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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사계(四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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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안에선 언제나 닭이 무리지어 놀고 있었지. 꼬댁꼬댁 노랑 병아리들 걸음마시키는 엄마닭이 있고 괜시리 횃대에 올라 붉은 벼슬을 두릿대는 수탉도 있었다.
싸리나뭇가지 아래로 암탉이 낳은 노란 계란이 언제나 여기 저기 드문드문 흩어져 있곤 했지.
누이동생은 세살이 되어서도 말이 어눌했다. 딸애는 돌만 지나도 말이 또렷하다며 걱정들을 하셨지만 오빠는 알지. 계란 깨먹는 데 재미 들인 우리 누이가 암탉 좇아다니며 알 낳은 데를 찾기에 바빠 다른 계집아이들 마냥 말 배울 틈이 미처 없었다는 걸..
외할머니도 말씀하셨지. 계란 많이 먹으면 말이 더디다고..
돈사엔 검은 돼지들이 꿀꿀대며 풀이건 기왓장이건 닥치지 않고 씹어댔다. 냄새같은 건 아랑곳 않고 귀여운 돼지새끼들 보느라 밥 먹는 때도 잊은 채로 나는 돈사에서 한낮을 보내곤 했다. 아들 찾으려면 돼지우리로, 딸 찾으려면 울타리 따라 어스름 녘이면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형이 바빴다. 어머니는 한꺼번에 다섯 아이들 이름을 줄줄이 불러대곤 했걸랑. ^^ 우리나라 엄마들은 재주도 좋아, 요즘 우리 마눌도 종종 그러거든.
여름이면 선수랑 선태랑 셋이서 옷을 홀라당 벗어부치고 마당을 신나게 뛰어다니면서 소나기를 맞곤 했다. 그땐 마당까지 미꾸라지가 올라오곤 해서 이랬었지. 구름 속에 살던 물고기들이 빗줄기 타고 내려온다고..
미군트럭이 지나갈 땐 동네 아이들이 아주 바빠지곤 했는데 트럭 뒤에 앉은 하얗고 검은 군인아저씨들이 껌이며 초컬릿같은 과자들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야. 트럭을 따라 달려가던 그 땐 휘발유 냄새가 어찌 그리 고소했던지 몰라.
하도 군인 트럭을 쫓아 뛰어다녀선지 나는 기관지가 나빴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 따라 병원에 가곤 했지. 의사선생님이 그러셨어. 기관지와 심장이 약하다고... 머 그랬으면 어때?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잖아!
그런것들이 다소 나쁜 상태이긴 했지만 조숙했었나봐. 어릴 땐 꼭 어머니를 따라 목욕탕에 갔었는데 어느날 아줌마들이 그러는거야. 어머나, 얘 몇살이래요? 이렇게 큰 아이는 아버지 따라 남탕으로 보내야지요. ..그래서 다섯살때부턴 아예 목욕탕엘 가지 못했어. 울 아버지께서는 목욕탕엘 거의 안 가셨거든. 겨울이면 딱지가 앉고 손등이 갈라져 피가 나곤 했지. 때론 조숙한 것도 별로 좋은 게 못되는 것 같아.
그랬어도 미끄럼 타다 골짜기로 날아가 박히기도 하고 깡통에 불 지펴 휘날리며 달 아래 밤 깊은줄도 잊곤 했어.
추위가 가시고 냇물이 졸졸 소리내며 흐르면서부터는 학교엔 안 갔지만 여섯살배기가 경황없이 바빠지곤 했어. 큰형이 물고기 잡는 걸 무척 좋아해서 늘 따라다녀야 했걸랑. 작은 형은 내싸두고 왜 맨날 나만 데리고 다녔는지 몰라. 어망을 들고 물고기를 몰아주려면 투망칠 때 조수가 꼭 있어야 하거든.
추천대에서 삼천과 중인리를 거쳐 상류에 위치한 구이저수지 아래까지 그 무거운 어망을 들고 이십리 삼십리씩 물을 거슬러 올라가 봤어? 땡볕아래 그냥 서있기만 한대도 더위먹을 지경일텐데말야. 하도 고단해서 도망쳤다가 얼마나 두들겨 맞았던지...ㅜ.ㅠ 그러다 보니 나는 여섯살 때부터 내를 거슬러 오르며 투망을 쳤다. 형이 자전거로 피라미를 실어 나르는 동안 별로 할 일이 없었거든. 내 서툰 솜씨로도 망 하나 가득 채우기가 아주 손쉬울만큼 그 시절 전주천에는 피라미 떼가 시꺼멓게 많이 오르내렸댔지. 작은형은 편하게 노는데 셋째인 나는 죽을둥 살둥 새벽부터 허리춤엔 나무오리 줄을 매고 손엔 어망을 든 채로 하루에 사오십리씩 물을 거슬러 올라다녀야 했으니..아무튼 조숙한 건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 가텨. 형이 한벽당 오모가리집에 물고기 대는 일을 멈추기까진 참 고단했지.
중학교땐 쉬는 날마다 도시 주변의 산을 섭렵했지. 1번부터 5번까지 다섯이서 일요일 아침마다 모여서 산엘 간거야. 모악산,고덕산,중바우,기린봉..안 가본 데가 없지. 저마다 고구마를 쪄오거나 누룽지를 싸오거나 했지만 한창때라 그것만으로 배가 찰리 없어서 산기슭 밭을 뒤지곤했지. 무우밭도 싫진 않지만 고구마 밭이 젤 반가웠던 시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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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러다 보니 우리 나이 벌써 일흔을 넘어섰구만.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빨간 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미싱은 잘도도네 돌아가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