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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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미사] 주님 만찬으로의 초대9: 전례와 신앙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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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07 ㅣ No.1780

[주님 만찬으로의 초대] (9) 전례와 신앙 공동체


하느님 백성들 함께 모여 거룩한 신비에 참여하다

 

 

“전례 행위는 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일치의 성사’인 교회, 곧 주교 아래 질서 있게 모인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예식 거행이다. 그러므로 이 행위는 교회의 몸 전체에 관련되고 그 몸을 드러내며 영향을 끼친다.”(전례 헌장 26항)

 

전례 헌장은 위와 같은 말로 전례의 공동체적 차원을 분명히 밝혀준다. 이는 전례 행위의 필수 조건으로서 거행하기 위해 모인 하느님의 백성, 곧 신앙 공동체의 본질에 대해서 성찰하도록 해준다. 

 

전례 행위는 사적인 행위가 아니다. 전례 행위는 복음 선포에 대한 ‘들음’에서 생겨나는 신앙의 본질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15) 

 

신앙은 한 개인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파견된 이들, 곧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던 사도들의 복음 선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언제나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그 ‘신앙 내용의 진실성’은 신앙을 전수하고 수락하도록 하는 공동체적인 방식과 분리될 수 없었다. 이처럼 신앙은 ‘사적인’ 방식으로 주어질 수 없기 때문에 공동체는 신앙의 본질적 조건인 것이다. 이는 신앙의 거행인 전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공동체는 단지 전례의 한 요소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수행될 수 없는 전례 행위들의 필수 조건이다. 

 

또한 전례 행위는 단순히 공적인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 행위이다. 그것은 일치의 성사인 교회, 곧 같은 신앙으로 일치되어 거룩한 신비를 거행하기 위해 모인 하느님 백성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례 거행을 위해 모인 공동체가 어떤 공연을 위한 ‘구경꾼’이나 ‘일반 대중’처럼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이 전해주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신앙 공동체의 본질을 잘 밝혀준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저마다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사도 2,42-47) 

 

초기 신자 공동체 생활의 중심에는 하느님과 나누는 인간의 친교, 사람들 간에 나누는 친교가 있었다. 믿음, 사랑, 기도의 나눔은 믿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행위 자체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존재 방식이었다. 여기서 행위는 소유가 아니라 존재와 부합한다. 곧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된 소유가 아니라 언제나 다른 사람을 향해서 열려있는 삶이 자연스럽게 행위로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전례는 단지 어떤 의식들을 함께 행하는 것이나 어떤 의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친교’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기쁨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따라서 전례 행위는 사적인 행위가 될 수도 없고 어떤 대중 앞에서 선보이기 위한 공연처럼 제시될 수도 없다. 전례를 거행하는 신앙 공동체는 어떤 목적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필요성에 의해서 맺어진 이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례 안에서 마주하는 이들은 그저 존재하고 같은 신앙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참된 만남을 이룬다. 어떤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형제자매들과 참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힘은 하느님 사랑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신앙 공동체가 매일 투신하는 복음화, 교리 교육,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은 사랑 그 자체로서 모든 것의 완성에로 인간을 이끌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솟아나온 활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교회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전례가 있다. 전례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거행하며 그 사랑을 드러내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에서 교회의 본질을 두려움 없이 세상에서 구원을 선포하는 교회의 모습에서 찾으셨다. 이에 따르면 복음의 기쁨으로 충만한 교회는 첫걸음을 내딛고, 뛰어들고, 함께 가며, 열매 맺고, 기뻐하는 제자들의 선교 공동체이다. 그 열매가 크든 작든 간에 이 여정 가운데 맺는 하느님 사랑의 결실이 바로 전례 안에서 아름다움으로 드러난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기쁨으로 가득하고, 언제나 기뻐할 줄 압니다. 또 작은 승리를 거둘 때마다, 곧 복음화의 활동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기뻐하며 경축합니다. 기쁨에 찬 복음화는 우리 일상의 요구 안에서 선을 키우며 전례 안에서 아름다움이 됩니다. 전례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교회는 복음화하고 복음화됩니다. 전례는 또한 복음화 활동을 경축하는 것이며 자신을 내어 주는 새로운 힘의 원천입니다.”(「복음의 기쁨」 24항)

 

김기태 신부(인천가대 전례학 교수) - 인천교구 소속으로 2000년 1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5월 6일, 김기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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