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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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사제에게 - 오직 한 방향으로만 뻗어 있는 길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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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찬 [jesus_maria] 쪽지 캡슐

2021-01-27 ㅣ No.144052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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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Sacerdos alter Christus)이다.

거룩한 사람들만이 사제의 위대함을 제대로 볼 줄 알았다(1975.7.29)  




오직 한 방향으로만 뻗어 있는 길


길은 항상 일정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그 너비를 결정하는 양 가장자리 주위의 들과 산을 가로지르며 구불구불 나아가다가,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지점에서 끝난다.

아들아, 각 사람의 삶도 길과 유사해서 출발점과 최종 목적지가 있다. 누구든지 가야 할 길이 있고, 이 길은 영원한 길이다.

그런데 지상의 모든 피조물 중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자유와 지성이 있고, 선과 악을 구별하여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과 유사할 정도로 위대하다.


지상에 살고 있는 다른 모든 피조물은 인간과 달리 본성이 시키는 대로 일정한 길을 따라가도록 정해져 있다. 창조주께서 정해 주신 길을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성과 의지로 말미암아 기묘한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의 최종 목적인 영혼의 영원한 구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정해 주신 길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자유가 있다.

어처구니 없고 흉측하기까지 한 일은, 사람들이 지상의 다른 어느 생물보다 그들을 드높여 주는 타고난 재간을 남용하면서 이 세상 나그네살이의 여정을 버리고, 영원한 멸망으로 데려갈 어둡고 꼬불꼬불한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타락을 알지 못하고, 또 거짓의 두목인 사탄이 유혹과 속임수로 인간의 마음을 끌어당겨 농락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느냐?

물론, 사탄은 사람의 자유를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없앨 수는 없다. 하기야 사람이 거기에 협력한다면 그리 될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의 벗어남은 정당화될 수 없다. 사람이 된 하느님의 '말씀'인 내가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내 '구속'의 귀한 열매로 그 나약함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탄을 따르고 하느님을 거부하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의 길


사람들은 오늘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나를, 곧 곧고 안전한 길인 나를 버리고, 하느님의 교활한 모방자인 사탄이 알려준 길로 접어들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내 포도밭에 가라지 씨를 뿌리는 자들은 메뚜기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단지 어리석음을 퍼뜨리고 여러 이단으로 영혼들을 대량 학살하고 있을 따름이다.

허영심과 교만으로 달아오른 마귀의 화신인 그 이단 사설(邪說)들은 음란 서적 못지 않게 위험한 것이건만, 신학교나 수도원이나 학교 등 어디서나 버젓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치명적인 독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희생자가 생기고, 특히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있다.


모든 인간의 길은 모태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귀착점은 육신의 죽음이다.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결정하고, 그 이후에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선용했는지 악용했는지에 따라 행복하건 불행하건 영원한 삶이 시작된다.

영원으로부터 아버지에게서 낳음을 받은 하느님의 영원하신 '말씀'인 나는, 때가 차자 지극히 순결하신 내 어머니의 태중에 강생하셨고, 지금은 영광에 싸여 아버지 오른편에 앉아 있지만, 또한 '신앙과 사랑의 신비' 안에서 몸과 피와 영혼과 신성으로 언제나 너희 가운데에 있다. 나 역시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방향으로만 나 있는 길을 걷고자 했으니, 출발점은 내 어머니의 동정의 태중에 잉태되는 것이었고 도착점은 십자가를 지고 가서 그 위에 달려 죽은 육신의 죽음이었다.

'길'인 나는 너희를 위해서, 곧 너희 각자가 나를 따름으로써 평탄한 길을 가고 의심이나 불안을 품지 않으며 위험하게 빗나가지도 않게 하려고 나의 이 세상 길을 끝까지 다 걸었다.

오직 한 방향으로만 뻗어 있는 나의 길은 - 이는 빗나가거나 되돌아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길이라는 뜻이다 -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는 좋고 안전한 길이며 무한한 겸손의 행위로 시작되는 길이다.


