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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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양주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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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20-10-31 ㅣ No.141790

 

루가 14, 1. 7-11(연중 30주 토)

 

우리는 각자 “자리” 혹은 “위치”를 차지하고 살아갑니다. 또한 그 “자리”에 따른 역할과 사명을 부여받아 살아갑니다. 이는 때로는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와 빈부귀천을 형성하고 우월감과 열등감을 건네주기도 하고, 이에 따른 열망은 출세와 입신양명의 성공 페러다임을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받은 이들이 서로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시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누가 너를 혼인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루카 14,8-10)

 

이 비유 속에서 초대받은 사람의 관심은 온통 “자리”와 타인의 “대우”에 쏠려 있습니다. 혼인잔치의 기쁨보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윗자리’에만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초대 해준 사람의 호의에 대한 감사보다, 자신에게 대해주는 “대우”에만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잔치에 초대받은 이에게 중요한 것은 ‘자리’가 아니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요, 자신에 대한 ‘대우’가 아니라 초대해주신 분의 호의에 감사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관심이 쏠려 있는가?

자리와 대우인가? 아니면 호의에 대한 감사와 기쁨인가?

 

혹 초대해주신 하느님의 호의와 자비에 대해 감사드리며 기뻐하면서도, 여전히 자리와 역할과 대우에 시선이 쏠려 있지는 않는지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여질 것입니다.”(루카 14,11)

그렇습니다. 사람의 ‘높고 낮음’이 자신의 욕심이나 자기추구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초대하신 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의 종결어미는 ‘낮아지고’ 혹은 ‘높아질 것이다’는 수동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곧 높낮이는 자신이 정하거나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배정되는 것이며 주어지는 것이요 부여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초대한 혼인잔치에는 말씀과 성찬의 밥상이 너끈하게 차려져 있습니다. 이 밥상은 윗자리에나, 맨 끝자리에나, 그 어느 자리에나, 모두 풍성합니다. 그렇습니다. 잔치에 초대받은 것만으로 이미 행복입니다. 참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초대하신 분의 기쁨을 함께 나눌 줄 알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이 밥상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명하시어 차려놓으신 밥상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으로 밥상을 차리셨듯이, 우리 역시 자신을 내놓아 온 몸을 낮추어 형제들의 밥이 되는 자리에 머물러야 할 일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누가 너를 혼인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루카 14,8)

 

주님!

잔치에는 상이 너끈하게 차려져 있고,

기쁨은 어느 자리에나 차고 넘칩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게 하소서.

감사할 줄을 알게 하소서.

초대받은 것만으로도 이미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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