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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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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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12-08 ㅣ No.134402

 


2019년 12월 8일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제1독서 이사 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제2독서 로마 15.4-9

형제 여러분, 4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5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6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8 나는 단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 받은 이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조상들이 받은

약속을 확인하시고,

 9 다른 민족들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칩니다.”

복음 마태 3,1-12

1 그 무렵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중학생 때, 라디오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최신 노래부터 옛날 노래까지 끊임없이

나오는 음악도 좋았지만, 중간중간

소개되는 청취자 사연에 귀 기울이며

 들었습니다. 분명히 남 이야기인데도

 큰 공감을 하게 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너무나 재미있어서

큰 소리로 웃을 수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내 이야기가 라디오

스피커로 흘러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사연을 적었습니다.
“안녕하세요? DJ ***님.

저는 인천에 사는 중학교 2학년

조명연 이라고 합니다.”라고 시작하는

사연이었습니다. 결과는 몇 번을

다른 내용으로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소개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재주가 없던 저의 글을 소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 당시에는

나의 문제점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방송국 사람들의 안목이 부족한 것 아냐?’,

‘혹시 이 안에 어떤 비리가 있는 것 아냐?’,

‘혹시 내 사연 엽서를 누가 훔쳐 가는 것 아냐?’

등등 내 안의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단 한 번도 소개되지 못한 채,

남에 대한 원망만 가득 간직하면서

글 쓰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이런 식의 마음은 어른이 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마 자신 안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남의 문제만 들춰내게 될 것입니다.

내 책임이 아니라, 남 책임이라고 하면서

책임 전가만 할 것입니다. 그 결과

주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사랑의 삶이 아닌,

미움과 다툼의 삶을 만들지 않을까요?
예언자와 세례자는 표현은 다르지만

둘 다 같은 말을 합니다. 예언자는

그분께서 오신다며 “주님의 길을 닦아라”,

“길을 곧게 내어라”고 했습니다.

요한 역시 “주님의 길을 닦아라”와

같은 뜻인,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주님께서 오셨으니

길을 내고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주님의 길을 닦는 모습은

그의 옷과 음식에 볼 수 있습니다.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지요. 그리고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습니다. 자연인의

모습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태초의

 인류가 살았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지금 오고 있는

나라와 회개의 상징입니다.
대림시기, 즉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길을 닦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남 탓보다는

 스스로 회개하면서 지금 오고 있는

나라를 위한 준비에 매진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마음을 닦는다고 하지만,

사실 마음은 닦을 것이 없습니다.

실체가 없는 것을

닦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다만 쉴 수 있을 뿐입니다.

‘쉬는 것이 깨달음’인 것입니다.(원호)

어떤 감정도 다 사랑하세요.

몇 달 전에 나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8년도 우울증 진료환자

수는 78만 2037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100명당

1.5명에 해당합니다.

연간 우울증 환자 수가 최근 6년 사이

(2013~2018년) 1.27배가량 증가한

숫자라고 하는데, 이만큼 우울증 환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의 대표적인 특징은 기분이

축 처지고 어떤 것에도 흥미가 없는

상태가 2주 이상 지속한다고 하지요.

 불안·공허·절망·무기력에 시달리면서

좋아하던 일이나 취미생활에 의욕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힘들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우울증은 과거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공통점이

뇌 전두엽의 이상이라는 것을 밝혀져서

실제로 1960년대까지 전두엽의 한 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이 이루어졌습니다.
수술받은 사람들의 상태는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감정 없는

행동으로 사람들과 함께 살 수가

없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감정 없이 사는 것이 나을까요?

힘들더라도 감정을 간직하면서

사는 것이 나을까요?

자신에게 없어졌으면 하는

그 감정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심리학자는 약물치료와

함께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심리치료도 함께 한다고 합니다.
어떤 감정도 부정하지 말고 사랑해보세요.

(오늘은 인권주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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