무한한 겸손


하느님 아들의 강생은 무한한 겸손의 행위였으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이 기본적인 덕행이고 모든 덕행을 이루는 든든하고 본질적인 기초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숱한 사이비 신학자들은 이 신적 사실을, 즉 내가 외양간으로 쓰이는 춥고 누기 찬 동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단지 조금만 생각해도 넉넉히 깨달을 수 있으련마는! 이 세상에서 걸어가야 할 나의 길은 그렇듯 더할 나위없는 절대 빈곤 속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소비 사회의 지지자들이면서 이른바 나의 추종자들이기도 한 사람들은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겠느냐? 내 사제들은? 또 내 복음의 신적 단순함을 망각하고 복잡한 궤변과 논리로 유해한 책을 쓰기를 즐기는 몇몇 주제넘은 신학자들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겠느냐? 나는 무한히 단순한 하느님이므로 단순함을 사랑한다. 안락하고 난방이 잘 된 아파트를 좋아하는 저 신학자들은 그들의 구세주가 인간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외양간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또한, 부와 안락을 탐착하고, 아무것도, 심지어 정당하지 못한 것까지도 포기하려 들지 않는 그런 신학자들의 삶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그들의 구세주의 삶과 얼마나 명백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지도 보지 못하고 있다.

하느님을 업신여기고, 내 지상 대리자인 교황의 모든 호소에 귀를 막고, 단지 교황의 말을 반박하는 데만 재빠른, 무관심한 이기주의자들도 있으니, 이런 자들은 '진리'로 인해서 초래되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다.

기초조차 잡혀 있지 않은 그런 모든 사제들은 그들 자신이 내 교회에 끊임없이 흙탕물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내 사도 바오로의 이 말을 잊어버린 자들이다 : "과연 하느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인간의 온갖 불경과 불의를 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에 관해서 알 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환희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 1,18)

사람이 된 하느님의 '말씀'인 나는 내가 세상에서 걸었던 길을 통해서 이를 환히 보여 주었으니, 그것은 겸손, 가난과 순종, 더없이 혹독한 고통, 내 아버지와 내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길이었다.

사제와 목자들을 위시해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바오로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했던 이 말을 잘 읽어 보아야 할 것이다 : "인간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기지 않았습니다."(로마 1,2)


교만과 자만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천 년 전의 이교도들보다 더 나을 성싶으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길'을 버리고 더없이 천박한 육정의 어둡고 꼬불꼬불한 길로 접어들고서도, 하느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을 성싶으냐? 그들은 나의 진리를 흐리게 하여 그들 자신의 교만한 자만의 구렁텅이 속에 매장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 예언자들과 신(新)프로테스탄트 선전자들이 하고 있는 짓이 아니겠느냐? 이 신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것은 역겨운 위선의 탈을 쓰고 있는 품이, 처음 것과 진배없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길을, 나의 길이 아닌 길을 택하고 말았다.

그리고 번번히 내 '자비'에 호소하곤 한다. 지금까지는 자비의 때였지만 바야흐로 '정의'의 때가 오려고 한다. 내 아버지이시며 너희 아버지이신 분께서 정의를 행사하시는 날은 얼마나 무서운 날이겠느냐!

그들은 어찌나 분별이 없는지, 내가 나의 삶을 부인하기를, 참 하느님이요 참 사람인 나의 신원마저 부인하기를 바라고 있을 지경이다.


아들아, 한 번 더 네게 당부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회개하도록 호소하여라. 어떤 반발이 일어나건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그들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지만, 그들이 교만한 고집을 꺽지 않는 이상,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세상의 '빛'인 내가 가져온 빛을 향해 눈을 뜨기를 원치 않는 이상, 이 세상에서나 영원 속에서나 암흑밖에 달리 수확할 것이 없지 않겠느냐?

네게 강복한다. 나와 함께, 너의 어머니이기도 하신 내 어머니께서 네게 축복을 보내신다.

(1975년 10월 12일)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교만에서 나올 부정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마음쓰지 말아라. 그런 판단은 비누거품처럼 곧 사라질 것이다.

(1976년 6월 8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시급하고 긴요한 점검


군대 사령부의 모든 사령관은 정기적으로 협력자들을 불러 모으곤 한다. 그들과 함께 여러 방어 계획을 점검하고 공격 전략도 다시 검토한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과의 관계 변화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어떤 돌발사태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사령관 자신의 계획들이 충실히 검토되고 준비되게 하고자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사회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도 그렇게 한다.


