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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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좁은 문의 열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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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08-25 ㅣ No.131995

 


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

좁은 문의 열쇠는?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나요?

선조들의 지혜인지,

절기가 참으로 묘합니다.

어제 처서가 지났다고

더위가 완전히 한풀 꺾인 모습입니다.

이제 지내시기가 한결 나아질 것 같습니다.

맞이할 한 주간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품 안에서

더욱 행복해지시길 바랍니다.

형제자매님, 1독서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했던

유대인만의 구원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방민족 가운데서도 사제와 레위인

즉 하느님을 위해서 온전히 봉헌된 사람이

나오게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라는

어떤 사람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될 것이라는 대답을 하시지 않고,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라고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그래서 왜 구원의 문이 좁다고 하시는가?

우리에게도 구원의 문은 좁을 것인가?

등등 많은 의문들이 생깁니다.

우리의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그 다음에 하신 비유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인과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쫓겨나는데,

주인은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하고

그 사람들을 쫓아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29절에서는

사방에서 사람들이 와서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는 사람의 숫자가

적은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좁은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라는

말씀도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형제자매님,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왜 구원이 문이 좁아졌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구원관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을 타고났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면 저절로 구원을 획득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있다고 믿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때가 되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보내신 당신의 외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을 실천해야 구원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구원의 문이

좁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오히려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에서 완전히 제외된

사람들이었지만 이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꼴찌가 될

첫째란 유대인들이고

첫째가 될 꼴찌는 이방인들입니다.

형제자매님,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다른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첫째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꼴찌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첫째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제2독서에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임을 마음에 새기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시련이 주어진다면

이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훈육하시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잘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예쁜 자식 매 한 대 더 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강하고 바르게 세우시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내는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시련으로 단련시키신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님,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된 사람들이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훈육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데

하느님께서 항상 평화를 누리도록

해주셔야지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라고 하느님을 원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당신께 의탁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우리를 단련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신 유일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세상의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체험한다면 나의 모든 것을

그분을 위해서 버릴 수가 있고

그분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만이 좁은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면서 우리 역시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또 무엇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형제를 잘 사랑함으로써 좁은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확보한

첫째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새롭게

맞이할 한 주간도 내 가족과 이웃 형제들을

잘 사랑하면서 생활합시다.

(울릉도 도동성당에서)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드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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