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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춘천교구 80주년을 준비하며: 기억하지 않는 자에게 역사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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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14 ㅣ No.975

춘천교구 80주년을 준비하며 (1)


“기억하지 않는 자에게 역사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1939년 4월 25일에 설정된 우리 춘천교구는 2019년, 내년이 되면 어느덧 교구 설정 8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참으로 은총 가득했던 그 동안의 시간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80년이라는 짧지 않은 교구 역사의 흐름은, 교구민 모두와 함께 이루어낸 춘천교구의 영광스런 역사입니다. 그러나 80주년을 맞는 교구의 역사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과정 중에, 신앙 선조들에게 죄송할 정도로 안타깝고 아쉬운 점들도 있었습니다. 그 소회를 교우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도움을 청하고자, 금주부터 4회에 걸쳐 (1) 역사 사료와 유물의 중요성, (2) 역사 사료와 유물의 수집, (3) 역사 사료와 유물의 보존, (4) 역사 사료와 유물의 관리와 활용의 순으로 게재하려고 합니다.

 

 

역사 사료와 유물의 중요성

 

현재 교회는 정부의 후원으로 10년 동안 한국천주교회와 관련된 모든 역사 사료의 목록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행 첫 해인 2017년, 규모는 작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교구가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되어, 우선 교구 교회사연구소와 죽림동성당에 소장하고 있던 사료들을 목록화하는 작업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금년 한 해는 역사가 오래된 본당과 교구청의 문서 목록화 작업을 계획하고, 역사 사료 파악을 위한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 동안 많은 곳을 다니면서 마주한 현실은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오래된 본당일수록 문서가 누락된 것이 많아 찾을 길이 막막하고, 교구청 문서고에도 1962년(한국천주교회사료 총목록화 작업의 기준 연도) 이전의 문서는 남아있는 경우가 매우 드문 실정이었습니다. 교구의 역사를 정리하고자하는 이 시점에, 과거가 남긴 움직일 수 없는 역사 자료가 많은 부분 존재하지 않는다는 난감한 상황 속에서, 신앙의 선조들의 발자취를 어떤 방법으로 기록하여 남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충실한 백성인 춘천교구의 모든 교우 여러분! 지금 80주년을 맞아 우리가 시행하려고 하는 이 역사 사료 수집과 보존과 관리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신앙 선조들이 살아낸 시대적 상황과 삶에 대해 올바로 알 기회를 잃고, 교구의 역사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교구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각 본당은 물론 가정과 개인들 모두, 춘천교구와 강원도가 관련되어 있는 역사 사료로 판단되는 어떤 것이라도 소장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교구로 연락하여 기증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자세한 사항은 교구 홈페이지, 혹은 본당 게시판 참조)

 

여러분들이 기증한 모든 역사 사료와 유물들은 우리 춘천교구뿐만 아니라 한국천주교회의 역사 보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이 역사적 가치들을 통해 후대 신앙인들에게 교회 역사의 깊이와 폭을 마주하는 실증적이고 귀한 보고가 될 것입니다. 다음주에는 두 번째로 ‘역사 사료와 유물의 수집’ 에 관한 소회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2018년 7월 1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춘천주보 2면, 춘천교구 교회사연구소]

 

 

춘천교구 80주년을 준비하며 (2)

 


역사 사료와 유물의 수집

 

관심 있게 매일미사 광고란을 보신 분들은 아실 수도 있겠지만, 지난해 12월과 올 3월 매일미사 뒤쪽 광고란에 춘천교구 신앙선조들의 삶을 알 수 있는 춘천교구와 강원도 관련 역사 사료 및 유물기증운동 홍보를 하였습니다. 교구 80주년 준비의 일환으로 옛 자료 수집 차, 거금(?)을 들여 광고를 낸 것입니다. 광고가 나가자 고맙게도 몇 분이 연구소로 전화를 걸어 기증 의사를 밝혀주셨고, 또 어떤 분은 먼 지역에 살면서 우편으로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교회관련 물품이 담긴 상자(조상 대대로 사용하던 기도책 · 성가책 · 성물 등이 담긴)를 흔쾌히 연구소로 보내오기도 하였습니다.