내 교회에서도, 곧 전체 교회뿐 아니라 모든 지역 교회에서도 같은 부지런함과 열성적인 배려를 기울여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내 교회에는 견진성사를 받은 거대한 군대가 있으니, 이 군대가 마귀와 육정과 세속이라는 영혼의 원수들과 맞설 훈련을 받아야 한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시작되어 세상 끝날까지 끊임없이 계속될 이 대대적인 전투를 조직하고 지휘하는 일은 교계 제도 및 교회의 각급 참모부 소관이다. 내가 이미 말했듯이, 어둡고 캄캄한 지옥 세력과 대결하는 이 전투의 표적이자 희생물은 사람들이다. 개별적으로 보건 집단적으로 보건 사람을 두고 벌어지는 전투이니, 지옥 세력은 사람들의 멸망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어떤 간계나 유혹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믿지 않기 때문에 원수의 힘과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따라서 제대로 짜임새를 갖춘 전쟁을 이끌어 갈 수가 없게 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건 집단적인 차원에서건 그 필연성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몇몇지역 교회의 참모진이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부지런히 그들의 계획을 준비하고 있으니, 이는 칭찬할 만한 일이다. 반면에 비난받아 마땅한 것은 그 밖의 다른 지역 교회들의 참모진이 드러내는 나태이다. 이들은 악의 세력에 대한 방어나 공격 계획을 준비할 줄 모를 뿐더러 시행할 줄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활동에 사로잡힌 내 사제들이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한다면, 이 점을 인정해야 한다 :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열에 들뜬 듯한 그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믿게 할 만한 동기를 주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은총의 샘이 말랐기 때문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내 자비로운 성심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말이다. 그 원인은 그들 자신 속에서 찾아야 한다. 나무 뿌리에 도끼를 갖다 대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군대의 주력 부대가 따라오기를 원한다면 사제인 너희가 우선 길을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렇다, 서로 만나서 신실하고 진지한 형제애를 나누면서 영적 쇄신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애써 작성할 만한 가치가 있다. 더욱이, 이것이 바로 '공의회'가 너희에게 당부한 것이 아니겠느냐?


은총 생활, 일치와 순종, 무질서의 종결, 타협에 빠져들지 않고 마귀와 악과 싸우는 것, 이런 것이야말로 위 아래 할 것 없이 철저히 심화해야 할 중대한 주제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직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두려움, 수치심, 사람들의 평판, 안락한 생활에 대한 집착..... 그런 것 때문이 아니겠느냐?

회개하여라! 회개하여라! 이 당부 때문에 겁먹거나 눈쌀을 찌푸려선 안된다. 너희를 무척 사랑하는 나와 내 어머니께서 너희 곁에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너희 영혼과 너희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는 일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29일)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교만에서 나올 부정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마음쓰지 말아라. 그런 판단은 비누거품처럼 곧 사라질 것이다.

(1976년 6월 8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이중적인 농간


본질에서 벗어난 조직들이 있어서 가난한 이들에게서 갈취한 재물을 횡령하고 있다. 그것은 대규모의 사업 전체를 정지시키는 마비를 초래한다. 적어도 오늘날과 같은 구조로 조직화된 사업은 더 이상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항상 진리가 사랑의 본질 요소라고 네게 말해 왔거니와, 현행의 사목 구조들이 실패한 원인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온갖 종류의 한심한 문제점들을 드러내어 강조하고자 하는 취향 때문이 아니다. 다만, 사탄이 교회 안팎에서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설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모든 문제들 속에서 사탄의 이중적인 농간을 간파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교회 외부에서 사탄의 화신인 공산주의 및 프리메이슨의 자본주의와 같은 사탄의 도구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소경과 다를 바 없다. 사실, 부르조아 계급 자체도 세계적인 조직의 유대로 강력해진 프리메이슨의 급진주의적 특성을 역력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교회를 붕괴시키려고 쉴새없이 기를 쓰는 사탄의 무기이니, 사람들은 사탄이 그러한 체제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터이다.


