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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추기경 정진석 회고록59: 새로운 목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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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29 ㅣ No.468

[추기경 정진석] (59) 새로운 목자의 탄생


사랑과 정의 실천하는 교황 되길 함께 기도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황 선출 직후 2005년 4월21일 로마에 있는 숙소 앞에서 군중에게 답례하고 있다. [CNS]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뒤를 이을 새 인물을 고대하며 수많은 군중이 성 베드로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2005년 4월 18일 오후, 교황 선거인 콘클라베의 첫 번째 투표를 앞둔 때였다. 라틴어 ‘콘클라베(Conclave)’는 ‘자물쇠가 채워진 방’을 의미한다. 교황을 선출할 추기경단은 일제히 선거 회의장에 들어가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투표를 진행한다. 또 참석자들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비밀로 한다.

 

이날 오후 4시 30분, 교황 선거를 위한 추기경단 115명의 행렬이 성령의 도움을 바라는 성가 ‘오소서, 성령님(Veni Creator)’을 부르며 선거 장소인 시스티나성당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텔레비전을 통해 콘클라베의 시작을 생중계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우리나라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법적으로 교황 선출 자격이 있는 80세를 넘긴 나이여서 아쉽게도 콘클라베에 참석하지 못했다.

 

시스티나성당에 도착한 추기경들은 선서를 한다. 서약은 먼저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이 서약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1996년 발표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교황령 「주님의 양떼」의 규정들을 충실하고 철저하게 준수할 것을 맹세하는 것이다.

 

특히 「주님의 양떼」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의 미디어와 절대 접촉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실제로 2005년의 콘클라베에서는 추기경단 숙소인 마르타의 집 전화와 인터넷 회선이 절단됐고, 숙소와 시스티나성당에는 휴대전화 사용이나 도청을 방지하기 위한 방해 전파를 내보내는 등 보안을 강화했다. 추기경들은 어떤 식으로든 교황 선출과 관련된 모든 비밀을 엄수하고 교황 선출에 관한 어떤 형태의 간섭이나 반대 또는 개입에 찬성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선서한다. 추기경들은 최후의 심판 장면이 그려져 있는 시스티나성당 벽화 앞에서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 성경에 손을 얹고 “나 아무개는 그와 같이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합니다”라고 하면서 “하느님과 이 거룩한 복음은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한다. 추기경들의 선서 후에는 ‘외부인 전원 퇴장’을 선언하고 추기경단 이외의 사람을 모두 성당 밖으로 퇴장시킨다.

 

교황 선출은 비밀 서면 투표로 진행된다. 개표 직후 투표용지는 불에 태워 처리하는 것이 관례다. 선거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구설수를 완전히 차단하기 위함이다.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의 득표는 과거에는 만장일치제였지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경우 과반수의 찬성으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규정을 바꾸었다. 교황을 다수의 합의로 선출함으로써 교회의 확고한 일치와 원활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투표 결과는 투표용지를 태울 때 연기를 통해 외부에 알려진다. 과거에는 교황이 선출되지 않았을 때는 투표용지와 젖은 짚단을 함께 태워 검은 연기가 나도록 했다. 선출됐을 경우엔 마른 짚을 함께 태워 흰 연기가 나도록 했다. 그런데 요한 23세 교황이 선출된 1958년 콘클라베에서는 짚이 제대로 타지 않는 바람에 연기의 색깔이 불명확해져 회색 연기가 나왔고, 양도 너무 적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혼란을 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2005년부터는 화학 약품을 첨가해 색을 명확하게 했다. 그러나 연기의 색깔을 만드는 방법은 여전히 비밀이다. 또 흰색 연기에 성 베드로 대성전의 종소리를 추가해 혼란을 방지했다.

 

드디어 4월 19일 오후 5시 55분.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와 함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있던 군중은 일제히 환호했다. 차기 교황이 확정되면 수석 추기경이나 연배가 가장 높은 추기경이 선거인단을 대표해 선출된 사람의 동의를 구한다. 이때 선출된 교황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자신의 세례명 또는 평소에 존경하던 전임 교황의 이름을 교황명으로 명명해 공표해야 한다. 이후 추기경들은 새 교황을 알현하고, 선임 부제 추기경은 외부 사람들에게 새 교황 탄생 소식과 이름을 공표한다.

 

30여 분이 지나자 호르헤 메디나 추기경과 전례 담당 마리니 몬시뇰이 등장해 전통에 따라 라틴어로 새 교황의 탄생을 공표했다.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새 교황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며, 교황 이름은 베네딕도 16세로 명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곧이어 휘장 뒤에서 새 교황으로 선출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즉 베네딕토 16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 교황은 이탈리아어로 짤막하게 부족한 자신을 위해 기도를 청하는 인사를 한 후 군중과 세상을 향해 첫 축복을 했다.

 

언론은 새 교황이 교황명을 요한 바오로 3세로 정할 것으로 추측했지만, 교황명은 ‘베네딕토’로 정해졌다. 성 베네딕토(480∼546)는 유럽에 그리스도교 정신을 다시금 불러일으킨 인물로, 바오로 6세 교황이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반포할 만큼 위대한 성인이다.

 

교황이 선출된 시각이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한밤중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언론사들은 밤중에 방송과 인터뷰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정진석 대주교는 당일 새벽 교황 선출 소식을 접하고 바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즈음에도 정 대주교는 어렵고 힘든 세상에 새로운 시대를 책임질 교황님을 교회에 보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동이 트자 정 대주교는 곧바로 명동대성당으로 가서 새 교황 선출을 축하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전했다.

 

“새 교황님께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강조하신 대로 이 세상을 인간다운 세상, 누구도 소외되는 일 없이 공존하는 평화롭고도 값진 세상으로 만들고,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진리에 충실하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하나로 모아 기도와 희생을 봉헌해야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7월 30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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