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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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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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9-12-11 ㅣ No.134493

신문사를 찾아온 자매님과 이야길 나누었습니다. 36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합니다. 눈에 염증이 생겼는데 치료를 제때 하지 못해서 한쪽 눈이 실명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답답했다고 합니다. 의사를 원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가족들에게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고 합니다. 본당에 피정이 있어서 참석했고, 강의를 들었다고 합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으니 옆을 볼 수 있었고, 뒤를 돌아볼 수 있었고, 하느님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은 시간 성지순례를 다니고,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어려운 이를 위해서 써 달라고 감사헌금도 주고 가셨습니다. 비록 한쪽 눈은 실명되었지만,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읽은 글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넘어지게 한 돌부리를 발로 차고, 화를 낸다고 합니다. 돌부리를 발로 차니 더 아프고, 화를 내니 부주의했던 자신이 한심해 보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넘어지게 한 돌부리를 파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합니다. 길을 평평하게 만들어 다른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돌을 치우니 운동도 되고, 다른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했으니 보람이 있습니다. 같은 상황이지만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서 결과는 다르게 됩니다. 저도 크게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28년 전입니다. 유행성 출혈열로 중환자실에 보름간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치료가 있었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기도해 주셨고, 어머니께서 곁에 있었습니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남은 시간 하느님께서 덤으로 주셨다고 생각하니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으로 난민이 생기고 있습니다. 가난과 질병으로 피어나지 못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파괴로 더불어 살아야 할 생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철책과 장벽으로 가로막혀 형제들이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있습니다. 욕망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갈증이 나기 마련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건 시기와 질투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건 시기와 질투 때문입니다. 교만과 열등감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교만은 타인의 소중함을 보지 않습니다. 열등감은 자신의 소중함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하늘나라에서는 세상에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었어도, 아무리 특출한 능력을 지녔어도, 아무리 멋진 외모를 지녔어도 그것이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저의 외모와 능력에 대해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보다 키가 좀 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고, 참을성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고, 힘도 더 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지금 저의 모습으로 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 저의 모습은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저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북미주에는 120여 개의 한인 공동체가 있습니다. 공동체를 생각하는 기준을 보면 외형적인 크기나 숫자를 사용하곤 합니다. 땅은 얼마나 큰가, 성당은 또 얼마나 큰가, 신자 수는 몇 명인가, 보좌 신부님은 있는가, 수녀님은 있는가! 또 나누는 기준이 있습니다. 단체들은 다 있는가, 헌금은 얼마나 나오는가! 사실 이런 것은 하늘나라에서는 그렇게 큰 기준의 근거는 아닐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살면서, 천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면서, 우리는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잣대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적인 모습, 숫자, 성공 등으로 판단을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판단해야 하는 기준은 세상의 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그것은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봉사했는지, 얼마나 겸손했는지, 얼마나 나누었는지를 가지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생각을 바꾸고 마음의 문을 열면 됩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뀝니다. 우리는 그걸 회개라고 부릅니다. 마음의 문을 열면 하느님께서 함께하십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걸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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