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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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목요일 제2독서 (요한묵시1,5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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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0-04-09 ㅣ No.137418

 

 

 

성주간 목요일 제2독서 (요한묵시1,5 - 8)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아멘." (6)

 

6절 역시 5절에 이어 계속되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찬양과 영광송으로써 본절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 하느님을 위하여우리를 한 나라로 이루어 사제로 삼으셨다는 것이다이것은 5절에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한 구속 사업의 두가지 결과를 언급한 것이다.

 

이것 역시 탈출기 19장 5절과 6절 곧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이것이 네가 이스라엘인들에게 알려 줄 말이다라는 문구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인다.

 

베드로 사도 역시 이것을 인용하여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1베드2,9)고 언급한 적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구속 사업은 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던 사탄의 세력을 굴복시킴으로써 집합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 구성된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담이 범죄한 후 단절되었던 하느님과의 관계를 대속적 죽음으로 회복시킴으로 인하여 개별적으로는 성도 개개인을 직접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하느님의 사제(히에레이스; hiereis)로 만들었다.

 

전자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적 지위를 부각시킨다면후자는 거룩하신 하느님께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직접적 접근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내용은 묵시록의 결론 부분에서 결정적으로 반복 선포된다.

 

"보라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묵시21,3)

"민족들이 그 도성의 빛을 받아 걸어 다니고땅의 임금들이 자기들의 보화를 그 도성으로 가져갈 것입니다"(묵시21,24).

 

한편 이러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만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위하는 일이었다이런 사실은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위하여이란 표현에 잘 드러나고 있다.

즉 이것은 성부 하느님께서 세우신 인류 구원 사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이었던 것이다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업이 오로지 성부 하느님을 위한 일이었음은 본문 뿐 아니라 요한 복음에서도 누차 강조되고 있다(요한6,38-40; 8,42 ;10,37.38 ;17,4).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이 그를 믿는 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나라가 되고 또한 개별적으로는 영적 사제가 되게 하는 귀한 결과를 가져왔다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사건 앞에서 요한 사도가 이것을 가능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비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여기서 '영광'으로 번역된 '독사'(doxa)는 본래 '영예'나 '명성'을 뜻하며하느님과 관련해서 사용될 때에는 '신성으로 거룩하심','존귀나 위엄','권능등을 뜻한다그러나 원초적으로는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즉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은 영광스럽게 하는 대상을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위하여우리를 나라와 사제로 삼으셨다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바로 그러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신다(요한17,5).

하느님의 실체를 드러내 보이신 분이요하느님의 유일한 진리를 인간에게 전달하신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하셨으므로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께 세세토록 영원한 영광을 돌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한편여기서 '권능'으로 번역된 '크라토스'(kratos)는 일반적으로 '신적 권세나 '통치권'을 의미한다여기서 언급된 '크라토스'는 '적에 대한 승리또는 '법이나 규칙에 의한 통치'를 뜻할 때 주로 사용된다이 표현으로부터 오늘날 '민주정치'를 뜻하는 '데모크라시'(Democracy)나 '전제정치'를 뜻하는 '오토크라시'(Autocracy)등의 '크라시'란 단어가 파생되었다.

 

이러한 권세와 능력은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마지막 통치를 연상시키는데요한 사도는 묵시록의 머리말인 1장 5, 6절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승리적 통치를 언급한다이것은 총체적인 악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통치 역시 묵시록의 뚜렷한 주제가 될 것임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며동시에 묵시록의 앞으로의 전개 방향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보십시오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아멘." (7)

 

'보십시오'(이두;idu)라는 감탄사를 필두로 시작되는 본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재림을 묘사하고 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리라는 기대는 이미 공관복음에서도 공통적으로 나온다 (마르코13,26; 14,62; 마태24,30; 26,64; 루카21,27). 그래서 혹자는 이러한 진술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종말론적인 후렴구로 간주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절은 다니엘의 환시와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다니엘 7장 13절에는 "사람의 아들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나타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이나 히브리 사상에서 '구름'(톤 네펠론; ton nephelon)은 주로 '하느님의 임재와 현현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탈출13,21;16,10; 마태17,5 ; 사도1,9).

따라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는 언급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신적 임재와 현현을 나타내는데 부족함이 없는 진술이다.