 

처음 이 광고를 낼 때에는 너무 많은 역사 사료와 유물이 수집되면 어떻게 하나! 그렇게 되면 보관은 어떻게 하지? 등의 행복한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광고가 나간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런 생각은 기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증할 물건이 이렇게 남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있는데 기증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 속에 사료와 유물이 부족한 이유를 나름대로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살펴보니 먼 옛날 1800년대부터 1900년 중반까지의 교회사료는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오히려 1950년 이후의 자료를 접할 수 없었습니다. 6·25전쟁이라는 큰 사건과 1960년 이후부터 우리나라 주거문화 형태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빈번한 이사를 하며 가지고 있던 사료와 유물이 없어지거나 그 가치를 모르고 버려진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골동품을 수집하는 이들은 긴 세월동안 이사를 하지 않은 시골의 오래된 가옥에 홀로 사는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며 골동품들을 찾아낸다고 합니다. 신앙문화유산 해설사 양성 교육 때 사료와 유물의 수집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자 어느 자매님도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유품으로 남겨주신 교회 관련 상자를 방치해놓고 있다가, 어느 날 그 상자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는데 도대체 언제, 어느 때 그 상자가 없어진 것인지 알 수 없어 무척 안타까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료와 유물 수집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난 현 시점에서, 사료와 유물 수집을 위한 또 다른 방편을 찾아보고,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차선으로 선택될 수 있는 방법은 현존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오래 전 기억을 직접 듣는 것입니다. 구술(口述)을 통해 듣고, 그 이야기들을 여러 방법으로 검증을 거쳐 역사적 사실로 구성하여 사료화 시키는 것입니다. 검증과 고증이라는 난제가 있어 쉽지 않은 방법이라 이 또한 어려움이 크므로, 현물로 존재하는 기록된 사료를 찾아내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현 상황이 그러하질 못하니, 막막하고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다음 주에는 역사 사료와 유물의 보존에 대해 나누어 보겠습니다. [2018년 7월 8일 연중 제14주일 춘천주보 2면, 춘천교구 교회사연구소]

 

 

춘천교구 80주년을 준비하며 (3)

 

 

역사 사료와 유물의 보존

 

1898년 5월 29일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에게 봉헌된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한국천주교회 성장의 요람이며 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의 천주교인이라면 이 성당을 한 번쯤은 방문하였을 것입니다. 명동 성당은 한국에 건축된 서양식 성당 중 최초로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된 성당으로도 유명한데, 안타깝게도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제작 · 설치되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스테인드글라스에 ‘GESTA’ 라는 서명이 남아 있어 여러 가지로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명동성당과 같은 대규모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제작되려면 비용이나 제작처, 들어오는 과정 등의 상당한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함에도 그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을 교회사학자들이나 스테인드글라스 연구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다만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스테인드글라스가 제작된 대구대교구 주교좌 계산동성당에 남겨진 서명 ‘Henri Gesta. Toulous, FRANCE’에서 ‘Gesta’ 부분이 명동 성당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프랑스의 같은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계산동성당 본당사에 따르면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프랑스 툴루즈의 앙리 제스타가 제작하여,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항을 경유해 1902년 10월 13일 저녁에 대구로 옮겨와 설치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을 이렇게 자세히 말씀드린 이유는, 그만큼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은 그 시대적 상황을 마주하며 선조들의 업적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담아내고 역사의 심오한 무게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교구 설정 후 지어진 첫 번째 건축물은 예수성심께 봉헌된 현 주교좌 죽림동성당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왼편 잔디 밭 끝부분에, 골롬반회 선교사들이 중국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지은 첫 번째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건물은 성당 뒤편의 아파트 건축 때 생긴 균열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또 사라져 아쉬운 건물 한 채는 춘천시민들이 전쟁으로 인한 질병과 기아로 어려울 때 건강을 되찾게 해주고 희망을 갖게 했던 곳인 골롬반 병원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천주교인뿐 아니라 춘천 시민들도 치료를 해주어 그 때 치료를 받고 현재까지 살아계신 분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의미 있는 건물이었는데 현재는 성당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우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건물 중에 춘천교구 역사와 함께 하는 주교관과 교육관이 있는데, 두 건물 모두 1958년에 지어져 올 해 환갑을 맞이하게 됩니다. 교육원 건물은 교구 박물관 및 사료의 수장고, 교회사 연구소로 사용하기 위해 등록문화재 등재를 신청한 상태입니다.