교회 내부에서 사탄은 일찍이 이토록 일반화된 적이 없었을 만큼 극심한 신앙 위기를 성직자들 가운데 야기하고 있다. 결과는 분명하다. 사탄은 전부거나 거의가 사탄의 종인 현대의 공업기술, 곧 진보를 이용하고, 그와 한패인 세상을, 그리고 너희의 격정들을 이용한다. 정신적인 탐욕, 다시 말해서 너희 시대 교회 안의 중대한 죄인 교만 및 육체적인 사욕이 공동선을 위해 부름받은 지체인 사제들과 봉헌한 영혼들을 대거 그리스도의 몸에서 떼어 놓았다. 이 음흉한 계략은 하느님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웠고 가장 강력했으며 아직도 힘이 있는 사탄에게 어울리는 짓이며, 교회와 온 인류 공동체 속에 작용하는 엄청난 양의 악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나태의 죄


너희 하느님인 내가, 이 가공할 원수 앞에서, 무한한 겸손으로 사람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온전히 산 제물로 바친 것은, 그에게서 너희를 해방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내가 제시하게 된 너희의 구원 조건은, 너희가 '구원의 신비'에 긴밀히 참여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나는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자유롭게 참여하기를 원한다. 허다한 신자들이 지니고 있는 그릇된 그리스도교관에 따라 수동적인 동의만 하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렇듯 잘못된 관념 속에는 숱한 그리스도인들의 무기력한 의지결핍증에서 오는 극심한 공허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병이 너무 깊어서 치유되기를 두려워할 정도이니 말이다.


신적인 일에 대한 이 무의욕, 초자연 생명에 대한 이 의욕 감퇴가 나태의 죄를 이룬다. 생명에 감동하고 빛과 진리를 갈망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길 잃고 헤매며 죽어가는 사람들과 유사한 상태가 되고 말았으니, 자기 탓으로 혹은 남의 탓으로 그렇게 힘이 없고 기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어둠의 지배자'는 교회를 중독시키면서 교회의 많은 구성원들에게서 초자연적인 생명력을 앗아가는 한편, 그 자신의 힘을 강력히 유지한다. 이는 증오를 품고 있는 힘인데, 얼마나 엄청난 증오인지 그것이 폭발할 때면 그 심각한 정도나 규모에 있어서 인류가 일찍이 겪은 적이 없는 일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 하겠느냐? 우선, 원수에게 문을 열어 준 자들, 원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는 자들, 원수가 교회에 손상을 입히는 것을 허용한 자들이다. 또한, 오늘도 자기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자들, 자기의 힘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힘도 낭비하는 자들, 용기를 가지고 자인해야 할 매우 중대한 상황을 결코 개선할 줄 모르는 자들이다. 끝으로, 관료적인 체제와 그 기이한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바른 길을, 즉 죽어 가는 내 교회에 산소를 돌려줄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아들아, 교회가 이처럼 임종에 처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면 어찌나 힘차게 후진(後進)하는지, 누구에게나 유익한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될 정도로, 그들이 악의 세력으로 하여금 내 '신비체'를 속박하게 했으니 말이다.


교회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내 교회는 하느님의 용감한 자녀들, 늘 깨어 경계하며 활약하는 대담하고 용감한 군사들의 거대한 군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소수의 정예 부대가 아니라 모두가 열정으로 불타는 군대 말이다. 누구든지 영적으로 무장하고 갑옷을 갖춰 입으면 무적의 강력한 군사들이 될 터이니, 그렇게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내가 얻어 주었기 때문이다.


내 교회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나는 고통 속에 있는 교회를 쇄신하리니, 이는 내가 고통 속에서, 치욕과 피 속에서 '구원의 신비'를 완성한 것과 같다. 교회의 '머리'인 내가 피를 쏟았으니 내 '신비체'도 피를 쏟으리라. 그리하여 서기 2000년 이후에는 온전히 새로워진 교회가 모습을 드러내어, 뭇 민족들의 의붓어머니가 아니라 친어머니로서 번성하게 될 것이다.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교만에서 나올 부정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마음쓰지 말아라. 그런 판단은 비누거품처럼 곧 사라질 것이다.

