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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성화와 한의학: 슬픔이라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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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18 ㅣ No.506

[성화와 한의학] 슬픔이라는 병

 


마테르 돌로로사

 

슬픔에 잠기신 성모님, 통고의 성모님. 아드님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그분의 고통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마테르 돌로로사’는 슬퍼하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말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기신 성모님을 그림으로 남긴 화가가 많다. 눈물을 흘리시는 성모님, 혼절하신 성모님, 일곱 자루 단검에 가슴을 찔려 피를 흘리시는 성모님, 예수님의 시신을 무릎에 안고 계신 성모님, 그리고 십자가 곁에서 애통해 하시는 성모님 등 여러 유형의 그림을 통해 고통의 성모님이 전해져 온다. 그 가운데 십자가 곁에 서서 애통해하시는 성모님을 그린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그림을 보자.

 

본명이 피에트로 반누치인 페루지노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다. 그는 움브리아의 페루자에서 주로 활약하고 그곳에서 죽었기 때문에 ‘페루지노’라는 별명을 얻었다. 움브리아 화파의 전성기를 이끈 상징적 화가이자 거장으로 추앙을 받기도 한 그는 라파엘로의 스승으로 알려졌으며, 보티첼리와 기를란다요 등과 함께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그렸다.

 

페루지노의 그림 ‘십자가 아래에 있는 성모와 요한’은 표제 그대로 등장인물이 셋이다. 화면 중앙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화면 오른쪽에는 요한, 화면 왼쪽에는 성모님이 계신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앞날을 부탁하기까지 한, 예수님의 애제자로 알려진 요한은 슬픔에 차서 두 손을 모아 쥐고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올려다보고 있다. 성모님은 슬픔과 고통으로 차마 아들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신 채 두 손을 깍지 끼고 계신다. 성모님의 어두운 옷차림을 통해 고뇌에 찬 그 마음이 전해져 온다. 맨발인 채 서 계신 모습 또한 무척 스산하게 느껴진다.

 

 

스타바트 마테르

 

이른바 ‘성모 애상’이라고 하는 ‘스타바트 마테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시며 슬픔에 찬 성모님께서 서 계셨다.’라는 의미로, 중세부터 내려오는 기도문 가운데 하나이다.

 

기도문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첫 단락은 고통 중에 비탄에 잠긴 성모님을 노래한다. ‘비탄에 잠긴 어머니, 어둡고 아픈 마음 칼이 뚫고 지나가네. 그토록 비통해하심을 보고 누가 함께 울지 않으리오.’

 

두 번째 단락은 ‘사랑의 샘이신 성모님 제 영혼을 어루만지사 당신과 함께 슬퍼하게 하소서.’라며 공감을 부른다.

 

세 번째 단락은 간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거룩하신 성모님 구세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상처를 제 마음에도 깊이 새겨 주시고, 주님의 심판 날에 저와 함께 계시어 제가 불꽃 속에 타 죽게 하지 마옵소서.’

 

이런 내용에 곡을 붙인 음악이 있다. 페르골레시, 비발디, 하이든, 로시니, 드보르자크 등 여러 거장이 비통하고 애절한 어머니의 심정을 담아 각자 독특하고 개성적인 방식으로 이를 작곡하였다.

 

페르골레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이던 여인이 수녀원에 들어간 뒤 곧 세상을 떠나자, 그 애절함을 담아 스타바트 마테르를 작곡하였다. 그런데 페르골레시 또한 곡을 남기고 얼마 안 되어 죽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진다.

 

폴란드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카롤 시마노프스키는 라틴어로 된 이 기도문을 2년 동안 폴란드어로 번역한 뒤 곡을 붙여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첫 공연을 가졌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에서도 이 곡이 연주되게 하였다고 한다.

 

 

병이 되는 슬픔

 

사람에게는 일곱 가지 감정이 있다. 기뻐하는 것, 성내는 것, 생각하는 것, 근심하는 것, 놀라는 것, 무서워하는 것, 그리고 슬퍼하는 것이다. 슬픔은 기쁨보다 훨씬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람은 슬픔에 더 민감하다는 뜻이다.

 

또한 슬픔은 그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을 받기 쉬운 감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감정도 마찬가지이지만, 슬픔도 지나치면 장기의 기능을 손상시키고 여러 가지 병을 일으킨다.

 

한의학에서 슬픔은 간장과 관련된 감정으로 본다. 「동의보감」은 “폐(肺)에 지(志)가 있어서 슬픔이 생긴다. 또한 심이 허하면 슬퍼하게 되고 슬퍼하면 근심하게 된다. 또한 정기가 폐에 와서 어울리면 슬퍼하고 간이 허한데 폐기가 어울려도 슬퍼한다. 또한 슬퍼하면 기도 소모된다.”라고 하였다.

 

기가 소모되면 탈력이 심해지고 의욕이 떨어지며 운동 능력도 저하된다. 슬픔이 지나쳐 마음이 동요하면 정신도 상한다. 정신이 상하면 미치고 잘 잊어버리며 세밀해지지 못하게 되는데, 세밀하지 못하면 바로잡지도 못한다. 그런 사람은 음낭이 줄어들고 힘줄이 당기며 갈빗대를 잘 놀릴 수 없고 머리털이 까슬까슬하며 얼굴빛이 나빠진다고 하였다.

 

몹시 슬퍼하여 심포락(心包絡)을 상하면 잊어버리기를 잘하고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며 두었던 물건도 잘 찾지 못한다. 그리고 힘줄이 당기며 팔다리가 붓기도 한다. 때로는 실망감, 좌절감으로 우울증에 빠진다. 경우에 따라서 조울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슬픔이 밖으로 퍼지면 증오와 분노로 표출되고, 슬픔이 안으로 쌓이면서 삭혀지지 않으면 이른바 ‘화병’이 생긴다.

 

그러나 슬픔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는 말자. 슬픔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다. 슬픔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슬픔에도 공감할 수 있으며, 타인을 사랑하고 위로할 수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곁에서 슬픔을 이겨 내지 못하신 성모님께서는 인간이 겪는 그 어떤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을 겪으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 성모님을 통해 우리를 슬픔에서 건져 주시고 우리가 죽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4)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몸소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 신재용 프란치스코 - 한의사. 해성한의원 원장으로, 의료 봉사 단체 ‘동의난달’ 이사장도 맡고 있다. 문화방송 라디오 ‘라디오 동의보감’을 5년 동안 진행하였고, 「TV 동의보감」, 「알기 쉬운 한의학」, 「성경과 의학의 만남」 등 한의학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을 여러 권 냈다.

 

[경향잡지, 2018년 6월호, 신재용 프란치스코]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s://www.wga.hu/art/p/perugino/christ/galitzip.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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