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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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사랑의 결실과 자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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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02 ㅣ No.1004

[월례교육] <사랑의 기쁨> 사랑의 결실과 자녀 교육 (1)

 

 

「외침」 4월호는 <사랑의 기쁨> 제5장 ‘사랑의 결실’과 제7장 ‘자녀 교육의 강화’에서 제시하는 부모의 역할과 자녀 교육에 대한 내용을 담고자 한다. 이번 달에는 특별히 사랑의 결실과 자녀 교육(I)’이라는 주제로 부모의 역할과 인성 교육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사랑의 결실과 자녀 교육

 

가정은 새 생명이 태어나는 곳이며 동시에 그 생명을 하느님의 선물로 환대하는 자리이다. 바로 가정안에서 두 남녀 간의 사랑의 결실로서 새 생명이 태어나기 때문이다(166항 참조). 또한 가정은 교리교육의 터전이며 기본 자리이다. 혼인제도와 부부애는 그 절정이라고 보여지는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한다.

 

 

1. 부모의 역할

 

하느님의 선물인 새 생명은 부모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의 손길로 자라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 부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다. 새 생명이 태어난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의 양육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여한다.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의 협력자이며 또한 그 사랑의 해석자이다.

 

1) 어머니의 역할

 

어머니는 새 생명의 잉태부터 출산 그리고 자녀의 양육에 지대한 영향을 차지한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아이들은 고아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 이유는 모성과 인간 생명의 주체로서의 여성들보다는 공부하고 일하며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개인적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곧 여성의 자질과 함께 진정한 여성성을 지닌 어머니의 현존이 줄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173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종이 전하는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가르침은 의미심장하다. “어머니들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비인간적인 사회가 될 것입니다. 가장 힘든 때에도 어머니는 언제나 온유함과 헌신과 도덕적 힘을 증언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처음으로 보고 배우는 기도와 신심의 행위를 통하여 신앙생활의 가장 깊은 의미도 종종 전해 줍니다”(174항).

 

2) 아버지의 역할

 

아버지는 아이가 현실의 한계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더 넓고 도전이 넘치는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노력과 헌신의 권유를 하는 존재이다. 또한 아버지는 아내에게 애정과 관심을 보여 주며,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만큼이나 필수적인 존재이다(175항 참조).

 

오늘날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아버지 없는 사회’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상징적인 아버지상이 사라져 버리거나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집안의 가장으로서 권위주의적이며 위압적인 아버지의 존재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의 부재, 곧 아버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아버지들은 자주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일, 그리고 때때로 자신의 성취에 사로잡혀 가정사를 소홀히 여긴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라난 아이들은 각종 커뮤니케이션 매체와 오락 매체에 의존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영향을 받는다. 가족관계 안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심리적 도덕적 불균형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곤란을 야기시킨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어른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권위를 의문시 하여 아버지 스스로가 확신을 잃고 자녀들에게 확실하고 믿을 만한 지도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참으로 비참한 일이며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고 성숙하는데 큰 장애가 될 것이다(176항 참조).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에 처한 오늘날 아버지들은 어떻게 자녀들을 대할 것인가? 그 방법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종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다. “하느님께서는 가정에 아버지를 주시어 아내와 가까이에서 모든 것, 곧 기쁨과 슬픔, 희망과 고난을 함께 나누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이 곁에서 그들의 성장에 함께합니다. … 제가 말하는 ‘현존’은 ‘통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통제하는 아버지는 아이를 억압하기 때문입니다”(177항).

 

 

2. 인성 교육

 

생명을 전수함으로써 부모들이 하느님의 창조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또한 자녀 양육으로써 하느님의 부성적이고도 동시에 모성적인 교육 방법에 참여해야 한다. 부모들은 그 자녀들에 대한 최초의 교육자이며, 가장 중요한 교육자이다.

