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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전례] 달력 이야기, 교회가 달력을 개정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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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8-07 ㅣ No.1681

[세상 속의 교회 읽기] 달력 이야기, 교회가 달력을 개정한 까닭

 

 

아무리 여름이 예전에 비해 길어졌다 하더라도, 8월과 9월의 기온이나 기후는 확연히 다르다. 아직도 우리네 마음이나 피부는 8월이 지나면 계절이 바뀌어 감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9월부터는 달을 표기하는 영어 단어마저도 영판 모양새가 다르다. 9월부터 12월까지는 그 앞의 8개 달들과는 달리 ‘~ber’라는 돌림자로 끝난다. 그리고 ‘ber’ 앞에 오는 글자들이 수를 가리키는 라틴어 단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그런데 이 이름들이 실제로 해당 수사(數詞)들이 가리키는 수와는 다르다는 사실 앞에선 다소 의아해진다.

 

달의 이름이 이렇게 이상해진 데는 도대체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일까? 사실, 인류는 오랜 기간을 살아오면서 해 또는 달의 변화에 일종의 주기성 또는 규칙성이 있음을 주목하고, 오랜 관찰 끝에 이를 나름대로 체계화했다. 어떤 곳에서는 태양의 주기에 더욱 주목했고 또 어떤 곳에서는 달의 주기에 더욱 주목했다. 그리하여 태양력 또는 태음력을 만들어냈다.

 

그 중에 하나, 고대 로마인들은 1년을 10달로 나누고 그들이 섬기는 신들이나 상징성이 큰 이름들을 각 달에다 붙였다. 이를테면 새해의 첫 달은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을 따서 마르티우스(Martius, 지금의 3월), 둘째 달은 봄과 꽃과 미의 여신인 비너스 또는 아프로디테의 이름을 따서 아프릴리스(Aprilis), 셋째 달은 풍요를 관장하는 여신 마이아의 이름을 따서 마이우스(Maius), 넷째 달은 결혼과 출산을 관장하는 최고의 여신 유노의 이름을 따서 유니우스(Junius)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섯 째 달부터는 수(數)를 가리키는 단어를 써서 퀸틸리스(Quintilis, quin→5), 섹스틸리스(Sextilis, sex→6), 셉템베르(September, septem→7), 옥토베르(October, octo→8), 노벰베르(November, novem→9), 10월은 데쳄베르(December, decem→10)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열 달 외에 두 달을 더 두었는데, 농한기이자 전쟁 중에도 임시로 휴전하던 한겨울의 두 달은 애초엔 이름조차 없는 달이었다가 나중에야 야누아리우스(Januarius)와 페브루아리우스(Februarius)라고 명명되었다.

 

 

달력상 시기와 실제 절기가 맞지 않아

 

그런데 이 달력을 사용하다 보니 해가 갈수록 달력상의 시기와 실제 절기가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에 로마의 실력자 카이사르 율리우스가 이를 보완하여 새 달력을 만들었다. 이것을 그의 이름을 따서 ‘율리우스력’이라고 한다. 이 달력은 기원전 46년 11월1일부터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율리우스는 하루라도 빨리 집정관에 취임하고 싶은 마음에 편법으로 시행일인 11월1일을 두 달 앞당겨서 1월1일로 바꾸었다. 그리하여 11월이던 야누아리우스가 1월, 페브루아리우스가 2월이 되고, 나머지 달들은 두 달씩 순연되어 오늘날과 같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7월이 그 이름에 7이라는 수자를 그대로 안은 채로 9월이 되었다. 나머지 달들도 8은 10이 되고 9는 11이 되고 10은 12가 되는 변신을 했다.

 

게다가 율리우스는 자신이 태어난 달인 퀸틸리스를 자기 이름인 율리우스(Julius)로 바꾸었다. 이를 눈여겨본 후임 아우구스투스 황제 또한 집권 후에 자신의 탄생 월인 섹스틸리스를 아우구스투스로 바꾸었다. 그러고는 30이라는 날수가 짝수라서 불길하다는 이유로 가장 작은 달인 2월에서 하루를 떼어다가 덧붙여서 홀수이자 큰 달인 31일로 조정하였다.

 

- 그레고리오 13세 교황.

 

 

이 율리우스력은 고대 로마력의 결정적인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1년을 365.25일로 계산하고 4년에 한 번씩 윤년을 시행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4년이면 하루가 늘어나는데, 4년에 한 번씩 이 하루를 2월23일과 24일 사이에 끼워 넣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365.25일이라는 수치와 지구의 실제 공전 주기인 365.2422일 사이에는 0.0078일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11분 40여 초에 해당하는 시간인데, 당시에는 그 정도의 차이는 윤년 제도로써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그러나 1600년이 지나다 보니, 그 편차가 무려 10일이나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편차는 교회가 가장 중요한 부활 대축일을 지내는 데 혼선을 가져다주었다. 교회는 일찍이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부활 대축일을 춘분이 지나고 보름이 지난 뒤 맞이하는 첫 일요일에 지내기로 정한 바 있다. 그런데 달력의 춘분이 실제 춘분보다 10일이나 먼저 찾아오니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부활 대축일 지내는데 혼선 빚자 달력 개정

 

이에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은 달력을 계산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먼저 1년의 길이를 지구의 실제 공전 주기(365.2422일)에 근접한 365.2425일로 정했다. 그리고 윤년의 횟수를 조정하여 연도의 수가 4로 나뉘는 해를 윤년으로 하되, 그중에 400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해는 도로 평년이 되는 것으로 정했다. 가령, 2000년은 400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윤년이지만 1900년은 400으로 나누어지지 않기 때문에 윤년이 아닌 해로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3300년에 약 하루가 줄어들었다. 이렇게 조정한 다음에는 그때까지 사용해 오던 달력을 절기와 일치시키기 위해 1582년은 1년의 길이를 10일 줄인 355일로 정했다. 곧 1582년 10월4일 다음날을 10월15일로 정한 것이다.

 

이것이 율리우스력의 문제와 모순점을 보안하고 개혁하여 오늘날 전 세계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오력’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달력과 실제 절기가 꽤 잘 맞아 떨어지게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1년의 날수와 지구의 공전 주기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참고로 한국이 그레고리오력을 도입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갑오개혁 이듬해인 1895년이다.

 

- 역사적인 1582년 10월 4일 그리고 15일.

 

 

달력은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해 오면서 발견된 문제와 모순점을 보완하고 개정하는 차원에서 적잖은 변천 과정을 거쳤다. 그러면서 정확성과 편의성 같은 합당한 명분들 외에 권력자들의 야심과 욕망 섞인 의중에 휘둘리기도 했다. 예컨대 고대 로마에서는 1년이 10달, 날수로는 304일밖에 되지 않았으나, 관리들이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려는 속셈으로 달력을 관장하는 대제관들에게 뇌물을 주고 무려 455일로 늘리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앞에서 말한 율리우스 황제나 아우구스투스 황제 말고도,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개인의 위업을 과시하기 위해 파쇼 달력을 제정했고, 소련의 스탈린은 경제적 목적에서 소비에트 달력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18세기말 프랑스 혁명 시기엔 10진법에 기초해서 7일 일주일이 아닌 10일 일주일 단위의 달력을 만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7일에 하루씩 쉬던 휴일이 10일에 한 번으로 줄어든 데 대한 민중의 반발 때문에 이 달력은 실패했다. 어쨌거나 달력은 늘 인류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8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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