(1976년 6월 8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하느님 앞에 있다는 것의 의미


아들아, 이렇게 써라 :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너는 나 외의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출애 20,1-2 참조 - 역주)

또 써라 :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주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신명 6,5 - 역주) 너희는 날마다 들리는 종소리를 듣는데 익숙해져 있다. 모두가 듣기는 하지만 특별히 존중해서 듣는 이가 거의 없는 종소리처럼, 계명들도 사문화(死文化)된 상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는 너희 마음 안에 살아 있어야 한다.


내가 이런 말로 이 메시지를 시작한 것은, 너로 하여금 사람들이 기도를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점을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런 이들마저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니 말이다.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매우 적은 것은 첫째 계명을 몰라서 기도할 수 없기 때문이거나, 더욱 나쁘게도 첫째 계명을 알면서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하느님 앞에 있다는 것은 훌륭하고 효과적인 기도를 위해 꼭 필요한 일련의 영적 활동을 수행함을 뜻한다. 우선 하느님께 이르기까지 영혼을 들어 올리는 믿음의 행위가 있어야 하니,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영적으로 만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 믿음의 행위 다음으로, 하느님과 만남을 심화시키는 겸손과 신뢰와 사랑의 행위가 이어져야 한다. 이 행위는 기도를 제대로 바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니, 하느님께서 역겨워하시는, 순전히 기계적인 기도를 하지 않도록 해 주기도 한다. 나는 마음이 아니라 입술로만 나를 공경하는 사람들에게는 고개를 돌리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기도하는 소수의 사람들 중에도 단지 기계적인 기도만 하면서 의무를 다했다고 우쭐해 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는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차원


내가 방금 설명한 바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생활에 얼마나 중대한 결함이 있는지를 너는 알 것이다. 지적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지만, 지금으로서는 다음 한 가지 점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

"마음을 다하여 네 주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생활 전반에 걸쳐 가장 높은 곳에 모시는 사람은, 건강이나 재산이나 영예 같은 물질적 성공만을 청하는 이기적이고 교만한 내용의 기도를 하느님께 올릴 위험이 없다.

단지 그런 것들만을 청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물질적인 것에 마음이 쏠려 있고 세속적인 재물만을 목말라하는 영혼들에게는 들어가지 않으신다. 그러한 영혼들은 어둠에 싸여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과 사랑을 추구하면서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차원에 위치한다.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가장 큰 영광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 나라가 사람들의 영혼 속에 오시기를 기도한다.

만일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에 충실하지 않으시다면 하느님이 아닐 것이다 : "청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고....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루가 11,9 - 역주)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너는 나 외의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고 한 첫째 계명과 일치해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 이의 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근본적인 계명, 곧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도들과 너희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려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기도를 가르쳤는데(마태 6,9-13 참조), 사람들은 그것을 잊어 버렸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느님 앞에 있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잊고, 홀로 위대하시고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선하신 아버지 하느님께 영혼을 들어올리는 사람이다.


기도의 스승들


내 성직자들은 지칠 줄 모르는 스승이 되어 신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 좋은 엄마는,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싫증내는 법 없이 삶에 유익한 것을 가르치는 엄마이다. 그런데 내 성직자들은 세례 성사를 통해 영혼들 안에 하느님의 생명을 낳아 주는 사람들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너희의 보살핌에 맡겨진 신자들에 대해서 진정한 영적 부성을 실천하며 살고 있지 않으니, 대체 무엇이 너희로 하여금 이토록 중요한 의무를 소홀히 하게 하느냐? 너희가 살펴볼 용기가 있다면, 너희의 영적 자녀들에게 부성애를 발휘하지 않은 데서 오는 불행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의로우신 재판관이신 하느님 앞에서는 너희가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너희의 이 일은 무한히 고귀한 가치를 지닌 수없이 많은 영혼들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아들들아,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신앙 위기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고 그 원인들 중 어떤 것들은 너희의 뜻과는 상관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원인들은 너희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너희가 회개하지도 속죄하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또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 줄곧 너희 자신을 섬기기만 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내 자녀들과 사제들아, 너희에게는 별로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너희의 영원한 삶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 자신이다.

아들아, 지치지 않고 네게 당부하는 것이니, 기도하고 보속하여라.