 

특히 여기서 '오십니다'로 번역된 '에르케타이'(erchetai)는 본래 '오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에르코마이'(erchomai)의 직설법 현재형이지만여기서는 미래적 현재형으로 사용되어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과 임박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묵시3,11; 22,7 ; 12,20).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재림의 성격이 그의 강생과는 대조적으로 공개적일 것임을 드러낸다따라서 눈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재림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될 것이며그분을 '찌른 자들'도 그분의 재림을 볼 것이다.

여기서 '찌른'으로 번역된 '엑세켄테산'(eksekentesan)은 '분리'나 '이탈'의 의미를 나타내는 '에크'(ek)와 그 자체로 이미 '찌르다', '꿰뚫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켄테오'(kenteo)의 합성어인 '엑켄테오'(ekkenteo)의 부정 과거형이다.

 

그런데 이 표현은 신약 성경에서 본문과 즈카르야서 12장 10절을 인용한 요한 복음 19장 37절에서만 등장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요한19,37).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찌른 로마 병사는 한 명이었지만그분을 찌른 자들이 복수형으로 나온 것은그 배후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의 정치 권력의 야합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당시나 모든 세대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증거를 '적대적으로 대한 모든 이들'을 아울러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에게는 그의 재림이 그 자체로 축복이지만그것을 적대적으로 대한 모든 이들에게 있어 그의 재림은 그 자체로 심판이 될 것이다.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아멘.'

 

즈카르야서 12장 10절에서 "그리하여 그들은 나를곧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외아들을 잃고 곡하듯이 그를 위하여 곡하고맏아들을 잃고 슬피 울듯이그를 위하여 슬피 울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본문은 이러한 사상을 계승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슴을 칠 것이다로 번역된 '콥손타이'(kopsontai)는 문자적으로 '자르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콥토'(kopto)의 미래 중간태로 '자기 자신을 자른다'는 의미를 나타낸다이것은 묵시록에서 바빌론으로 상징된 로마의 패망과 관련되어 언급된 바 있다(묵시18,9).

 

그런데 즈카르야서 12장 12-14절을 감안하면묵시록 19장 9절이하는 '바빌론 왕들의 비통함'을 표현하고 있으며여기서는 ''(게스; ges)이라는 표현이 첨가되어그 애통함과 비통함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즉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영향이 '땅에 있는 모든 종족', 곧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으로 통칭되는 전 인류(묵시5,9 ;7,9 ;10,11 ;13,7 ;14,6 ;17,15) 에게 미칠 것이라는 계시가 아닐 수 없다.

 

이 놀라운 일은 진실로 반듯이 될 일이므로,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아멘.'(나이 아멘; nai amen) 이란 표현을 덧붙이는 요한 사도의 기록은 너무나 타당하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로 번역된 '나이'(nai)는 '아멘'과 동일한 의미로서, '나이'가 희랍식의 긍정을 의미한다면, '아멘'(amen)은 히브리식의 긍정을 뜻한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8)

 

하느님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로 소개한다. '알파와 오메가'는 희랍어 알파벳의 처음과 끝글자를 뜻하므로의미상 '처음과 마지막그리고 '시작과 끝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또한 희랍 철학의 전통을 감안할 때,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은 '지극히 높으신 신의 영원성'을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본절에서 선포된 하느님의 자기 칭호인 '알파와 오메가'는 묵시록 전체의 구조와 관련해서 매우 독특한 중요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은그 자체로 하느님께서 만물의 창조주로서모든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또한 만물을 종말론적인 성취로 이끄실 분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하느님의 신적 자기 선포가 묵시록에서 단지 두 차례만 등장하고 있다.

첫번째는 요한 사도가 환시를 보기 전인 묵시록 1장 8절에서 등장하고두번째는 하느님의 피조 세계 전체에 대한 종말론적인 성취가 '다 이루어졌다라고 선포한 바로 그 시점에서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라고 언급된다(묵시21,6).

 

말하자면요한 사도는 자신의 저술에 교차 대구법적인 구조를 사용하며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느님의 면모를 매우 정교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는 창조의 시작으로 '알파'이시며새 창조(구원)의 완성으로 '오메가'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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