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사회교리 문헌 해설: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10 ㅣ No.1385

[사회교리 문헌 해설]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전쟁을 하지 않는 상태를 평화라 합니다. 소극적 의미의 평화이지요. 평화는 인간의 선의로 실현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힘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큰 힘을 가지고 다른 작은 힘들을 누를 때 실현될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대부분 억지로 불만을 참는 상태여서 언제 깨질지 모릅니다.

 

반면 아무 개인, 또는 어느 나라에도 적대감을 품지 않는 적극적 평화도 있습니다. 아무한테도 적대감을 품지 않고, 또 그런 행위를 할 의사도 없는 상태입니다. 교회가 지지하는 평화의 모습입니다. 아마 대부분이 이 상태를 갈망할 것입니다.

 

전쟁을 쉬는 상태인 우리나라에게 평화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우선 북한과의 군사적 대결이 첨예합니다. 남한 내에서도 생각이 다른 집단에 대한 적대감이 매우 큽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듭니다. ‘힘이 있어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입니다.

 

요한 23세 교황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63년 4월 11일, 교회가 바라는 평화의 모습을 이 회칙을 통해 밝히셨습니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신 것이지요. 읽어 보시면 아시게 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분의 통찰은 예리하고 여전히 유효합니다.

 

 

회칙의 반포 배경

 

이 회칙이 반포되던 시기는 전 세계가 핵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습니다. 실제로 이 회칙을 반포하기 직전,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전쟁 위기가 높아진 적이 있습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사실상 핵폭탄으로 전쟁을 마무리했던 터라 핵 전쟁에 대한 공포가 매우 컸습니다. 이런 공포와 긴장이 지배하고 있을 때 요한 23세 교황님이 이 회칙을 반포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이 회칙을 통해 동서 냉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분은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더 근본적이고, 모든 인간이 인정할 수 있는 가치를 강조하면서 냉전 해결을 도모하였습니다. 그분의 이러한 의도는 이 회칙 6항에서 34항까지의 ‘인권 항목들’에 잘 드러납니다.

 

 

회칙의 주요 주제

 

이 회칙에서 교황님은 평화의 전제 조건으로서 인권을 제시하십니다. 인권에서도 기본권에 해당하는 ‘생존과 품위 있는 생활 수준에 대한 권리, 즉 의 ·  식 · 주, 휴식, 의료, 교육 등’을 먼저 언급하십니다. 물론 교황님은 이를 선언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에 대하여도 고민을 하십니다.

 

교황님은 ‘도덕적, 문화적 가치에 관한 권리(9, 10항), 그리고 옳은 양심에 근거한 정치 권리(11항)’도 강조합니다. 당연히 이 주장은 공산주의 체제, 자본주의 체제 모두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인간생활, 특히 가족생활과 문화의 가치라는 교회의 전통을 따라 ‘올바른 양심에 의거한 권리, 신분 선택의 자유에 관한 권리’(12, 13항)를 요구하십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양 체제에 대하여 경제에 대한 권리(14, 15항), 집회와 결사의 권리(16, 17항), 이주의 권리(18항), 참정권(19, 20)도 요구하십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개발을 위해 인권 문제를 등한시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때를 그리워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의 경제개발 속도가 더 빨랐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소수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악용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합니다. 이런 생각은 부디 전직 박 대통령의 파면, 구속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길 바랄 뿐입니다.

 

두 번째로 교황님은 세계가 냉전을 탈피하기 위해 양 체제가 추구해야 하는 공동의 가치를 제안하십니다. 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각 국가는 존재할 권리가 있고, 공동선을 추구한다면 양 체제 어디에 속하든 정당성이 있다. 그 나라의 구성원들이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면 그 국가는 정당하다.’ 교황님이 이 주장을 사회주의 진영에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체제를 떠나 서로를 인정하고, 다른 국가를 지배하려는 의도를 버릴 때 평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교황은 이 두 체제 모두가 인정해야 할 가치로 ‘진리(58-59항), 정의(61항), 연대(65항), 소수민족의 권리’를 제시합니다. 군비 축소를 요구하면서 ‘무력으로 보장되는 평화’ 개념도 비판합니다(71항). 교회가 인류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황의 관심은 세계 공동체에 있었습니다. 교황은 공동선의 범위를 지구적으로 확장하며 ‘전 세계적으로 광범하게 활약할 수 있는 어떤 공권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국제연합(U.N.) 같은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이 세계적 공권력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다른 국가를 강제하지 않아야 할 것, 전 세계의 공동선을 실현하는데 바탕을 둘 것, 모든 나라가 인정할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 등입니다.

 

 

회칙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개인, 사회, 국가 모두가 간절히 원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 찾아옵니다. 그리고 평화는 단순히 전쟁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전쟁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상태여야 합니다. 요한 23세 교황님이 이 회칙을 통해 밝히셨듯이 진정한 평화는 각 개인 권리의 존중과 보장, 그 바탕 위에 한 사람도 소외시키지 않는 공동선이 실현될 때 찾아옵니다.

 

평화는 선언하는 것으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특히 현세 질서의 복음화를 책임지는 평신도들이 제 역할을 할 때 찾아옵니다. 특히 첨예한 군사적 갈등이 계속되는 우리나라에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 절실하고 소중합니다.

 

[2017년 4월 9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의정부주보 5-6면, 박문수 프란치스코 박사(사목연구소)]



1,73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