(1976년 2월 5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오늘날에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


하느님의 외아들이고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천주인 나 예수는, 공생활 삼 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내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 밀알은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참조 - 역주).

그러나 모호한 데라곤 조금도 없는 이 말을, 제자들도 사도들도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끔찍한 '수난'과 '죽음'의 필요성을 한 번도 확신한 적이 없었다. 그 일에 대해서 내가 몇 번이나 분명히 표현했는데도 말이다.


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내 사랑의 계획 - 이는 겸손과 가난, 순종과 고통, 끊임없는 기도로 시작된 계획이었다 - 을 실현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들은 무서운 어둠의 때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교회가 태어나도록 준비하고 있었건만 유다 백성의 유력자들에게서 오는 박해를 받아야 했고, 내가 각별히 사랑하는 이들의 이해도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사람이 된 하느님으로서 내가 행한 기적들을 보고서도 믿지 않았으니, 내 수난과 죽음의 어두운 때가 오자, 맹목적인 집요함으로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리면서 재차 반항했던 것이다.


오직 한 사람만이 세상에 임박한 어둠의 때가 불가피한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으니, 다름아닌 내 어머니이셨다. 어머니의 티없으신 마음은 내 수난과 죽음을 보면서 평생토록 꿰뚫려 있었던 것이다.


아들아, 그 때나 오늘날이나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타락한 세대에 있을 뿐이다. 사탄이 지은 죄와 같은 죄인 교만으로 하느님을 거부하고, 회개하지도 내 말을 믿지도 않는 세대이니 말이다.

내 어머니께서 루르드와 파티마와 다른 여러 곳에서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다. 내가 말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이천 년 전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었으니, 다시 살아나서 활기있고 생생한 싹을 틔우려는 것이었다. 새로 태어날 '교회의 우두머리'가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며 죽은 것이다. 그 때에는 하느님의 정의를 거슬러 헤아릴 수 없도록 많이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우두머리가 그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쳐야 했던 것이다.

내 교회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처럼 무신론이라는 악마적 세력에 휩쓸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오늘날에는 이 ‘신비체’ 전체가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한다. 그래야 새롭고 풍성한 하느님의 생명에 다시 태어나게 되고, 바로 내 ‘정의’와 ‘자비’의 돌이킬 수 없는 요구에 화답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너희가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오지 못한다. 내 ‘구속의 신비’는 무한한 ‘자비’와 ‘정의’의 행위인 것이다.


지금도 진행 중인 구속의 신비


구속의 신비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므로, 내 자비는 너희의 구원을 요구하고 내 정의는 너희가 진 빚의 청산을 요구한다. 살아있는 내 지체들인 너희는 자유와 지성을 가지고 있고 선과 악을 원하거나 거부할 능력이 있으므로 너희 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아, 그렇다고 걱정하지는 말아라. 나의 자비는 내적이고 외적인 부름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니 말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을 일이고, 주제넘은 교만 때문에 분별없는 고집불통이 되어 사탄과 함께 멸망하기를 원하는 자는 멸망할 수 밖에 없다!

오, 무분별과 고집불통이여!

오, 믿음이 없는 사악한 세대여! 너희에게 임박한 어둠의 때, 죽음과 피의 때를 면하게 해 주기 위해서, 내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준 것보다 더한 무엇을 줄 수 있었겠느냐? 나의 ‘사랑’, 창에 찔려 벌어진 ‘심장’, 내 어머니요 너희 어머니이기도 하신 분의 사랑까지 주지 않았더냐?

내 어머니께서 거듭거듭 세상에 오신 것은, 너희의 무감각을 흔들어 깨우고, 너희에게 신앙의 위대한 실재들을 되새기게 하며, 너희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시려는 것이었건만!


내 교회를 치유하리라


나는 뭇 민족과 나라들을 치유할 것이며, 내 교회도 치유할 작정이다.

이것은 사탄의 교만으로 눈이 멀어 빛이 아니라 어둠이 되어 버린, 여러 신학자들의 활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몰지각한 교설로 혼란과 방향 상실을 가중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한 존재이다. 그래서 내게서 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단순하다. 반면에 신학자들 중에는 복잡한 자들이 많다. 나는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업신여기며 물리친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들은 성전의 율법학자들처럼 그들에게서 오지 않은 것은 결코 진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진리 편에 있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네게 강복한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네가 가진 것과 함께 내게 주고, 네 고통도 다오. 내 자비로운 성심으로 그 고통을 감싸서, 은총의 비가 되어 네게 돌아가게 해 줄 테니까.

