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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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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자기 합리화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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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7 ㅣ No.393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자기 합리화의 심리학

 

 

초콜릿 케이크를 눈앞에 둔 꼬마. 어머니는 절대로 케이크에 손대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어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우자마자, 꼬마의 어깨 위에는 악마가 나타나 속삭인다. 당장 케이크를 먹어 버리라고, 초콜릿 케이크가 얼마나 달콤한지 생각해 보라고 충동질한다. 어머니가 자리를 잠깐 비운 이 순간이 케이크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꼬드긴다.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다른 쪽 어깨에 천사가 나타나서 말한다. 착한 아이는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를 거역하는 순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선물을 안 주신다는 나쁜 아이가 되는 거라고 겁을 준다. 악마의 말을 들을 것인가, 천사의 말을 따를 것인가?

 

 

인간의 성격 구조 세 가지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의 성격은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세 가지의 구조, 곧 원초아(Id), 자아(Ego), 그리고 초자아(Superego)로 이루어진다.

 

원초아는 본능적 충동으로 구성된 성격 구조다. 본능 덩어리인 원초아는 쾌락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욕구가 발생하면 이를 즉각적으로 충족시키려고 한다. 달콤한 케이크가 눈앞에 있으면 당장 먹어 치우라고 명령한다. 홈 쇼핑에 마음에 드는 옷이 나오면, “당장 사!”라고 외치는 성격의 구조가 원초아다.

 

자신의 경제 상황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카드가 연체되었건 말건, 심지어는 사채 빚이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는다. 즉각적으로 자신의 쾌락을 충족시키면 된다. ‘지름 신’을 강림시키는 우리 안의 쾌락주의자가 바로 원초아다.

 

자아는 성격의 집행자 또는 성격 구조의 행정부에 해당한다. 원하는 것을 얻고자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성격 구조다.

 

자아는 현실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욕구가 발생하면 먼저 자신의 현실적 상황부터 파악한다. 어머니가 먹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한 케이크를 먹어 치웠을 때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한다. 홈쇼핑에 나오는 물건을 사기에 통장 잔고가 충분한지 확인하는 것이다.

 

만일 지금 상황에서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하면, 자아는 현실적 대상과 방법이 발견될 때까지 욕구 충족을 지연하거나 억제한다.

 

하지만 자아의 궁극적인 목표도 원초아와 다르지 않다. 자아의 목표도 본능 충족인 것이다. 다만 본능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전략이 다를 뿐이다. 논리적 사고를 통해 계획을 세우고, 필요하면 다른 성격 구조를 설득한다. 은행 잔고가 부족하면, 다음 달 월급이 나올 때까지 조금만 참으라고 원초아를 설득하는 것이다.

 

초자아는 완고하게 이상적인 선을 추구하는 성격 구조다. 사회의 이상적인 가치가 내면화되어서 만들어진 것이 초자아다. 초자아는 원초아의 맹목적인 본능 추구를 비난한다. 자아에게는 본능적인 충동을 억누르고 도덕성과 완벽성을 추구하라고 압박한다. 케이크 따위가 뭐가 중요하느냐며, 착한 아이가 되라고 외친다. 쇼핑은 물질적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며, 도덕군자처럼 다음 달에 월급이 나와 경제적 상황이 좋아지면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려 하는 자아를 비난한다. 초자아의 이런 비난 때문에 우리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느낀다.

 

 

충동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

 

악마의 충동질과 천사의 경고 사이에서 갈등하던 꼬마는 결정한다. 저녁 식사 때까지만 참고 기다리기로 말이다. 어차피 아버지의 생일 케이크이니까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촛불을 끈 다음에 한 조각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본능을 따르라고 충동질하는 악마는 쾌락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원초아다. 

 

그 반면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천사는 이상을 추구하는 초자아다. 그리고 이 악마와 천사 사이에서 욕구를 충족하고자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하는 인간이 자아다. 곧, 프로이트의 세 가지의 성격 구조는 본능적 충동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내 마음속의 악마와 천사는 우리에게 상반된 것을 요구한다. 본능과 이상. 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원초아와 초자아는 모두 맹목적이다.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아에게 강요한다.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이 악마와 천사 때문에 우리가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안은 위험이 가까이 있다는 신호를 자아가 느낄 때 발생한다.

