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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성지: 나자렛 성가정 성당,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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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02 ㅣ No.1757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나자렛 성가정 성당,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 성가정 성당 지하 경당.

 

 

베들레헴에서 아들 예수를 낳은 마리아와 요셉은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갑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40)고 루카 복음서는 전합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기 예수는 어느덧 열두 살 소년이 되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갔다가 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사흘 만에 성전에서 찾아낸 아들은 율법 교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소년 예수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고 하지요. 루카 복음사가는 이 일화를 전하면서 이렇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자랐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 2,51-52)

 

예수님이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나자렛에는 이를 기념하는 작은 성당이 있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이 성가정을 이루고 살았던 집 위에 세워졌다고 해서 성가정 성당이라고도 하고, 목수인 요셉의 작업장이 있던 터 위에 세워졌다고 해서 성 요셉 성당이라고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여러 성지 성당 가운데 요셉 성인을 기념하는 유일한 성당입니다.

 

- 성가정 성당 내부.

 

 

이 성당은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에서 100m 가량 북쪽에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의 위용에 가려 잘 드러나지도 않지요. 그 모습이 예수님과 성모님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 요셉 성인과 꼭 닮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셉 성인이 예수님과 마리아를 묵묵히 지켜주면서 성가정의 수호성인이 된 것처럼, 이 작은 성당은 사람들의 눈에도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을 말없이 지켜주고 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이스라엘 순례지 중 유일하게 요셉 성인을 기념하는 성당

 

성가정 성당 가까이에 가면 오른쪽 외벽 전면이 먼저 들어옵니다. 벽에는 소박한 모습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석상이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돌아 정문을 통해 성당에 들어서면 제대 뒤편 중앙에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그림이 있습니다.

 

제대 오른쪽에는 요셉이 꿈을 꾸는 장면이 그려져 있지요. 꿈을 꾸는 요셉과 관련해 성경이 전하는 내용을 잠깐 되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은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약혼한 여자가 자기와 살기도 전에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이 요셉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남몰래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남몰래 파혼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나자렛 성 요셉 성당 지하.

 

 

하지만 꿈에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마태 1,18-25 참조).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전갈에 처녀 마리아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고 응답한 것처럼, 요셉도 그렇게 응답한 것입니다. 만일 요셉이 천사의 말을 듣고도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리아는 불륜을 저지른 여인으로 당시 율법에 따라 돌팔매질로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대 왼쪽 벽면에는 예수와 마리아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는 요셉의 임종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아들과 아내의 품에서 조용히 임종하는 남편이 있다면 행복한 남편일 것입니다. 하물며 하느님의 아들 예수와 하느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요셉의 임종은 얼마나 복된 임종이겠습니까. “의로운 사람” 요셉은 임신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인간적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명령을 의로움과 믿음으로 받아들였기에 복된 임종을 맞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요셉을 임종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지요.

 

- 마리아와 요셉의 약혼(좌), 요셉의 임종.

 

 

성당 안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대형 동굴 같은 지하에 세례 터 흔적이 있고 바닥에는 모자이크화도 보입니다. 이 유적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전 시기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이 미사를 드리거나 기도를 바칠 수 있는 작은 경당도 갖추어져 있는데, 창문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특히 눈길을 끕니다. 요셉의 꿈, 요셉과 마리아의 약혼, 요셉의 임종을 묘사한 그림들입니다. 성당 안의 그림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로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그 아래 지하층에는 옛날 이 지역에 살았던 이들이 사용했던 곡식 저장고, 물 저장고 같은 시설들이 있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 살았던 당시의 생활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해주지요.

 

성 요셉 성당이라고도 하는 성가정 성당의 지하가 정말로 성가정이 살았던 집과 요셉의 작업장 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목수인 요셉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목공업을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작업장 터는 목공을 위한 작업장이기보다는 석공을 위한 작업장에 가깝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목수’로 번역되는 그리스어는 목공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돌을 다듬거나 쌓는 석공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목수로서뿐 아니라 석공으로서도 일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성가정 성당 지하의 세례터 흔적.

 

 

예수 마리아 요셉의 삶을 묵상하며 우리 가정도 성찰해야


어쨌든 이 작업장 터를 통해 적어도 요셉이 당시에 어떻게 일을 했는지 헤아려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나자렛은 작은 마을이어서 일거리가 충분치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요셉은 5km쯤 떨어진 도시 세포리스에 가서 일하기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세포리스는 당시 갈릴래아 지방의 수도로서 큰 도시였고 당연히 일거리가 많았을 테니까요.

 

성가정 성당은 웅장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성가정 성당과 성당 지하 유적들은 성가정을 가꾸어간 예수 마리아 요셉의 삶을 더듬어 묵상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 가정의 삶을 다시 한 번 성찰하게 해주는 더 없이 좋은 순례성지입니다. 나자렛을 순례하신다면 이 성당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4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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