(1975년 12월 8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주님, 살려 주십시오!"

 

 아들아, 사람이 영예와 존경, 재산과 건강, 행운과 재능과 교양을 다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이 결국 망해버리고 만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루가 9,25 참조 - 역주)

착한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근본적인 영적 쇄신, 곧 회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권고를 진지하게 숙고하면 영웅적인 덕행을 쟁취할 수 있고, 완덕과 성화를 실현할 수 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진지하게 묵상했기 때문에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한 보물(마태 14,44 - 역주)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거짓 행복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단호히 이탈함으로써 죄를 끊어버리고, 갈바리아의 길을 따라 나를 따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의 시들지 않는 월계관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아들아, 죄 상태에 있는 영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돌과 같다. 중력의 자연 법칙에 의하여 낙하할수록 죄의 격정의 무게가 더 커지는 것이다.

어떤 자연 법칙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돌의 운동을 정지시키거나 역행시킬 수 있겠느냐?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연 법칙이란 없다. 더 높은 차원의 법칙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홀로 나만이 초자연적인 법칙, 곧 하느님의 '힘'이니, 멸망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죄인을 멈추게 할 수 있고, 그 추락을 '생명'을 향한 상승 운동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죄인들에게 가장 간절히 해 주고 싶은 일이다. 모든 죄인들, 특히 정신과 관능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악마에게 끌려가는 사제들에게!

그런 도움을 얻으려면, 십자가에 못박힌 나를 보고, 내 자비로운 성심을 부르며, 베드로를 본받아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 "주님, 살려주십시오! 빠져 죽겠습니다!"(마태 14,30 참조 - 역주)

오, 아들아, 그러면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고 얼마나 재빨리 손을 내밀겠느냐!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많은 사제들이 영벌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너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느냐?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소름끼치는 비극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우리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지옥이란 없으며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므로 사람에게 영벌을 허락하실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속임수를 퍼뜨렸으니, 이 보다 더 악마적인 속임수가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한 사설(邪說)을 입밖에 내는 자들은 하느님의 '정의'를 삭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게는 '자비'와 '정의'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들아, 나는 세상에 온 빛이다. 빛이 어둠 속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어둠은 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3.9-10 참조 - 역주).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내가 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너희가 필요하다. 너희의 협력이 필요하다.

너희는 나의 지체들이고, 모든 지체는 단 하나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내게 너희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본받아, 또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와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본받아, 너희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너희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내가 그 무게를 덜어 주려고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아들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정의와 사랑의 의무이니 아무도 면할 수 없고, 하물며 내 성직자인 너희는 더욱 면할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인도한다. 뒷걸음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라! 네게 반감을 가진 저 사람들은 내 '복음'을 거부하고 내 '진리'를 왜곡한 자들이니,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이 전하는 말에 내 은총의 도장을 찍었건만, 그들은 무엇이든지 모조리 배척해 온 것이다.

예컨데, 나는 제물이 된 영혼인 마리아 발토르타(1897년 이탈리아 카세르타에서 출생. 1961년 선종 - 역주)로 하여금 내 말을 받아쓰게 하여 놀라운 저서가 되도록 하였다(전부 열권인 이 책은 본서를 낸 스위스 Parvis출판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원주). 이 작품의 저자는 물론 나다. 그러자, 네가 알다시피, 사탄이 길길이 뛰며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너는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이 책에 반감을 표하며 배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묵상한다면 수많은 영혼들이 엄청난 선익을 얻게 되련마는! 그만큼 이 책은 진실하고 견실한 영적 양식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워진 교회 안에서라야 큰 성공을 거두기로 되어 있는 책이다. 현재는 사람들이 숱하게 발간되는 거만한 신학자들의 쓰레기 같은 책이나 잡지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듯이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19일)

*~*~*~*~*~*~*~*~*~*~*~*~*~*~*~*~*~*

 

하느님,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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