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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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을 보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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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08-25 ㅣ No.131997

 

 

내면을 보시는 하느님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그 밖의 모든 채소는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정의를 행하는 일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구나

 인간은 외면적인 것을 보지만

하느님은 내면을 보십니다.

정의를 행하는 일과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와 상반되는 가치 명령 그리고

전통들에 대해 저항해야 합니다.

속된 것으로 차 있는 세상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에게 얻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소비하고 소유하려는 성향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은

내적인 추구를 통해 행복을

지향하는 신앙인들을 유혹하며

그러한 노력들로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처럼

오도시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신앙생활에서도 공로를

많이 쌓고 신비체험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획득하고

쌓으려는 현대인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기도에까지도 적용하려는

성향에서 온 것입니다.

자기-구원 또는 완벽주의

등으로 나타나는 투사가 이와

비슷한 흐름을 조장합니다.

  일련의 이러한 압력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새로운 스트레스만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이러한 영성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얼마 안 가서 이것은 스트레스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는 희생양이 되고 설상가상으로

걱정하면서 그것으로 인해

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것은 이미 무거운 짊이

되어 있는 삶에 우리가 또 하나의

짐을 추가하는 것 외에

더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방식과는 맞지 않고,

그래서 우리는 저항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가치는 삶과 죽음의

깊은 신비에서

드러나는 것들을 간과하고

외적인 필요와 결핍을

채우려고 하며 그것으로부터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진리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하며

살아 있는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려는 데 마음을

쏟아야만 합니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삶은 살고 팔고 그리고 소유하고

행하는 끝없는 순환의 구조

속에서 기계적인 따분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종교는 기도와 현존체험을

통한 내면의 보물을 쌓지

않는다면 기껏해야 마지못해

내는 위선적인 헌금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세속적인 일로 꽉 찬 세상은

항상 우리를 활동주의와 주로

화폐 양으로 눈에 보이는

결과를 쫓도록 몰아 갑니다.

 우리는 간절히 바라는

행복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할 수 있는데도

계속 바쁘게 생활하라는

압력에 넘어갑니다.

우리는 걱정을 덜어 주겠다고

약속한 것에 또는 우리가

쫓아가는 어떤 사람에 대한

기대들에 희생양이 됩니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획득하십시오.

더 많은 상품들을 사십시오.

더 큰집을 지으십시오.

더 비싼 차를 구입하십시오.  

이러한 장황하게 설명한

거짓 약속들은 평화와

기쁨이라는 최고의 선물들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저항해야 합니다.

 난잡한 소비주의는 역 효과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까닭에

행복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혼란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하느님의 숨은생활중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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