 

특히, 자아가 이런 위험을 스스로 통제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때 불안은 더 커진다. 프로이트의 성격 이론에서 불안은 위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현실 불안과 신경증적 불안, 그리고 도덕적 불안으로 구분한다.

 

현실 불안은 위험이 현실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경우에 생겨난다.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거나 강의실에 뱀이 나타나는 것처럼 현실에 불안을 유발하는 이유가 실재하는 것이다.

 

그 반면 신경증적 불안과 도덕적 불안은 불안을 야기하는 위험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안을 경험하는 이유는 불안을 유발하는 위험이 우리의 성격 구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원초아가 있기 때문에 경험할 수밖에 없는 불안이 신경증적 불안이다. 그 반면 초자아가 있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것이 도덕적 불안이다.

 

신경증적 불안은 원초아의 본능적 충동이 의식되었을 때 경험하게 된다. 혹독한 훈련을 통과하던 병사가 갑자기 교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싶은 충동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 불안을 느낀다. 불안의 강도는 본능적 충동을 자아가 통제하기 어렵다고 느낄수록 강해진다. 처음에는 충동을 쉽게 통제할 수 있다. 겉으로는 예전과 똑같이 교관의 명령에 충실한 훈련병의 모습으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원초아의 충동이 너무 강해서 자아가 이런 충동을 통제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게 되면 불안은 심각한 수준으로 상승하게 된다. 원초아의 맹목적 충동을 통제하려는 자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교관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아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도덕적 불안은 초자아의 비난이 너무 심해서 자아가 이를 견디기 힘들다고 느낄 때 경험하게 된다. 성적인 상상이나 공격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초자아는 자아를 맹렬히 비난한다. 처음에는 자아도 초자아의 비난을 대수롭지 않게 견딘다. 하지만 초자아의 강도 높은 비난이 지속될수록 자아는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경험하게 된다.

 

현실 불안은 현실의 위협을 제거하면 해결된다. 뱀 때문에 불안하면 뱀을 잡으면 된다. 하지만 신경증적 불안과 도덕적 불안은 성격 구조의 갈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 해결되지 않는다.

 

원초아와 초자아는 자아와 함께 성격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구조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에서 사라지지도 않고, 없애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 마음속의 악마와 천사는 성격이라는 집에서 평생을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마음은 늘 갈등하고,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 불안은 우리 안에 있는 성격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험할 수밖에 없다. 자아는 불안을 최소화하고자 심리적인 전략을 사용한다. 불안을 감소시키려고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곡하거나 위장한다. 이를 방어 기제라고 한다.

 

 

생각의 왜곡

 

사람들은 불안을 감소시키려고 다양한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기 합리화다.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의 진짜 동기를 의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불안을 불러일으킬 때, 그럴듯해 보이는 다른 이유를 제시하여 불안을 줄이는 전략이다. 일종의 정당화 과정이고, 자기변명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는 달콤한 포도가 먹고 싶지만 발이 닿지 않아서 포도를 따 먹을 수 없었다. 그러자 여우는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라면서 포기한다. 이 신 포도 이야기는 여우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해서 발생하는 불안을 자기 합리화 전략을 통해서 완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간은 자기를 합리화하는 존재다. 누구나 불안을 경험하고, 불안을 감소시키려고 자기 합리화라는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냉정하게 비난한다.

 

하지만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고 합리화한다. 우리의 생각은 수많은 자기 합리화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모든 합리화를 비난할 수는 없다.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어야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 내고, 자존감을 유지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오랜만에 과식한 뒤에, “맛있게 먹으면 살 안 쪄.”라고 합리화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소하거나 귀여운 수준의 합리화는 힘겨운 우리 인생에 달콤한 위로를 준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 합리화는 단순히 심리적 불안을 줄여 주는 것을 넘어서 자신과 세상을 근본적으로 왜곡해서 지각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폐 질환이 있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서, “하루에 다섯 개비 미만은 건강에 전혀 해가 되지 않아.”라고 합리화하는 것은 스스로의 건강을 파괴하는 생각의 왜곡이다.

 

자기 합리화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강간 사건의 가해자가 피해자가 자신을 먼저 유혹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화가 폭력으로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힘을 가진 사람의 자기 합리화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만큼 위험할 수도 있다. 자신의 사익을 위한 행동을 공익을 위한 것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다수에 대한 폭력이 되기 쉽다. 집단 수준의 자기 합리화는, 나치의 유다인 학살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에 재앙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7년 5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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