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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8: 교황께 올린 탄원서와 성직자들의 조선 입국 방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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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22 ㅣ No.808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8) 교황께 올린 탄원서와 성직자들의 조선 입국 방책


조선이 박대하더라도 “십년이고 백년이고 버틸 의지 보여야”

 

 

- 미리내성지 103위 기념 성당에 있는 유진길, 정하상, 조신철 성인화. 맨 오른쪽 관복을 입고 편지를 들고 서있는 이가 유진길이다.

 

 

조선 선교를 희망하도록 브뤼기에르 신부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1824년(혹은 1825년) 조선 신자 암브로시오와 동료들이 레오 12세 교황께 올린 탄원서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겨있을까! 자못 궁금하다. 이 탄원서에 관해 이미 간략하게 다루었다.<본지 1월 1일자 1396호 15면 ‘조선대목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참조> 이번 호에는 편지 속으로 좀 더 들어가볼까 한다. 특히 편지에 수록된 성직자들의 조선 입국을 위한 13가지 제안에 집중하고자 한다. 

 

‘1824년 조선 신자 암브로시오와 동료들이 교황께 올린 탄원서’(이하 암브로시오와 동료들이 교황께 올린 탄원서)를 쓴 이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유진길(아우구스티노, 1791~1839) 성인이 편지의 작성자라는 게 학계의 일반적 견해이다. 정하상(바오로, 1795~1839) 성인과 함께 성직자 영입 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1824년(혹은 1825년) 동지사 수석 역관으로 북경을 방문했다. 유진길은 정하상, 조신철(가롤로, 1794~1839), 이여진(요한, ?~1830)과 함께 북경에서 포르투갈 선교사들을 만났다. 정하상과 이여진은 선교사들과 이미 친분이 있었다. 정하상은 성직자 영입과 1801년 신유박해 상황을 알리기 위해 1816년 북경 선교사들을 만났었다. 이여진도 1811년과 1813년 북경 주교와 교황께 드리는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북경을 방문했었다. 1823년 입교해 처음으로 이때 북경을 찾은 유진길과 조신철은 선교사들에게 아우구스티노와 가롤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유진길과 동료들은 교황께 드리는 탄원서가 청나라 관리들 손에 들어가 신원이 탄로날까 봐 암브로시오라는 가명으로 작성했다. 한문으로 쓴 이 편지는 포교성성 마카오 대표부로 전해졌고, 1826년 12월 3일자로 라틴말로 번역돼 1827년 교황청 포교성성에 접수됐다.

 

 

탄원서에서 정하상, 유진길, 조신철, 이여진이 제시한 성직자들의 조선 입국 방책을 간추렸다.

 

1. 성직자가 탄 배는 마카오에서 떠나야 한다. 배에 중국인을 태우는 것이 좋다. 그들의 글자가 우리와 같아 유럽인들보다 협상을 더 잘할 것이다.

 

2. 승선한 중국들의 행동과 언어는 서양 방식이어야 한다. 그런 외양을 보이면 중국의 속국 사람으로 여겨 환영하거나 아니면 추방할 것이다.

 

3. 닻을 내리면 조선 관헌들이 검문할 것이다. 선원 일부에게 중국말을 시키고 글을 쓰게 할 것이다. 중국인들 사이에 유럽인이 섞여 있다 해서 죄를 묻기는 어려울 것이다.

 

4. 유럽인들이 중국말을 한다 해서 놀라지 않을 것이다. 중국말을 어떻게 배웠느냐 물으면 “우리는 거룩한 종교를 여러분에게 전하기 위해 유럽에서 출발했다. 몇 년 동안 마카오에서 머물며 중국말을 열심히 배웠다”라고 답하라.

 

5. 배는 육지 가까이 접근하되 깊은 곳에 닻을 내린다.

 

6. 섬 가까이에 정박하지 마라. 섬에는 많은 수비병이 숨어 있다.

 

7. 우리 임금에게 공경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준비하라. 의학서적과 의약품, 귀중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이 좋겠다. 그리고 임금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는 교서를 꼭 얻어야 한다.

 

8. 하선 즉시 막사를 세워야 한다. 조선 땅에 상륙한 이방인은 법에 따라 본영에서 조사를 받고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된다. 막사가 없으면 본영으로 끌려간다. 유럽인들이 종교를 전파할 목적으로 온 사실이 밝혀지면 더욱 엄격하게 대할 것이고 방해할 것이다.

 

9. 수도(한성) 가까이에 정박하는 것이 좋다. 수도에서 하룻길 떨어져 있는 도시는 인천, 부평, 안산, 교하, 통진, 남양, 김포 등이다. 항해하면서 앞에 보이는 곳이 어디인지 물어봐야 한다. 만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지방이라면 닻을 내리지 않는 것이 좋다.

 

10. 정박한 후에는 만일 작은 배가 열 척 있다면 예닐곱 척을 해변에 보내고, 나머지 배들은 쉽게 보이지만 해안의 주민들로부터 공격당하지 않을 만큼 해변에서 떨어져 있어야 한다. 주민들이 이 배들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지 못해 두려워해서 다른 것을 궁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11. 조선인들이 성직자들을 전혀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고 배를 추방하려 한다면, 움직이지 말고 오히려 배를 돌리지 않을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뒤따르는 다른 배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리고 십 년이고 백 년을 머문다더라도 받아들일 때까지 버티겠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12. 만약 사제들이 우리나라에 와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려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사제들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외국 배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 사람을 불러들였다는 의심이 생겨날 것이고, 또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3. 이런 제안들은 어쩌면 설익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려면 그 일을 충분히 미리 살펴보고, 모든 상황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을 살펴보시도록 상세하게 설명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제안을 드린다. 우리가 보기에 가장 바람직한 곳이 좌절의 장소로 버림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 유진길은 조신철, 김 프란치스코와 함께 1835년 2월 16일 북경 남당에서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를 또 한 번 쓴다. 이 편지에는 브뤼기에르 주교가 천 가지 노고와 백 가지 고초를 겪으면서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조선에 들어오려 하니 천주의 특은을 받은 듯해 감동하고 있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아울러 이후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에 오기를 원한다면 기꺼이 모셔들이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2월 19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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