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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교리 문헌 해설: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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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11 ㅣ No.1403

[사회교리 문헌 해설]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민족들의 발전』은 바오로 6세 교황님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16개월만인 1967년 3월 26일에 반포하신 사회 회칙입니다. 교황님은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인 1960년에 남미를, 1962년에는 아프리카를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때 교황님은 두 대륙에서 직접 참혹한 ‘가난’(4항)을 목격하셨습니다. 이 체험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이 회칙의 작성 동기와 내용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교황님의 관심은 두 대륙 가운데서도 가톨릭 신자가 많은 중남미에 더 쏠려 있었습니다. 아마 회칙 반포 다음해인 1968년에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열릴 제2차 중남미 주교회의를 의식하셨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회칙은 메데인 회의에 참여하는 주교와 신학자들에게 큰 격려가 되고 영향도 많이 미쳤다 하니 막연한 추측만은 아닙니다.

 

 

회칙의 문제의식

 

이전까지 나온 회칙들의 거의 대부분은 유럽 각국에 존재하는 계층간 빈부격차 문제를 중심적으로 다뤘습니다. 유럽 대륙 전체를 다루긴 했어도 아직 관심이 유럽 대륙을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칙은 전 세계로 관심을 확장하였습니다. 빈부격차 문제도 일국 차원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 대륙과 대륙간 관계 차원에서 다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어조도 매우 강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표현입니다. ‘교회가 기아, 빈곤, 질병, 무지에서 해방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민족들을 도와야 할 의무를 느껴야 한다.’(1항)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유한 나라를 향해 배고파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3항)

 

 

핵심 주제

 

이 회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발전’입니다. 교황님이 말씀하신 발전은 인간 생활과 관련되는 모든 측면에서 ‘인간다운 삶을 촉진하고 보장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경제적 의미의 발전(=개발) 개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황님이 먹고 사는 문제를 중요하게 보지 않으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보셨습니다. 교황님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막는 모든 조건을 전체적으로 개선하고 해결하는 것을 발전이라 하셨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후진국의 가난을 분석하는 이론입니다. 이 회칙에서 교황님은 가난한 나라들이 가난하게 된 이유를 분석하는 이론적 도구로 당시 유행하던 확산이론 대신 종속이론을 따랐습니다.

 

확산이론은 가난한 나라들이 가난한 이유를 그들 안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가난을 벗어나려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근면하고 시간을 잘 지키며 또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바탕 위에 선진국의 제도, 자금, 기술 등이 전수되고 확산될 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지요.

 

반면 종속이론은 가난한 나라의 빈곤과 낮은 발전 수준이 반드시 그들 탓만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이 이론은 더 근본적이고 큰 원인을 불평등한 국제 경제 질서에서 찾습니다. 불평등한 국제 경제 질서에서는 가난한 나라가 이미 부자 나라에 예속되어 있으므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 것이지요. 예를 들어, 종속이론은 후진국이 가난한 원인을 과거 식민주의(7항), 현재의 신식민주의(52항), 불공정한 국제적 통상관계(56~58항)에서 찾았습니다. 가난의 원인을 자연조건이나 그 민족 내부의 원인인 게으름, 기술 부족이나 자원 부족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교황님이 이렇게 가난의 원인을 분석하신 이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라 사이에 빈부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중이었기 때문에 하루빨리 이 불평등한 국제 경제질서를 개혁하기를 바라셨던 것이지요. 교황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선진국에 세 가지를 요구하셨습니다.

 

① ‘선진국은 연대성 원리에 따라 후진국을 도와야 한다. 그 한 방편으로 선진국에 넘치는 재화를 후진국에 양도해야 한다.’(45~49항) 이 때 방법은 체계적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도와주면서도 간섭 대신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다시 종속되지 않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② ‘현재의 통상원칙을 수정해야 한다.’ 이미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태에서 자유주의 통상원칙은 격차를 더 벌릴 뿐이고(58항), 두 당사자간 자유 계약도 공정하지 못하므로(59항), 무한 경쟁에 기초하고 있는 자유주의 원칙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③ ‘보편적 사랑이 필요하다.’ 극단적인 민족주의, 인종차별주의를 극복하려는 마음, 공동세계를 지향하는 마음과 민족자결의 원칙을 준수하려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62~65항)

 

국제 빈부격차를 줄이는 일에서 후진국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교황님은 후진국도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종속이론이 후진국 가난의 원인을 전부 선진국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교황님은 선진국들의 책임을 크게 강조하는 한편으로 후진국에게도 책임을 물음으로써 종속이론 학자들과 차이를 보이셨습니다. 또한, 진정한 발전을 위해 국가의 발전계획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하셨습니다. 이 계획은 불평등 해소, 물질적 풍요, 도덕함양, 기술개발을 지향해야 하지만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기술주의(테크노크라시)를 피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33~34, 38~40항)

 

마지막 주제는 폭력입니다. 교황님은 이 회칙에서 1960년대 개발도상국에서 사회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흔히 사용하던 폭력혁명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31항). 교황님은 폭력 혁명이 현실의 악보다 더 큰 불행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반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권이 유린당하고 공동선을 침해하는 명백한 폭군적 압제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엔 폭력혁명이 정당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의로운 전쟁 이론 혹은 정당 방위론으로 알려진 가톨릭 전통에 입각한 주장이었지요.

 

읽어 보면 더 생생하게 느끼시겠지만 이 회칙은 우리 시대의 가난한 이들, 가난한 나라들을 향한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단, 이 사랑의 메시지는 우리 각자가 실제로 살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합니다.

 

[2017년 6월 11일 삼위일체 대축일 의정부주보 5-6면, 박문수 프란치스코 박사(사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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