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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12: 퀼리니 박물관에서 교회 유물은 새롭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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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30 ㅣ No.346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12) ‘퀼리니 박물관’에서 교회 유물은 새롭게 빛난다


오래된 건물에 생명 불어넣은 예술품들

 

 

- 퀼리니 박물관의 마당에서 바라본 외부 전경과 탑.

 

 

프랑스 파리의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다리를 건너면 생미셀 대로(Boulevard Saint-Michel)가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작은 궁전처럼 보이는 건물을 볼 수 있다. 그곳이 ‘국립 중세 박물관’(Musee national du Moyen Age)인데, 흔히 ‘퀼리니 박물관’(Musee de Cluny)이라 한다. 파리의 제5구역 안에 있는 이 박물관은 뛰어난 소장품으로 명성이 높다. 

 

지금 박물관이 서있는 자리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원래 이곳에는 3세기경에 만들어진 로마 시대의 화려한 공중목욕탕이 있었지만 바바리안(babarians) 침입으로 망가졌다. 또 그곳에서는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주거지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이곳에 사람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식수원이었던 센(Seine)강이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로마 시대의 목욕탕과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지를 박물관 내·외부에서 볼 수 있다.   

 

이 박물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퀼리니 수도회와 깊은 연관이 있다. 1334년에 건립된 수도원 건물은 파리에 있던 퀼리니 수도원의 원장과 수사들이 머물던 곳이었다. 또한 학생들에게 종교 교육을 시키던 학교 역할도 했다. 그러나 초창기의 건물은 150여 년이 지난 후에 허물어졌다.

 

- 퀼리니 박물관의 유리화 전시실.

 

 

현재의 건물은 클레몽(Clermont)의 주교 자크 당부아즈(Jacques d‘Amboise)가 주교관으로 1485년부터 1500년에 건립했다. 이 건물은 당시에 유행하던 고딕과 르네상스의 복합 양식으로 재건축됐는데, 파리에 남아있는 중세 건축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건물의 외벽에 붙어있는 팔각형 탑은 18세기까지 천문학자들의 천체 관측을 위해 사용됐다. 

 

수도원이었던 이 건물은 시대가 흐르면서 소유주가 귀족과 왕족 등으로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러던 중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프랑스 정부는 유서 깊은 이 건물을 매입해 1843년에 박물관으로 꾸며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퀼리니 박물관은 예술품의 전시 공간과 로마 시대의 목욕탕 유적지로 나눠진다. 이 박물관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안에 있는 유물의 가치는 매우 크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태피스트리(tapestry) 연작인 ‘귀부인과 일각수’(La Dame a la Licorne)이다. 일각수는 이마에 뿔이 하나 달린 전설 속의 동물로 유니콘(Unicorn)을 말한다. 여섯 장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5세기 말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세 유럽의 예술 작품 가운데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곳에서는 로마, 비잔틴, 중세, 고딕, 르네상스 시대의 빼어난 유물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이 박물관은 중세의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유물을 많이 전시하고 있어 교회 예술품의 보고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여러 교회에 있던 중세 시대의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길 건너편에 있던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유물 일부도 이곳에 있다. 프랑스 대혁명(1789~1794년) 때 노트르담 성당의 외부 정면에 장식되었던 유다 왕들의 머리가 잘려 분실되었다. 그런데 1977년에 인근에서 그 두상들 가운데 일부가 발견되어 박물관 한쪽에 전시되어 있다.

 

- 퀼리니 박물관의 로마 시대 목욕탕에 마련된 조각 전시실.

 

 

퀼리니 박물관의 소장품은 금과 은, 상아 등으로 만들어진 성물, 성상과 부조, 고가구와 태피스트리, 수사본과 유리화 등 그 폭이 매우 넓다. 특히 유리화는 기존 성당에 설치됐던 것인데, 전쟁이나 혁명 등으로 성당이 파괴되면서 이곳에 자리 잡았다.  

이 박물관은 1500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 안에 자리하지만 아름답고 값진 예술품을 소장함으로써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3세기에 지어진 로마 시대의 공중목욕탕 위에, 퀼리니 수도원 원장의 거처가 들어섰고, 그 자리에 다시 주교관이 건립됐다. 그리고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가 퀼리니 박물관이 되었다. 같은 자리에 있는 건물이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용도를 달리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럽에서는 퀼리니 박물관처럼 세월의 흔적이 묻은 건물을 손질해 예술 공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교회 건물이나 낡은 공간을 다듬으면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같은 문화 공간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오래된 건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소중한 유물과 같은 것으로 항상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흔적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건물이 허물어지면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진다. 비록 오래된 건물이 낡고 실용성을 잃어버렸다 해도 쉽게 허물어서는 안 된다. 그 건물이 담고 있는 가치는 실용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교회 건축물의 대부분은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온갖 정성과 노력, 신앙과 기도 그리고 문화와 역사의 산물이다. 선물처럼 받은 소중한 산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용하고 잘 가꾸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교회 건축 등 많은 것을 넘겨주었듯이 우리도 후대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것을 많이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3월 26일,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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