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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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0-09-27 ㅣ No.141053

미주가톨릭평화신문의 지면 중에 평화 책꽂이가 있습니다. 책을 소개하고 필자의 느낌과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한영국 선생님은 정채봉님의 초승달과 밤배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동안의 주로 외국 작가의 책을 소개하였는데 이번에는 한국 작가의 책을 소개한다고 하였습니다.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미주가톨릭신문 홈페이지 지면보기 913일자를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연좌제와 신분제의 사회를 살았습니다. 연좌제는 부모의 잘못, 특히 사상과 관련된 잘못이 있으면 자녀들 또한 영향을 받는 제도입니다.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 없고, 정보원에 의해서 감시를 받기도 했습니다.

 

초승달과 밤배에서 할머니는 손자와 손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사상범으로 몰려 죽었기 때문입니다. 손자와 손녀 역시 사상범의 가족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많은 사람이 연좌제로 인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저의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있었습니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지만 면접에서 떨어지곤 했습니다. 연좌제의 벽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인권이 신장되면서 연좌제는 더 이상 삶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이 가끔씩 큰 홍역을 치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Black Lives Matter'입니다. 지금 미국에 있는 흑인의 선조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Roots)'를 통해서 미국 흑인 노예들의 삶과 애환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세기 전만해도 대부분의 나라는 신분제의 사회였습니다. 한국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신분이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천민(賤民)’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사람이 그 신분에 따라서 등급이 매겨지는 사회였습니다.

 

신분이 다른 사람과는 사랑할 수도 없었고, 사랑한다고 해도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재능과 능력이 있어도 신분이 천하면 재능과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때로는 그 재능과 능력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피부색 때문에, 성별 때문에, 신분 때문에 차별 받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유엔 인권 선언문은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우리 모두는 이성과 양심을 가졌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자매의 정신으로 행해야 한다. 피부색, 성별, 종교, 언어, 국적, 갖고 있는 의견이나 신념 등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연좌제와 신분제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에 따라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인데 인류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가난의 문제입니다. 가난은 사상과 신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난은 물질과 재물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누면 해결 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가난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굶주려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치료받지 못해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이 없어서 거리에서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코로나19는 가난한 국가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라자로를 외면했던 부자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재물을 창고에 가득 쌓아 놓은 부자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후회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진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워 주었던 자캐오를 축복하시면서 오늘 이 집은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을 하늘에 쌓는 것은 가난한 이들과 재물을 나누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공동체가 기쁜 마음으로 가진 것을 서로 나누었다고 전해줍니다. 가난한 사람도, 굶주린 사람도, 과부도, 어린아이도 주님의 식탁에서 함께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욥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우리가 이 세상에 빈 몸으로 왔음을 안다면 재물과 돈에 그리 연연해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기쁘게 나눔으로서 하늘에 보화를 쌓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은 세상에서 재물을 많이 쌓은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선행을 많이 쌓은 사람입니다. 연좌제와 신분제의 벽을 허물었다면 가난한 이들의 아픔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소중한 생명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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