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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3: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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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10 ㅣ No.453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3)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


전능하신 구세주의 존엄함 드러낸 초기 지상 교회 성미술

 

 

-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지은 성 소피아성당 내부에 장식된 구세주 그리스도 모자이크.

 

 

바실리카 성당 내부 장식한 초기 성미술

 

예수님 시대에 그리스도교 성미술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학자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인의 신앙 자유를 허용하면서 성미술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세밀한 잣대를 들이대기 좋아하는 이들은 ‘콘스탄티누스 이전’ 지하 교회 때와 ‘콘스탄티누스 이후’ 지상 교회 때의 성미술로 구분하지만, 그 기준점은 항상 콘스탄티누스 대제입니다. 

 

초기 박해 시대 지하 교회의 벽과 그리스도인의 무덤의 석관을 장식하던 성미술은 지상에 성당이 세워지면서 놀라운 속도로 발전합니다. 지상에 처음으로 봉헌된 성당이 바로 ‘라테라노대성전’입니다. 그래서 라테라노대성전 정문 대리석 현판에는 ‘세상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며 으뜸’(omnium urbis et orbis ecclesiarum mater et caput)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후 두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 로마 바티칸 언덕 베드로 사도의 무덤 위에 있는 성 베드로대성전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궁전과 로마 제국 공공시설인 바실리카를 고쳐 교회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직사각형 형태로 동쪽에 아침 햇살을 받는 짧은 가로 면에는 돌출된 반원형 공간인 앱스(apse)가 있고, 줄지은 기둥이 받치고 있는 천장엔 많은 창을 내놓은 최초의 성당 건축 양식을 ‘바실리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실리카 성당 내부를 성미술로 장식했습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능과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앱스와 돔(지붕) 아래에 있던 황제의 동상이나 신상을 치우고 그 자리에 제대를 설치했습니다. 또 주위에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상징하는 성화를 프레스코화나 모자이크로 채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시 로마인들의 관념대로 앱스와 돔을 하늘과 하느님 나라를 연결하는 우주적 공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에 우주의 통치자로 하느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옥좌에 앉아 계신 전능하신 구세주 그리스도의 모습을 새겨 놓았습니다. 또 앱스와 돔을 중심으로 주요 벽면에 신ㆍ구약 성경의 이야기와 그리스도와 성모님의 생애를 주제로 한 성화로 채웠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권능이 하늘에서부터 땅끝까지 펼쳐져 있고 세상 모든 민족이 그 은총을 누리고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 미술가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당시 로마 사람들이 하늘과 땅의 최고 군주로 숭배했던 제우스를 모방해 그렸고 존엄함을 드러내기 위해 황제의 옷을 입혔습니다.

 

- 성 소피아성당보다 10년 이후에 지어진 라벤나의 산 비탈레성당의 구세주 모자이크화. 수염이 없는 젊은 그리스도의 모습이 이채롭다.

 

 

이콘 · 모자이크로 표현된 비잔틴 양식

 

학자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동로마를 중심으로 이콘과 모자이크로 표현된 성미술을 ‘비잔틴 미술’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성당 중에 이러한 비잔틴 미술의 특징을 보여주는 곳이 6세기에 봉헌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소피아성당과 코라 구세주성당, 이탈리아 라벤나의 산 비탈레성당입니다. 이 세 성당은 모두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지은 성당입니다. 성 소피아성당은 537년, 산 비탈레성당은 10년 뒤인 547년 완공됐습니다. 또 코라 구세주성당은 557년 지진으로 파괴된 후 재건됐습니다.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세 성당은 똑같은 운명을 겪습니다. 성 소피아성당과 코라 구세주성당은 1453년 오스만 제국에 함락된 후 무슬림에 의해, 산 비탈레성당은 성상 파괴주의자들에 의해 훼손ㆍ소실됐습니다. 하지만 일부 복원된 성 소피아성당의 모습과 산 비탈리성당의 모자이크에서 옥좌에 앉으신 전능하신 구세주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 소피아성당 벽면에는 옥좌에 앉아 계신 예수님의 양 어깨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헬라어 약자인 ‘IC XC’가 새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왼손에 성경을 들고, 오른손으론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산 비탈레성당 중앙 앱스에는 젊은 그리스도가 일곱 개의 봉인이 찍힌 두루마리를 들고 우주 위에 앉아 있습니다. 이 두 모자이크는 모두 최후의 심판 때 오실 왕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코라 구세주성당 돔에는 구세주 그리스도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아담에서 야곱에 이르는 15명의 이스라엘 성조들이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습니다.

 

- 9세기 성화상 논쟁이 마무리된 후 로마 산 프레세데 성당을 장식한 구세주 그리스도 모자이크. 6세기 모자이크에 비해 규모가 적고 빈약하지만 그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9세기 들어 성화상 논쟁이 마무리(843년)되면서 비잔틴 미술은 다시 한 번 꽃피웁니다. 이 시기 서방 교회에서는 드물게 비잔틴 미술의 특성을 간직한 성당이 지어집니다. 바로 822년 로마 성모 마리아대성당 인근에 터한 산 프레세데성당입니다. 이 성당엔 구세주 그리스도 모자이크가 등장합니다. 성 소피아성당과 산 비탈레성당의 모자이크와 비교하면 규모가 훨씬 작고 소박합니다. 소성당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이 모자이크는 네 천사 가운데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구세주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2세기를 즈음해서 서방 교회에서는 또다시 비잔틴 미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됩니다. 교역의 중심지인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 몬레알레 산타 마리아 라 누오바대성당이 1182년 봉헌됐습니다. 이 대성당 내부는 비잔틴 미술가들이 직접 참여해 장식했습니다. 비잔틴의 전통을 그대로 옮겨와 제단 앱스에 전능하신 구세주의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천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를 안고 옥좌에 앉아 계시며 양쪽 옆으로 대천사와 성인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처럼 지상 교회를 처음으로 장식한 성미술은 우주의 통치자인 왕으로 최후의 심판 때 우리에게 오실 전능하신 구세주를 한결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박해를 이기고 승리한 교회가 수난하시는 예수님보다 영광의 그리스도를 표현한 것은 어쩌면 인간적으로 당연한 태도였을 것입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동서방 교류가 활발하던 12세기 교역의 중심지인 시칠리아 팔레르모 몬레알레대성당을 장식한 구세주 그리스도 모자이크. 비잔틴 기술자들이 직접 제작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7월 9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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