 

1) 교육 환경인 가정생활

 

가정은 인간적 가치관(인성)을 배우는 첫 학교이다. 어린 시절에 생겨난 성향은 그 사람의 내면 깊숙이 스며들며 이는 평생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성향은 특정한 가치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지니거나 특정한 행동 방식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거부하게 된다. 마치 삼투 현상처럼 어린 시절부터 자신들이 배워온 것이 타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종의 신념처럼 ‘저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배웠습니다’라며 그 사람의 가치와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가정의 중요한 임무는 ‘기다리는 능력’, 즉 인내심과 자제력을 가르치는 것이다. 자제는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충족을 늦추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어떤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하면 분별없는 사람이 되고, 자신들의 욕구를 즉각적으로 충족시키는 데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하고 싶은 것을 뒤로 미루고 적절한 때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우면, 충동이 일어날 때에 자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처럼 자녀가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 그의 자존감이 커진다(275항 참조).

 

2) 자녀의 윤리적 양성

 

부모는 자녀의 의지를 길러 주고 좋은 습관과 선한 것에 끌리는 마음을 함양시켜 줄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습관을 잘 기를 필요가 있다. 좋은 습관은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통해 형성된다. 예를 들면, 어른들에게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오랫동안 교육 받는다면, 그 사람의 내면의 선한 기질이 이러한 말들을 통해서 쉽게 드러나게 된다. 그러한 선한 의지를 강화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도덕적 태도를 형성한다. 또한 도덕 교육은 제안, 동기, 실질적 적용, 자극, 보상, 모범, 예시, 상징, 성찰, 격려, 행동 방식의 검토, 대화를 통하여 자유를 함양시키는 것이기도 한다(266항, 267항 참조).

 

3) 격려인 훈육의 가치

 

부모는 청소년기의 자녀가 잘못된 행동의 결과를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자녀가 다른 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다른 이에게 입힐수 있는 고통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특히 훈육 과정에서 부모가 자신의 부모가 인내심으로 자신을 신뢰한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이때 훈육은 격려가 되어 사랑으로 훈육을 받은 자녀는 이를 통해 존중받는다고 느끼며, 자기 부모를 자신의 잠재력을 인정해 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또한 훈육 과정에서 부모는 자신이 화가 나도 자제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자녀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잘못된 행동을 한 자녀는 훈육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꾸짖는 태도는 자녀 행동의 심각성의 경중을 가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자녀의 낙담과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268항, 269항 참조). 따라서 훈육이 자녀의 바람을 꺾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더 나은 발전에 힘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외침, 2017년 4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월례교육] <사랑의 기쁨> 사랑의 결실과 자녀 교육 (2)

 

 

이번 「외침」 5월호는 지난 4월호에 이어 ‘사랑의 결실과 자녀 교육(II)’이라는 주제로 성(性) 교육과 신앙 교육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자녀들의 성(性) 교육과 신앙 교육은 우선적으로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의 교육 활동은 성(性) 문제에서 진정으로 완전한 인격적 훈련을 꿋꿋하게 지향해야 하며,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훌륭한 유산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신앙’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신앙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한다. 따라서 부모는 이 신앙을 자녀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방치하거나 “종교는 자유”라는 미명(美名) 하에 무슨 종교를 믿든 방관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1. 성(性) 교육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청소년들에게 “나이에 맞는 긍정적이고 신중한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부모는 사랑과 자기 봉헌에 대한 교육으로써 성교육을 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부모의 기본 권리이고 의무이다.

성교육은 사랑과 상호 증여에 관한 교육의 틀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먼저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정보 제공이 중요하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통제를 벗어난 포르노, 지나치게 자극적인 유해한 인터넷 콘텐츠들과 정보에 휩싸여 비판적 사고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온전한 성숙함에 이르지 않은 청소년들은 마땅히 삶의 단계와 그 시기에 맞는 정보를 제공 받아야 한다. 따라서 부모는 그들에게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유해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또한 젊은이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식별하고 추구하며, 사랑에 대한 그들의 능력에 손상을 주는 것들을 피할 수 있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281항 참조).

