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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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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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11-14 ㅣ No.133841

 

 1920년 11월 14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지혜 7,22ㄴ―8,1

22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23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24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5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29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30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8,1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복음 루카 17,20-25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한 번에 한 가지만

하지 않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를 하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를 같이 합니다.

이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순간이

운전할 때입니다. 전방을 주시하면서

운전해야지, 계기판도 봐야지,

 거울 3개(백미러, 사이드미러)를

봐야 합니다. 이것뿐이 아니지요.

핸들도 잘 잡고 있어야 하고,

여기에 동승자라도 있으면 그와

대화를 해야 합니다. 음악도 듣고

또 내비게이션에도

주목하고 있어야 합니다.
운전 하나를 하는데도 이렇게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때 내 뇌 깊숙이

숨어 있는 것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다른 차가

제 차 앞으로 끼어들어 사고가

날 뻔했다면 어떨까요?

평상시에 화를 내지 않는 사람도

화가 갑자기 튀어나옵니다.
누구에게나 숨겨져 있는 무엇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나쁜 것이라면 나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좋은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와서 큰 힘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중에서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은

 꼭꼭 숨겨져 있으면 안 됩니다.

내 마음 안을 환하게 비춰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 “보아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라는 말뜻이 이해됩니다.

 아마 이런 뜻이 아닐까요?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다시 일어나

다가오겠느냐고 그때를 묻지 마라.

오히려 너희가 그 나라에 합당한 자로

 인정되도록 애써라. 그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너의 의지에 달렸고,

너는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로움을 인정받고 온갖 덕행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이는 누구든지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이로 여겨질 것이다.”
주님 사랑이 가득한 내 마음이라면,

그래서 의로움과 평화, 기쁨이

가득하다면 분명히 하느님 나라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의 생명을 죽이는 불의와 분쟁,

침울함 속에 있는 사람은 어디에

사는 것이 될까요? 안타깝게도

악마의 나라 시민일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 살기를 원하십니까?

렇다면 먼저 내 마음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 미움과 불의가 가득한

악마의 나라를 만들어 악마와 힘들게

사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늘 강조하셨던

사랑만이 하느님 나라를

우리 가운데에 있게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If you think it, you can do it.

생각한다면 할 수 있다.

(디온 워웍)

(하느님 나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내가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사실 많은 이가 행복해야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사고가 필요합니다.

감사함은 슬픔과 상심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내가 감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감사할 일이 있어야

감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없을까요?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감사할 일은 가득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 사제 차동엽(노르베르토)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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