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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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죄를 끊는 고해성사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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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9-09-18 ㅣ No.132591

 

 

2019년 다해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죄를 끊는 고해성사 보는 법>

 

  복음: 루카 7,36-50


내림

LORENZETTI, Pietro 작, (1325)  

 

 

 

      한 아이가 학교에서 신발을 도둑맞았습니다. 신발을 훔쳐간 도둑 때문에 그 학급에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신발 도둑을 잡는 일은 아주 쉽습니다. 아이들은 순진해서 훔친 신발을 그냥 신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신발 검사 결과 신발을 훔친 아이는 금방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은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를 불렀습니다. 아마도 이 아이는 집안 살림이 넉넉한 아이였던 모양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신발을 그 아이에게 주면 안 되겠니? 너는 부자라서 신발이 여러 켤레 있잖아?”


      도둑질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선생님의 판단이 옳을까요, 옳지 않을까요? 이야기는 그냥 여기서 끝납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 아이가 다시 도둑질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일 때문에 창피를 당하고 벌을 받았다면 ‘다음번엔 들키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용서받아야 그 죄에서 벗어납니다. 용서받지 못했다고 믿는 것에서 다른 죄들이 이어집니다. 죄는 죄를 낳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에 대해 주님께서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믿었다면 서로에게 핑계를 대는 죄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가 멈추려면 완전히 용서받았다고 믿어야 합니다. 완전히 용서받으면 감사의 눈물로 보속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라야 더 큰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고해성사를 들을 때, 어떤 신자들은 “이건 이전에 했던 고백인데요, 계속 찜찜해서 ... ”라고 말하며 전에 했던 고백을 반복해서 합니다.

      이런 경우 이전에 고해성사를 할 때 죄를 용서받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용서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용서받았다는 확신이 들 때 비로소 용서받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도 용서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런 찜찜한 상태라면 계속 죄가 남아있어서 또 죄에 떨어지게 만듭니다. 고해성사 보고나서의 찜찜한 상태는 또 다른 죄를 지을 준비과정입니다. 세상의 모든 죄들은 각자가 씻어내지 못한 죄책감의 열매들입니다.


      그렇다면 완전히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마음으로 고해소에 들어가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한 죄인인 여자가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아줍니다. 예수님은 이 행위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해 주시는 비유말씀을 가만히 보면 죄의 용서는 예수님께서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실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행동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바리사이에게 이런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바리사이는 예수님을 초대해 놓고도 발 씻을 물도 주지 않고 예수님께 입 맞추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고 물 대신 향유와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이미 그 여자는 오백 데나리온을 탕감 받은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예수님께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시기 이전에 그 여인은 이미 죄를 용서받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감사의 표시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린 것입니다. 그러니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예수님의 확증을 듣지 않았더라도 그 여인은 죄를 용서받았음을 믿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의 용서는 고해소에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받아야합니다. 고해소에는 그저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증을 받으러 들어오는 것입니다. 고해소에 감사의 마음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보속을 해야 죄의 용서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해서 더 큰 보속이라도 하고 싶어져야합니다. 예수님께 무릎 꿇고 이미 용서받은 죄에 감사하여 눈물로 발을 씻어드리는 마음으로 고해를 보고 보속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자비를 믿어야합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의 여인과 같은 자세로 고해소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또 그런 마음으로 고해를 보아야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누가 감사한 마음으로 또 죄를 찾아 나설 수 있겠습니까? 바리사이와 같이 무언가를 해야 주님께 용서받는다는 마음이 아니라, 죄인인 여자와 같이 이미 용서받았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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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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