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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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살리고 떠난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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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kimhh1478] 쪽지 캡슐

2019-11-18 ㅣ No.96433

남편 살리고 떠난 아내




남편 살리고 떠난 아내   
.
   울산시 신정동에 사는 정태진 씨(46)는 
   매년 8월 4일이 되면 6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생일상을 차린다. 
.
   '고향 간 사람'의 생일상을 차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사연이 숨어 있기에

그러는 것일까? 
.
   아마 아직까지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
   정씨가 고인이 된 아내를

처음 만난 건 지난 1987년
   4월, 전북 김제 평야지대에서

농사를 짓던 그는 영농

후계자로 선발돼 종묘,

농약 등의 구입문제로 종종

상경하곤 했는데 기차에서 우연히

동석하게 된 사람이 아내였다. 


   그렇게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했고 정씨는 당시
   사회문제가 됐던 농촌총각

장가 못가는 서열에서도
   빠질 수 있었다.

.

비록 농촌에서의 생활이었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냈다. 

.
   아내의 고운 심성에

마을 사람들의 칭찬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
   그해 6월 10일,

농기계 구입을 위해 기차로

상경한 그는 서울역에서 내려

역사를 빠져나오는데

시위행렬을 보았다.



'6.10 민주항쟁'의 현장이었다.
   정씨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위대에 떼밀려 대열에 합류한 후

어느덧 시청 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두 팔을 하늘로 향하고는

독재 타도, 민주 쟁취를
   외쳤다.
.
   그러다가 최루탄이 터졌고

정씨는 이를 피하려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정씨는 흩어지는 시위행렬에
   무참히 짓밟혔고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
   정신을 차려보니 병상이었고

옆에는 시골에서 급히 올라온

홀어머니와 아내가 지키고 있었다.
.
   그 사고 후 한동안 다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노환으로 어머님이

돌아가시기도 했지만 89년에는
   2세도 태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두통이
   오기 시작했고 여러 군데 병원을

다닌 결과 뇌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게 됐다. 

.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병인데

6. 10 민주항쟁 현장에서

머리를 다친 후유증이 이제야

온 것이다.
   이때가 1991년이다.
.
   정신착란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로 정씨는 망가져갔다.

완전히 벌거벗은 몸으로 바깥을
   돌아다닐 정도로 온전치 못한

그의 몸은 늘 상처투성이였다.

.
   이처럼 심각한 정도의 정신병

환자로 91년부터 99년까지 8년을

살았으니 그 동안 가족들의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이런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다. 
   그동안 아내는 그 많은 농지를

정리해 미국의 유명한 정신병원인

'동부 컨퍼런스 병원'에서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았다.

.

1년에 네 다섯 차례 미국의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는 동안 정신이

오락가락 하면서 그의 삶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
   그러나 아내의 지극정성에 힘입어

정씨는 차도를 보였고 99년

병원 측으로부터 완치

판정을 받았다.
.
   정씨는 잃었던 행복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1999년 12월 17일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 아내는 이미 자궁암

말기 환자가 되어 병원에 누워
   있었다.



빡빡 깎은 머리에 모자를 쓴 채

말 한 마디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아내는 죽음의 한 가운데

있었다.

.

그 동안 남편의 정신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병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다. 
   남편이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온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그렇게 누워 있었다.

.

아내의 지극 정성으로 즉 아내 덕분에

정신병을 고치고 다시 태어나는 순간인데

아내는 이 기쁜 순간을 누리지
   못했다.
.
   남편이 미국에서 돌아온 지

4일 만인 1999년 12월 21일,

눈을 감지 않으려고 미간에 잠깐

동안의 미동만 보이다

아내는 생을 마감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가 남편을

살리고 대신 자신이 떠나 간 것이다. 
   그 후 남편은 아내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
   대신 아내의 생일상을 차린다.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씨가 살아 있는 동안

제사 대신 아내의 생일상을

차리기로 한 것이다.

.

또 주변에서는 세월이 약이라며

정씨에게 새로운 삶을 권유하지만

먼저 간 아내를 배반할 수
   없어 혼자 살고 있다.
- 파이뉴스 윤태 객원기자 -

세상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 내 사람이다" 라고 점찍어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복된 일입니다.

.
서로의 다른 모습을 인정하고
서로서로 보완하여 완성해가는 삶.
그 인연을 소중히 지켜 가고 있는
남편에게, 아내에게,
사랑의 말을 속삭여 보세요.


-옮긴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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