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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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밥 먹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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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칠등 [kcd159] 쪽지 캡슐

2019-10-16 ㅣ No.218888

가을볕이 좋아 강가를 찾았다. 강물이 맑아졌고 물소리도 맑아졌다.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높고 파란 하늘이 한없이 여유롭게 펼쳐져 있었다. 덩달아 내 마음도 여유로워져 자신을 되돌아 볼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듯 했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직업이나 직책 그리고 나이나 성격 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와의 관계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아니면 부끄럽게 생각하는지 그도 저도 아니면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지 한 번 쯤 자신을 객관화해 볼 기회를 가지는 것도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의 관계를 자랑스러워하거나 지속하고자할 매력적인 점이 하나도 없다면 지금이라도 조금 심각하게 고민 해 볼 필요도 있겠다. 한 참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의 가족 아닌 사람 중에서 나하고 같이 밥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있다면, 몇이건 숫자에 상관없이 그 사람들은 순수한 나의 지인들임이 분명하다. 난 아무런 직책도 없는 평범한 보통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참을 생각해 보았다. 몇 명의 얼굴이 스쳐갔지만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조금은 슬퍼지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유명인이나 권력자, 재벌인사 등과의 친분을 말하거나 그들과의 만남을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이런 행동들은 친분관계가 헐겁기는 하지만 그들을 통해 반사된 영광을 누리는 효과를 기대하는 심리에 기인한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밥만 먹는 자리가 아니다. 함께 밥 먹는 잠시 동안의 시간이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서로의 사이를 더 멀리 떼어 놓는 불필요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함께 밥을 먹되 서로 즐겁게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식사하는 데는 조금의 기술과 예절이 필요하다. 누가 마련한 음식이든 맛있게 먹는 태도가 중요하고 전달하거나 부탁할 사항이 있으면 순간을 잘 포착하여 부담 없이 가볍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의 아픈 곳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하며 자기주장을 너무 강하게 내 세우는 것도 금물이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설득당할 마음의 여유부터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잘 생각해 보면 살아가면서 시간과 경비를 들여가며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를 더 나쁘게 하는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이십 년 쯤 지난 오래 전의 기억이다. 우리 부부가 다른 부부(우리보다 연상이며 조금은 조심스러운)를 초대하여 식사 대접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사전에 초대할 사람에게 어떤 음식이 좋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것은 대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음식을 가리지 않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대답을 들었다. 우리는 마음먹고 제법 비싼(?) 음식점(한우갈비 전문점)에 예약 해 놓았다. 식당과 시간을 알려 주었지만 알겠다고만 하고 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한 참 고기가 익어가고 있을 때 정말 생각지도 않은 사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자기 부부는 소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낭패가 없었다. 고기 외에 다른 반찬들도 있으니 그냥 반찬으로 밥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식당에 양해를 구해 돼지고기를 좀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미 구운 고기를 버릴 수도 없어 우리는 한우갈비를 먹고 손님에게는 돼지고기를 대접했다. 마음이 너무 불편해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지금도 그날 저녁 시간의 불편했던 기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그래서 나는 서로의 식성을 잘 모르는 다른 사람으로 부터 같이 식사하자는 제안이 있으면 00 등은 못 먹는다고 미리 알려준다.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은 가족이다. 나이가 들면 자녀들이 독립을 하게 된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 부부만 함께 식사하게 된다. 그런데 남편을 위해 진수성찬을 마련 해놓고 밥맛을 뚝 떨어지게 하는 주부들도 간혹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열거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음식이 목을 넘어가지 못하게 막는 이야기들을 밥상에 마주앉아 하게 되면 애써 만든 저녁 식탁은 괴로운 고문의 자리가 되고 만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은 아니었겠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내만의 잘못이라기보다 부부가 함께 반성해야 할 일이다.

아직 공부하고 있는 청소년 자녀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가정이라면 어렵겠지만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갖도록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외국의 여러 연구에서도 밝혀진 사실 한 가지. 가족이 저녁 식사를 자주 함께하는 집의 자녀들이 그렇지 않은 집의 자녀들 보다 이성과의 교제를 늦게 시작하며 청소년 범죄율도 매우 낮다는 것이다. 자녀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자주 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꾸지람 하거나 요구할 일들이 많아도 식사할 때는 꾹 참고 웃는 얼굴로 칭찬 해주어 즐거운 자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과 저녁 식사를 자주 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준비되어도 그 자리가 피하고 싶은 자리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와 함께 밥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외롭지 않을 수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특별한 자리보전을 하지 못한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너나없이 외로워지고 쓸쓸해진다.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사람을 갖기 위해 노력해 보는 것도 좋겠다.

 

정상진/前밀양초등학교장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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