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성경자료

[신약] 신약여행77: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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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10 ㅣ No.3915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여행] (77)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21)


하느님 뜻을 잘 분별하고 몸소 실천하여라

 

 

바오로 사도는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림은 황혼 녁에 남자와 여자가 삼종기도를 바치는 모습을 그린 밀레 작 ‘만종’.

 

 

믿음을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 바오로 사도의 특징과도 같은 이 표현은 그의 구원에 대한 생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느님의 백성은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육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동포들에게 아픔이 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로마 9,3)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그렇다고 해서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하느님의 약속이 무효가 된 것은 아닙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저질렀던 잘못은 율법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고 믿음보다 행위를 추구한 것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이야기합니다. 원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믿음을 가진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처음부터 이렇게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이들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로마 9,6-7) 바오로 사도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이들은 민족이나 혈통의 구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의로움을 얻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구원 약속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하느님의 백성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전의 삶과는 다른,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사실 이러한 삶의 형태를 표현하는 바오로 사도의 생각은 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합니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로마 12,10-12) 믿음을 살아가는 실천적인 모습은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처럼 보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윤리적인 가르침은 구체적인 환경과 상황에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지 보여 주는 예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들이 하나의 공동체에 보낸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천적인 가르침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하느님께 바치는 진정한 예배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을 통해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우리의 삶 자체가 하느님께 봉헌될 수 있을 때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1-2)

 

 

항상 깨어 있고 자신을 변화시켜라 

 

바오로 사도의 권고는 현실적입니다. 모두에게 다른 은사가 주어진 것처럼 그리고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여러 지체로 몸이 이루어진 것처럼 하느님의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맡겨진 은사에 따라 자신의 자리에서 살아갑니다. 단지 자신이 맡은 것에 잠자코 최선을 다하라는 권고라기보다 항상 깨어 있고 자신을 변화시켜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무엇이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인지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별없는 추종은 오히려 공동체를 어렵게 만듭니다. 선한 것, 완전한 것,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을 분별하는 것은 하느님 뜻을 따르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로마 12,9)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2월 10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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