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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정진석 회고록42: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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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29 ㅣ No.442

[추기경 정진석] (42)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눈앞이 캄캄했는데… 돌아보니 하느님 은총이었네

 

 

- 1988년 청주 공설운동장서 열린 청주교구 설정 30주년 신앙대회 및 성모 성년 전국 대회에 참석한 신자들.

 

 

1980년대는 한국 교회에 특별한 시기였다.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과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차례로 열렸기 때문이다.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에게도 이때는 특별했다. 한국 교회의 큰 경사와 함께 청주교구가 설정 25주년을 맞았고, 정 주교 자신도 사제 수품 25주년 은경축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나라와 함께하고 있음을 기도 중에 자주 체험할 수 있었다. 

 

1980년대의 한국 교회는 대규모 신앙 대회를 통해 쇄신의 노력을 계속하게 된다. 한국 교회는 1981년 개최된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행사’를 통해 교회 현황을 점검하고 쇄신하기 위한 의지를 다졌다.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행사’는 교회에 큰 자신감을 불러일으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에 천주교를 알리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줬다. 이어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행사와 사업들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이러한 한국 천주교 전체 분위기와 흐름을 같이해 청주교구도 마침 교구 설정 30주년을 앞두고 있었다. 또 서울 제44차 세계성체대회 등이 시기적으로 연결됐다. 정 주교는 이 모든 것에 하느님의 깊은 뜻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한국 교회의 발전과 성숙, 그리고 쇄신의 흐름 속에서 청주교구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1983년 2월 16일(한국 시각 2월 17일) 초대 교구장 파디(James V. Pardy, 미국 메리놀외방선교회) 주교가 숙환으로 선종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당시 정 주교는 공무로 유럽 순방 중이었다. 정 주교는 선종 소식을 듣자마자 파디 주교를 위해 기도했다. “파디 주교님!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고, 하늘나라에서 우리 청주교구도 계속 돌보아주세요.” 청주교구의 첫 머릿돌을 놓고 외국에서 모진 고생을 했던 파디 주교는 훌륭한 선교사였다. 그런 분들의 희생이 바로 오늘의 한국 교회 버팀목이 됐다고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 1986년 사제 수품 25주년 기념 미사.

 

 

한국에서는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와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교구 사제단과 메리놀회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2월 24일 내덕동주교좌성당에서 많은 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청주교구 신자들은 자신의 첫 교구장을 기억하며 큰 슬픔에 잠겼지만 고마움과 감사를 잊지 않았다.

 

파디 주교의 전구 안에서 청주교구는 1983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준비하게 됐다. 정 주교는 이러한 시기를 보내는 데 무엇보다 순교자들의 도움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고,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유해 순회 기도회’를 실시했다. 내덕동주교좌성당을 시작으로 25개 성당과 1개 수녀원을 순회하는 행사였다. 영적 교육을 위해 특별 강론과 성소 계발, 순교 신심 함양, 선교 강화, 가정 성화 등에 사목적 역량을 집중시켰다. 또 교구 설정 25주년 및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성당으로 사창동성당을 건립하고, 수곡동본당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해 4월 11일부터 3주 동안 안동교구와 합동으로 교구 25주년 및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전체 사제 생활 쇄신 연수회’(아조르나멘토)를 실시했다. 당시에는 교구별로 아조르나멘토가 유행했다. 연수회에서는 교구 설정 25주년 기념 사업과 교구의 사목 방향이 다각도로 논의됐다.

 

1984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마중하는 정진석 주교.

 

 

1984년 5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행사는 ‘이 땅에 빛을’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교황은 5월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의 200주년 기념 신앙 대회와 순교 복자 103위 시성식을 집전했다. 교황의 방한은 한국사회뿐 아니라 한국 교회에 큰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청주교구는 1984년 10월 3일 정진석 주교의 집전 아래 200주년 기념 성당으로 신축된 사창동본당 봉헌식을 했다. 사창동본당은 교구 설정 25주년을 기념하며 추진한 기념 성당 1호였다. 교구민의 힘만으로 이룩한 최초의 성전이었다. 본당 신자들은 비누나 세제 등 각종 생필품을 팔고, 결혼반지를 헌납하는 등 정성을 모아 성전 건립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성전을 짓는 동안 교구민이 일치하고 화합하는 은총이 쏟아져 내렸다. 성전을 봉헌하던 날, 감격한 정 주교는 본당 신자들에게 당부했다.

 

“행복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 때 옵니다. 죄를 용서받고 기도하는 성전이 끝까지 거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세요.”

 

1986년 3월 18일에는 교구장 정진석 주교도 사제 수품 25주년 은경축을 맞았다. 은경축 행사는 내덕동주교좌성당에서 열렸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 교회 고위 성직자들과 교구 사제단, 신자 등 1500여 명이 청주교구의 첫 한국인 교구장을 위해 모였다. 정 주교는 자신의 은경축 미사를 집전하면서 지난 세월이 마치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음에 놀랐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우러났다. 미사 중간 자꾸 옛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행사의 연속이었다.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한국의 서울에서 치른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이에 따라 한국 교회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주제 아래 성체대회 준비에 들어갔고, 1988년부터는 준비의 일환으로 ‘한마음한몸운동’을 추진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년에 이어 두 번째로 1987년 6월 7일부터 1988년 8월 15일까지를 성모 성년 기간으로 선포했다. 한국 교회는 이를 기회로 신자들이 지정 성당을 순례한 뒤 전대사를 받음으로써 성체대회를 맞이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했다. 청주교구는 마침 1988년 맞는 교구 설정 30주년 행사를 한마음한몸운동과 성모 성년 행사에 맞춰 추진하기로 하고, 이를 바탕으로 1989년 세계성체대회에 함께한다고 발표했다. 

 

정 주교는 이렇듯 청주교구의 30주년 행사와 다음 해 성체대회가 연결되는 것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느꼈다. 행사는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단계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많이 체험했다. 정 주교는 30주년을 맞아 청년기에 들어선 청주교구의 모든 교구민이 주님을 머리로 한 지체가 되어가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0여 년 전 청주에 처음 왔을 때 눈앞이 캄캄했는데, 오늘의 이런 결과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도를 드리는 정 주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3월 26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사진=서울대교구 홍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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