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1일 (일)
(백)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되돌릴 수 없는 되돌리고 싶은 시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18 ㅣ No.990

[영화 속 신앙 찾기] 되돌릴 수 없는 되돌리고 싶은 시간

 

 

시간은 선(線)이다. 선은 흐름이다. 그 흐름은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일정하다. 아무도 정지시키거나, 건너뛰거나, 늦출 수 없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벤자민’처럼 시간이 거꾸로 갈 수도 없고, ‘터미네이터’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멋대로 왔다 갔다 할 수도 없다.

 

시간은 차별하지 않는다. 언제, 누구에게나 같다. 지나간 시간은 ‘삶과 역사’를 만들고, 지금의 시간은 삶과 역사에게 ‘선택’을 준다. 때문에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삶을 다시 선택하고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삶과 역사를 뒤흔들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피카소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현실이 된다.”고 했지만, ‘시간 여행’만은 그 ‘모든 것’에 넣을 수 없다. 과거는 과거의 현재이고, 현재는 미래의 과거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고, 삶은 그 흐르는 연속 위에서의 순간순간 선택의 결과이다.

 

시간 여행은 그 선택과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시간 여행이란 욕망을 만든다. 그러나 어쩌랴. 삶도 시간도 두 번은 없다. 반복 또한 절대 불가능하다. 기억과 상처 또한 좋든 싫든 새로 만들거나 지울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생에 무슨 걱정과 고민이 있겠는가? 인생에 무슨 회한이 있겠는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프랑스 소설가 기욤 뮈소의 말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인생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 인생을 다시 쓸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실수를 바로잡고 싶은지, 우리 인생에서 어떤 고통을, 회한을, 어떤 후회를 지워버리고 싶은지, 진정 무엇으로 우리 존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으리라. 만족한 삶이나 후회 없는 삶이란 없으니까.

 

 

과거가 될 현재에 최선을

 

현재의 ‘내’가 과거로 돌아가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하고, 그것으로 미래까지 바뀐다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할까? 후회도 말끔히 사라질까? 자신할 수 없다. 그 새로운 선택과 삶에도 미련은 남을 것이다. 두 가지의 시간과 삶을 동시에 선택하고 가질 수는 없으니까.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인 팀이 과거로 돌아가기를 반복해 계속 다른 선택을 하지만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끝내 얻지 못하듯,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경리 씨와 박완서 씨는 생전에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모진 세월 다시 만나고 싶지 않고, 한 번 본 것 두 번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살고 싶지도 않고, 설령 간다고 해도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의 삶은 지나온 시간이 쌓은 것이다. 그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것은 지금의 자신을 지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 여행은 인생에서 이미 결정된 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이제부터 과거가 될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인생에 최고의 선택이란 없다. 어느 것이 최고인지 인간은 알 수 없다. 그것은 신만이 알며, 신은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순간순간 조금이라도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다. 인생에서 후회는 최고의 선택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아홉 번의 시간 여행을 통해

 

기욤 뮈소의 소설을 한국 영화로 만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폐암으로 죽음을 앞둔, 50대 후반의 소아과 의사인 주인공 한수현도 최선의 선택을 다시 하려고 캄보디아 노인이 준 이상한 알약을 먹고 30년 전의 자신을 만나러 간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자.

 

영화는 엘리엇에 한수현을, 그가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여자’인 일리나를 최연아로 변신시키고, 시대를 6년 정도 뒤로하고,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플로리다를 서울과 부산으로 바꾸었다. 그래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프랑스 재료로 우리 음식을 만들었지만 본디의 맛과 향기는 잃어버리지 않았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특별하고 독창적인 이야기와 구성을 가지고 있어 아무렇게나 변주해도 그 매력이 사라지지 않아서가 아니다. 기욤 뮈소의 소설이 영상 언어로 변주하기에 더없이 좋은 ‘영화적’이어서도 아니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중과 의사로서의 사명감, 가족에 대한 사랑,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희생, 친구에 대한 우정 등 그 안에 담긴 보편적 가치와 정서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지역과 인종, 시대와 종교의 벽이 있을 수 없다. 소설과 영화가 다를 수 없다.

 

영화는 ‘시간 여행’의 소설이 가진 약점이자 운명인 개연성 부족까지 받아들이고, 원작의 구성과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렇다고 차별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아닌 2015년과 1985년 한국의 정서를 꼼꼼히 묘사했고, 우리 현실에 맞지 않은 것들은 걷어냈다.

 

한수현에게 알약을 건네준 노인은 “삶은 당신이 잠들지 못할 때 벌어진다.”고 말한다. 그 삶을 다시 선택하려고 그는 잠을 자면서도, 잠들지 않고 30년 전으로 간다. 거기에서 그는 젊은‘나’를 만나고, 그에게 자신이 선택하고 걸어온 길과 다르게 가라고 말한다.

 

현재의 한수현과 30년 전의 한수현의 짧은 20분의 만남과 공존, 그것에서 오는 혼란과 놀라움, 그리고 시공을 초월한 두 사람의 소통이 이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들고, 새로운 선택을 더욱 아름답고 간절하게 드러내준다.

 

 

기억은 인간이 갈 수 있는 시간 여행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욕심이 많다. 아홉 번의 시간 여행을 통해 주인공이 과거를 바꾸면서도 그것으로 현재까지 무너뜨리지 않으려 한다. 비록 회한 가득한 인생이지만, 그 시간이 만들어준 현재의 ‘나’의 삶에도 너무나 소중한 것이 있으니까. 회한도 없애고 소중한 것도 지키려고 영화는 절묘한 절충을 한다.

 

현재의 ‘나’는 30년 전 ‘나’와 힘을 합쳐 사랑하는 여인 연아를 살리고, 그녀만큼이나 소중한, 비록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현재의 딸인 수아의 존재도 없어지지 않게 하는 극적인 반전과 아름다운 마지막 선택.

 

수현에게서 이유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이별을 당한 연아가 교통사고(소설은 자살기도)로 결국은 과거 여행의 보람도 없이 목숨을 잃을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몽상에서 깨어난다.

 

이미 미래까지 결정된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현실’로 돌아오려 한다. 그러나 수현은 그것을 거부한다. 그것으로 시간 여행을 마치기에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자신이 가진 모든 재능(수술)으로 그녀를 기어코 살리고 돌아온다.

 

시간 여행이 최선을 다하는 삶을 다시 선택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그는 그렇게 했다. 함께 수술에 참여한 젊은 ‘나’는 30년 뒤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이미 그가 걸어가고 만들어 놓은 미래까지는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과거의 한수현과 현재의 한수현은 시간 여행을 통해 서로 만나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두 사람(연인과 딸)을 모두 지켰다.

 

그것으로 행복하다. 죽기 전에 과거에서 꼭 해야 할 일을 했고, 현재에서 지켜야 할 것을 오롯이 지켰으니까. 그래서 과거의 한수현은 미래의 자기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미래의 한수현은 “그 말은 내가 해야지.”라고 감사해 한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소중한 기억을 얻었다. 그 기억을 간직한 채 죽어가는 한수현은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을 때, 행복했던 때를 생각해. 그 사람하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 그 기억만으로도 살아져.”

 

그 기억이야말로 인간이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 여행일 것이다. 누구나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다한 행복한 순간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살기에, 굳이 과거로 돌아가 바꾸지 않아도 우리의 인생은 아름답고 최선이다.

 

* 이대현 요나 - 영화평론가로 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이다. 한국일보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저서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가 있다.

 

[경향잡지, 2017년 3월호, 이대현 요나]



2,04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