 강론을 대신하는 것을 경험했을 뿐이다.

 

2차 헌금은 늘 있었으나 이 헌금이 어떻게 활용될지에 대한 설명도 들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필자만의 경험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이야기를 나누어 본 주변 신자들도 대부분 같은 경험을 했다.

 

이런 경험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적어도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평신도’가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평신도 주일이 왜 필요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전체 교회 안에 공감 또는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서 지난 시간 동안 평신도의 신원과 역할 등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뜻있는 사람들의 좋은 제언이 있었으며 공의회의 정신이 언급되는 일은 비교적 자주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제도 교회에서 평신도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는 눈에 띄지 않으며, 대부분의 평신도는 이런 문제의식 또는 주제에 관심이 없거나 접할 기회도 많지 않다.

 

 

왜 그럴까

 

한국 천주교회는 공의회 이후 지난 40-50년간 놀라운 성장기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공의회가 가졌던 문제의식이나 전망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유하기보다는 제도로서 교회를 잘 운영하는 것에 많은 노력과 우선순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도로서 교회를 잘 운영해야 하는 당면 과제의 수행은 사제와 평신도의 위계질서가 강화될 때 수월하기에 한국 교회는 아직도 사제 중심으로 모든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과정에서 공의회가 제시한 평신도는 존중되지 않게 되고 ‘수동적 신자’들이 다수 자리를 잡았다.

 

또 하나는 신자들의 관심 또한 개인의 신앙에 집중되어 있다. 교회의 존재 이유, 그리스도인의 사명, 이런 이야기들은 ‘나’와는 관련 없는 거창한 이야기이다. ‘나’는 그저 마음의 평화가 필요하고 조용히, 그저 착하게 지내면서 가정을 돌보는 것이 먼저다.

 

그렇기에 사회 교리만 하더라도 교회가 필요 이상으로 현실 정치와 사회에 개입한다고 느껴서 불편하다. 그런 판국에 평신도의 정체성, 사명 같은 이런 이야기들은 일종의 의무처럼 들릴 뿐 다가오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평신도’에 대한 교회 안의 인식이 바뀔 수 있을까? 그 답은 평신도들이 공의회 정신에 따라 개인의 신앙에서 벗어나 복음화의 주체로 성장하는 것에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평신도의 주체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성장해야 한다. 성장은 단지 교리를 배우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고 ‘내가 교회’라는 의식이 생길 때 가능하다. ‘내가 교회’라는 의식은 실제로 교회 안에서 평신도에게 많은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어야 생긴다.

 

권한과 책임을 지는 것만이 공동체 안에서 성장의 길임을 우리는 이미 삶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권한과 책임은 제도적으로 부여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전향적인 변화가 교회 전체 안에서 뒷받침을 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이제 호황기를 끝내고 어려운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교회 내부의 어려움(신자 수의 정체, 사제성소와 수도 성소의 감소, 미사 참여율의 감소 등)뿐 아니라 더는 교회가 사회의 신뢰와 존중을 받지 못하며,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와 함께 하지 못하는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를 돌파하고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길은 평신도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신앙인으로 성장하여 교회를 책임지고 세상 속에서 복음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에 있다는 것을 교회 공동체는 직시해야 한다.

 

 

평신도 주일의 미래

 

평신도 주일이 평신도가 교회의 주체로 성장하는 여정을 격려하고 고무하는 장이 된다면, 이는 공의회로 말미암아 탄생한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평신도 주일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기쁨을 나누는 축제의 날이면 좋겠다. 제도 교회로부터 부여받은 역할과 책임을 다한 신자들이 1년 동안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애씀에 대해 나누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한편으로는 성찰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평신도가 책임지는 교회의 전망이 활발하게 나누어지는 시간이길 바란다. 그럴 때 평신도 주일은 많은 이가 함께 평신도의 삶의 의미를 배우고 우리 모두가 교회임을 공감하며 우리가 받은 사명과 새로운 전망 안에서 일치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또한 공동체로서 교회를 경험하며 주체 의식을 갖는 소중한 체험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 안에서도 신앙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함께 교회를 이루어 갔다. 비록 지금은 평신도가 교회의 주체로서 자리매김이 가능할지, 평신도들이 정말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과 생각을 넘어서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신뢰하며 최선을 다할 때, 늘 그렇듯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당신에게로 이끄시리라 믿는다.

 

평신도 주일이 이런 우리의 믿음을 바탕으로 모든 평신도가 함께 만들어 가는 복된 날로 자리 잡기를, 평신도 희년을 마무리하며 진심으로 기도한다.

 

* 현재우 에드몬드 - 한국 가톨릭평신도국제공동체(CLC)회원. 교회 공동체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8년 11월호, 현재우 에드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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