두 번째, 건전한 정숙함을 보호하는 성교육이다. 정결교육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정결은 인간의 성숙을 개발시켜 육체의 ‘혼인 의미’를 존중하고 육성하게 하는 미덕이다. 따라서 부모는 정결 덕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인간의 성을 단지 육체와 이기적 쾌락에만 연관시키지 말고 생명의 존엄성과 성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구체적으로 부모는 오늘날 성 개방의 분위기에서 더 이상 성 문제를 금기와 억압 일변도로 다루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자녀의 건전한 성 윤리를 위해 청소년 자녀들이 부모 세대의 가치관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자녀 세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가운데 올바른 성 · 생명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남녀가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성교육이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한계 안에 갇혀 있는 것을 극복하고 상대방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회칙 「찬미 받으소서」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다. “여러분 몸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받아들이는 것도 이성을 만나면서 자신을 인식하는 데에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의 작품인, 나와는 다른 남자와 여자라는 특별한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서로를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155항). 서로 다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버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것과 자기에게 빠져 있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성교육이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한탄하며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언급한 글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성적 매력은 잠시 동안이나마 결합의 허상을 만들어 내지만, 사랑이 없다면 이러한 ‘결합’은 그들을 원래 서로가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만큼이나 낯선 이들로 남겨 둡니다.” 참된 자기 증여를 위해서 육체의 언어는 욕망을 파악하고 다스리는 인내심 있는 훈련을 요구한다. 특별히, 성적 에너지가 활발한 젊은이들은 한 번에 모든 것을 주려고 한다면, 아무것도 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또한 부모들은 젊은이들이 얼마나 나약하고 혼란스러워 하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이 보여 주는 미숙한 사랑의 방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성교육을 꾸준히 해야 할 것이다(284항 참조).


2. 신앙 교육

자녀 양육을 위하여 신앙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가정은 신앙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우리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을 도와주도록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신앙 전수는 부모 자신이 참으로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을 전제로 한다(287항 참조). 부모에 의한 신앙교육은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신앙 교육은 각각의 자녀에 맞추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에 알맞은 합당한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기도를 통해서이다. 이를 위해 부모가 기도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가정에서 기도하는 것과 대중 신심의 표현이 그 어떤 교리 교육 수업이나 강론보다 더 큰 복음화의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모니카 성녀(332~387년)의 끊임없는 기도가 방탕한 자녀를 교회의 위대한 성인으로 만든 것처럼 오늘날 부모들도 성녀의 이러한 모범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288항 참조). 특별히 가정 공동기도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위기는 ‘바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정에서 공동기도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가정기도라 하면 거창한 그 무엇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하루의 생활을 서로 반성하면서 좋은 것은 하느님께 감사하고, 잘못된 것은 서로 용서하면서 다시 거듭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으로도 훌륭한 가정기도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성경 말씀을 통해서이다. 교리 교육의 원천은 하느님 말씀인 성전(聖傳)과 성서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말씀의 봉사, 즉 사목적 설교, 교리, 각종 그리스도교인 교육은 성서 말씀에 의해서 건전한 영양과 거룩한 활력을 받아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성경 말씀을 가정 교리 교육의 원천으로 가장 잘 삼고 있는 민족은 단연 유다인들이다. 과거 이스라엘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다인들은 신명기 6장 4-9절에 나오는 ‘쉐마, 이스라엘’(너 이스라엘아, 들어라)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자녀들과 함께 봉독하면서 귀로 듣고 마음에 새긴다고 한다. 그들의 모범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이다.

세 번째, 가족들의 신앙의 증거를 통해서이다. 이 증거란 대개 말 보다는 복음에 따라 영위하는 일상생활을 통해서 주고받으며 이어진다. 가정생활에 중대사가 닥칠 때에(전례상의 대축일, 아이의 출생과 세례, 혼인, 가족의 사망 장례 등) 그 사건이 담고 있는 그리스도교적 또는 종교적 의미를 집안에서 자녀들에게 풀이하여 들려준다면 가정의 교리교육은 더욱 예리한 실전 교육이 될 것이다.

네 번째, 체계적인 가르침을 통해서이다. 신자 부모는 자신이 다른 곳에서 받은 체계적인 가르침을 가정생활의 테두리 안에서 따르고, 이를 되풀이하여 전해주어야 한다. 신앙의 중심이 되는 문제들과 그리스도 신자생활에 대한 진리들을 애정과 존경어린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되풀이하여 들려준다면 어린 자녀들에게 일평생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 아닌 교리 교육적 대화로서 모두가 서로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여 신앙의 표현과 성장을 촉진하면서 가정이 복음화되며, 스스로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이에게 신앙을 전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는 곧 선교 효과를 나타내며 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289항 참조). [외침, 2017년 5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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