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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7. 모세의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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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선 [lbs] 쪽지 캡슐

2020-06-24 ㅣ No.139081


“가장 큰 죄인이라도 단죄하지 말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사람들에게서 결점이 보이거나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17일 교황청 사도궁 도서관에서 생중계된 수요 일반알현을 통해 이 같이 힘주어 권고했다. 교황은 지난 주 야곱의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에 이어 오늘은 모세의 기도에 대해 설명했다. 교황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목걸이들을 거푸집에 부어 금송아지 상을 만들었던 이야기를 설명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7. 모세의 기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기도에 대한 우리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이 “말로만” 기도하는 사람들과 관련되기를 좋아하지 않으셨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모세 역시 부르심을 받은 첫날부터 말솜씨가 없는 “입과 혀가 무딘” 대화 상대자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그는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실패자”였습니다. 탈출기는 그를 미디안 땅으로 도망간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자기 동포들을 향한 동정심을 느꼈고 억압받는 자들 편에 섰지만, 이내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손에선 폭력 말고는 정의가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기서 그의 영광스러운 꿈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이제 모세는 더 이상 빠르게 승승장구하는 유망한 관리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를 포착해 모험하는 사람, 자신의 소유도 아닌 양떼를 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미디안 사막의 침묵 속에서, 하느님은 불타는 떨기 속에 나타나시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탈출 3,6).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라고 자신을 초대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느님에게 자신의 두려움과 반론을 제기합니다. 자신은 그 사명에 합당하지 않으며, 하느님의 이름도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도 않을 것이며, 자신의 혀도 무디다고 (…) 대답합니다. 이렇게 많은 반론을 제기합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드리는 모든 기도 안에서, 그의 입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왜?”라는 질문입니다. “왜 저를 보내셨습니까? 왜 이 백성을 해방시키고 싶으십니까?” 심지어 모세오경에는 하느님이 모세에게, 당신을 믿지 않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모세를 비난하는 극적인 대목도 있습니다(민수 20,12 참조).

 

모세는 이러한 두려움과 종종 흔들리는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실제로 모세는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의심이 생길 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럴 때는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모세의 강인함뿐 아니라 이러한 나약함 때문에 그렇다는 게 놀랍습니다. 당신 백성에게 율법을 전하라고 하느님에게서 소명을 받았고, 거룩한 예배의 창시자, 가장 높은 신비의 중재자의 소명을 받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모세는 하느님 백성과의 친밀한 연대의 관계를 그침없이 유지했습니다. 특히 백성이 유혹받고 죄를 지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모세는 항상 백성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의 기억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목자의 위대함입니다. 곧, 백성을 잊지 않고, 뿌리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가, 사랑하는 젊은 주교 티모테오에게 말했던 바이기도 합니다. “엄마와 할머니를 기억하고, 너의 뿌리와 너의 백성을 기억하여라.” 모세는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보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하느님과 친한 친구였습니다(탈출 33,11 참조). 그는 백성의 죄와 유혹에 대해,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유배자로 살 때를 생각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갑작스러운 향수에 젖을 때도 자비심을 느낄 만큼 그들과 친한 친구로 남았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백성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핏줄과 하느님의 말씀에 항구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민수기는 그를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정의합니다(민수 12,3 참조). 모세는 자신의 특권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여정의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집단에 속해 있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모세가 기도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바로 중재기도였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74항). 하느님에 대한 그의 믿음은 백성을 기르기 위한 그의 부성애와 전적으로 동일합니다. 이를 성경은 일반적으로 모세가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처럼, 하늘을 향해, 하느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심지어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세워 하느님과 자신이 지도자라는 것을 거부하는 날에도 모세는 그의 백성을 제쳐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백성입니다. 당신의 백성입니다. 저의 백성입니다.’ 그는 하느님과 백성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아룁니다.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탈출 32,31-3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는 다리이고, 중개자입니다. 하느님과 백성의 중간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백성을 팔아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출세주의자가 아니라, 자신의 집안과 자신의 혈통과 역사, 자신의 백성과 자신을 부른 하느님을 위한 중개자입니다. 바로 다리입니다. “다리”가 돼야 하는 모든 목자들에게 훌륭한 모범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목자를 ‘폰티펙스(pontifex)’, 곧 다리 놓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백성과 부르심에 의해 자신들이 속해 있는 하느님을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이 백성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 저는 제 백성들 안에서 출세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신앙인들이 영성생활 안에서 함양하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이들은 사람들의 결점들과 사람들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짐을 경험하더라도 그들을 단죄하지 않고 거부하지도 않습니다. 중재적 태도는 성인들의 태도입니다. 성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하느님과 그분 백성 사이를 잇는 “다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세는 우리의 변호자이자 중개자이신 예수님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였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77항). 그리고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우리와 아버지 사이의 ‘폰티펙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전구하시고, 우리 구원의 대가인 당신의 상처를 아버지께 보여주시며 중재하십니다. 모세는 예수님의 형상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를 위해 중재하십니다. 

 

모세는 예수님과 같은 열정으로 기도하라고, 세상을 위해 간구하라고, 세상이 온갖 약점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기억하라고 우리를 격려합니다. 모두가 하느님께 속해 있습니다. 가장 추악한 죄인들, 가장 악한 사람들, 가장 부패한 지도자들도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잘 아시고, 모두를 위해 중재하십니다. 세상은 의인들의 축복과 신심기도 덕분에 살아가며 번창합니다. 이 신심기도는 성인과 의인, 중개자와 사제, 주교와 교황, 평신도와 모든 세례 받은 이들에 의해 역사의 모든 시간과 현장에서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바쳐집니다. 중개자인 모세를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난하고픈 마음이 들 때, 속에서 화가 날 때 - 화내는 것은 괜찮지만, 비난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 그를 위해 간구합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출처: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0-06/papa-francesco-catechesi-udienza-generale-preghiera-mose.html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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