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화)
(백)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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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첸시오 신부의 여행묵상 26 - "빈센트 반 고호"를 만나다 下 (오베르쉬르우아즈/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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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윤 [payatas] 쪽지 캡슐

2020-06-30 ㅣ No.139181

 

"빈센트 반 고호"를 만나다


 

빈센트와 태오가 묻혀있는 공동 묘지를 나서면 

바로 앞에 빈센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인 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보통 까마귀가 죽음을 상징하기에 이 작품에 자신의 자살을 암시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 그림이 그의 마지막 작품도 아니고 

또 작품을 보면 밀밭의 밝은 노란색, 하늘의 짙은 파란색 그리고 날아다니는 까마귀의 검은색의 조화와 대비가 

죽음의 상징과는 너무나 다른 강렬한 생동감을 보여주기 때문에 

결코 죽음을 암시하는 그림이 아니라는 사람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내가 갔었을 때는 그림에서처럼 황금빛 밀밭이 아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작품의 명성과는 다르게 주변 풍경도 그렇고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보통의 밭이었다.

빈센트의 죽음이 자살이다 아니다로 말이 많듯 이 작품도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아니다로 말이 많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늘 보는 그 흔한 밀밭을 작품으로 재해석한 그의 예술적 감성이다.

어떻게 보면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같은 것을 보고 듣더라도 남들과는 다르게 (혹은 예민하게 혹은 호기심 가지고) 느낀다는데 있는 것 같고 

그것은 얼마만큼의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대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그것은 단지 예술이나 전문적인 직업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고 우리 일상에서 늘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은 발견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발견하고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에게서도 다른 사람은 발견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대부분 부정적인 것)를 발견한다

가끔은 그것이 눈에 콩깍지가 낀우리의 편견일 경우도 있겠지만 어쨌든 관심이 가져오는 결과이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만큼 빈센트가 오베르에서 작업한 작품중 유명한 것이 오베르 성당이다.

빈센트는 상당히 종교적인 사람으로 그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목사였고 그도 한때 목사가 되려고 했다

그가 목사가 되려고 했던 이유가 단순히 그런 그의 집안 분위기 때문이라면 

좀더 일찍부터 목사가 되는 공부나 훈련(?)을 했겠지만 그가 목사가 되려고 결심한 것은 

한창 사회생활을 하던 중 런던에서 본 가난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이후로 

목사로서 소외 받는 이들에게 봉사하고자 했던 이유가 가장 컸고 

그 만큼 부조리한 사회에서 올바른 종교의 역할에 희망을 가졌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신학교를 다니고 또 전도사로서 생활하면서 종교계도 부조리한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고 

그래서 결국 종교를 떠나 화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렇게 진작에 종교에 대한 희망을 접었던 그가 성당을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그는 개신교 신자였고 또한 성당을 종교적 의미 보다는 단순히 그림의 소재로써 그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을 그릴 때는 뒤보다는 앞이나 옆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건만 

오베르 성당이 뒤에서 보는게 유별나게 더 아름다운 성당도 아닌데 굳이 뒤를 그린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왜 한 사람이 성당을 향에 나 있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또한 그가 오베르에서 작업한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바로 이것인데 왜 그는 그렇게 큰 캔버스를 선택했을까?

모든 예술 작품에는 작가의 의도가 있다 (“의도가 없다”라는 것 조차도 의도이다

어떤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확실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정확히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고 

그럴 때는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보는 사람들 (듣는 사람, 읽은 사람)의 나름의 해석이 들어가게 된다.

그가 생각하는 신은 화려한 정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 보려고 하지 않는 그늘 진 뒷면에 존재 했던 것은 아닐까? 진작에 종교를 떠났음에도 그가 처음 종교에 가졌던 희망을 놓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래도 부조리한 사회와는 다른, 혹은 언제 가는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마지막 기대까지 접을 수는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이 그의 의도 와는 상관없이 오베르 성당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이다.

 

 

 

 

 

 

 

기차를 타고 다시 파리의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오베르 쉬르 우아주”는 빈센트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오랫동안 머물며 작업을 했을 만큼 

평화롭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막 봄이 시작해서 이른 봄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 했지만 여전히 나무들의 가지가 앙상했고 

주위의 빛깔들도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데다 날씨까지 흐리고 을씨년스러워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빈센트에 대한 이미지와 그가 마지막 살았던 마을이라는 이미지가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이 행복했느냐 아니냐는 결코 제3자가 평가 할 문제는 아니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나는 빈센트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삶이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렇게 열심히 작업에 몰두할 수가 없었을테니까.

 

신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평생 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

가난한 사람을 떠났지만 평생 그들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던 사람

사는 동안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사람 

그리고 화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깨끗한 양심과 순수한 영혼을 가졌던 사람.

그래서 닮고 싶은 사람. 

내 마음속의 빈센트 반 고호는 그런 사람이다.

 

 

- 10, 20, 30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빈센트 공원의 빈센트 상  

 

 

 

 

 

  

이른 봄꽃들이 피어있었지만 우울했던 오베르의 풍경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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