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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마툴리오니스 대주교, 리투아니아의 첫 순교복자로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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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18 ㅣ No.1633

마툴리오니스 대주교, 리투아니아의 첫 순교복자로 탄생


공산정권 박해 받으면서도 성체신심 널리 전하려 노력, 노동교화형 16년 살다 독살돼

 

 

- 1957년 당시 마툴리오니스 대주교. CNS 자료사진. [폴란드 바르샤바 CNS]

 

 

리투아니아의 테오필루스 마툴리오니스 대주교가 공산치하에서 순교한 리투아니아 신자 중 처음으로 시복된다. 1962년 리투아니아 공산 정권은 16년 동안 노동교화형을 살았던 마툴리오니스 대주교에게 독극물을 주입해 살해했다.

 

마툴리오니스 대주교의 시복미사는 오는 6월 25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거행되며, 외국에서 오는 주교와 사제 등 사절단을 포함해 3만여 명이 참례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투아니아주교회의 의장 긴타라스 그루사스 대주교는 “마툴리오니스 대주교는 보편교회가 인정하는 최초의 소비에트연방 시절 순교자이자 리투아니아 출신으로는 첫 순교복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루사스 대주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진실을 추구했던 마툴리오니스 대주교의 신념은 시복식에 참례하는 청년들에게 큰 모범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투아니아주교회의는 시복식을 앞두고 청년들을 대상으로 1박2일 축제도 준비 중이다.

 

그루사스 대주교는 “리투아니아가 겪는 긴장 상황을 고려할 때, 평화와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필요한 선물을 주신다는 섭리를 따랐던 마툴리오니스 대주교의 메시지는 오늘날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1873년 리투아니아 동북부 쿠도리스키스에서 태어난 마툴리오니스 대주교는 1900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0여 년 동안 라트비아에서 본당사목에 종사하던 마툴리오니스 대주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성 가타리나본당 주임을 맡았다.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발생하자 마툴리오니스 대주교는 1920년 투옥돼 3년을 복역했으며, 1929년 비밀리에 주교로 서품됐다. 하지만 또다시 수용소에 구금됐고, 1933년에야 고향인 리투아니아로 돌아오게 됐다. 리투아니아로 돌아온 마툴리오니스 대주교는 군종사제로 활동하며 성체신심을 널리 퍼뜨리는 데 노력했다.

 

1943년 카이시아도리스교구장으로 임명된 마툴리오니스 대주교는 1946년 리투아니아 공산정권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또 다시 체포돼어 수용소에 구금됐다. 1962년 성 요한 23세 교황은 마툴리오니스를 대주교로 승품시키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참석을 요청했지만, 리투아니아 공산정부는 교황청의 요청을 거부하고 마툴리오니스 대주교를 독살했다.

 

리투아니아 교회는 1990년 소비에트연방에서 리투아니아가 독립하자 마툴리오니스 대주교의 시복시성을 추진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그의 순교사실을 확인했다.

 

[가톨릭신문, 2017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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