 

현재 춘천교구는 죽림동 주교좌성당 부속 건물인 말딩회관에 역사전시실이 조성되어 있고, 강릉에도 성 골롬반 성인에게 봉헌된 임당동 성당 부속 건물에 영동지역 역사 전시실을 만들기 위해 구상 중에 있습니다. 교구 내에 여러 박물관이 조성되어 교구의 사료와 유물의 보존이 잘 이루어지고, 교우들이 역사의식을 갖고 잘 활용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마지막 차례로 역사 사료와 유물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2018년 7월 15일 연중 제15주일(농민 주일) 춘천주보 2면, 춘천교구 교회사연구소]

 

 

춘천교구 80주년을 준비하며 (4)

 

 

역사 사료와 유물의 관리와 활용

 

최근 한국천주교회가 조성한 전국의 성지와 박물관, 역사 전시실을 두루 다니면서 우리 교구에 조성하게 될 성지와 역사박물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4주간 교회 사료에 관련된 글을 주보에 기고하며 붙인 타이틀 “기억하지 않는 자에게 역사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글귀는 강원도 춘천 출신이며 천주교인인 작가 한수산 선생이, 사할린 동포들의 한이 담긴 묘역 묘비에 쓴 것인데, ‘역사’를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글의 제목으로 적당할 듯 해 옮겨온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지난 방한 때 한국의 주교들에게 ‘기억의 지킴이, 희망의 지킴이’가 되길 당부하시면서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이 이상화되거나 승리에 도취한 기억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단지 과거의 기억에 머물지 말고 순교자들을 감격하게 할 희망의 지킴이가 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조성하려고 하는 성인들에 대한 기억의 장소인 성지와 신앙선조들에 대한 기억과 유물의 관리와 활용을 위해 갖게 될 건물의 목적은, 그분들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신앙인으로 살아내기를 배우는 우리를 위한 교육의 장소이며 신앙선조들의 모범을 잊지 않으려는 기억과 회상의 장소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활동과 조성에 소요되는 비용을 거론하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의 필요성으로 이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역사 사료와 유물의 수집과 보관의 무용론을 이야기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일견 그런 분들의 주장과 견해가 이해되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가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고 말한 것을 비추어 볼 때, 지나간 역사에 대한 소중함을 뒤로 하고 사료와 유물의 수집과 보존, 그리고 관리와 활용에 대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간과하고 지나가면, 우리 춘천교구는 과거의 역사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연속성으로 얻어지는 교구의 현재와 미래도 불투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교구민 모두와 함께 4주간에 걸쳐 교구의 역사와 관련된 사료와 유물 수집과 보존, 관리와 활용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앙선조들이 남긴 그들의 삶에 대한 기억과 교훈을 바탕으로 현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그들의 영성을 모범으로 살아내 하늘에 계신 신앙선조들을 기쁘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춘천교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역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기를, ‘사랑으로 하나 되는’ 춘천교구 신앙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4주에 걸친 미흡한 생각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8년 7월 29일 연중 제17주일 춘천주보 2면, 춘천교구 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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