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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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지향과 거룩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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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0-02-28 ㅣ No.136399

 


순수한 지향과 거룩한 바람

나는 명성이 널리 알려진

한 수도자를 기억하는데,

그는 노령에 이르러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기 생애를

되돌아보며 슬픈 듯이

"주를 위해서만 행한 선행은

단 하나도 없다.

이 정도로 영적 재보를 잃게 한

자애심은 저주를 받으라"

외쳤습니다.

선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를 잘 행해야 합니다.

잘하기 위하여는 우리가 은총 중에

바른 의향을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순수한 의향에 따라 하느님은

선행에 보답해 주십니다.

알퐁소는 "오직 주를 위해서

하는 행동임을 알아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고 말합니다.

순수한 의향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 선을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A라는 고용주를 위하여

일을 해놓고 B라는 고용주에게

급료를 받으러 가지는 않습니다.

임종중에 있는 수도자로서,

일생을 오로지 하느님만을 위해

일하지 않았으므로

잃어버린 많은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상상키 어려운 혹독한

고통일 것입니다.

슬프게도 자애심은 미묘하게

돌아다니며,

감쪽같이 어디에든 들어가 박힙니다.

매일 나쁜 의향을 버리고,

거룩한 의향을 가져야 합니다.

자애심은 오직 하느님을

위해서만 해야 할 많은 일을

방해하며 망쳐놓고 마는

때가 많습니다.

옳바른 의향은 아주 무의미하게

생각되는 행위까지도

하느님 앞에 가치있는 것이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도직의 선두에 나선 사람과 같은

공로를 획득케 합니다.

가장 무의미한 행동이

모두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빨래, 침상 준비, 오락시간을

즐겁게 지내기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등,

자기 공로의 작은 일까지

열거하고자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지 모르나

24시간 동안 우리 모두를

하느님께 바치면 귀중한 것이

될 일은 많습니다.

하느님을 위해서만 일하고

있는지를 분별하는

첫째 방법은 먼저,

자기가 바란 것을 얻지 못할 때

마음이 산란해지는가

아닌가로 압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만일 하느님을

위하여 했다면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실패를 하여 산만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에게 무엇인가

게으름이 있지 않았나 하고

염려하는 때문일 것입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지향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였다면 실패했다

하더라도 공로는 똑같습니다.

두번째로는 이웃이 한 선을

자기것 처럼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웃위 성공을 자기 자신의

성공과 똑같이 기뻐할 때,

그것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만 일하고

있다는 증거요,

어떤 사람에 의해 하느님께

영광이 돌려지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표시입니다.

선을 행하고자 하는

원의를 갖는 때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나날이

하느님을 위해서만 쓰이도록 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지성,

의지, 마음을 기울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성모님도 다른 주부들과 똑같은

나날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아침에는 기도하셨을 것이고

그리고는 식사 준비,

의류수선, 세탁, 실 만드는 일

등을 하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평범하고,

검소하고 천한 일이라 할지라도

손을 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의향,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있어

성모님과 맞설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올바른 의향의 세번째 표시는

좋은 일만 골라서 하지 않고

순명에 의해 주어지는 일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네번째 표시는

보답이라든가 인정받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하는

원의 외에 다른 것은

버리고 살아야 합니다"

데레사 성녀는 말하였습니다.

올바른 의향은 우리 행위를

존귀한 것으로 만들고,

하느님 앞에 매우

공로있는 것이 되게 합니다.

우리는 온전히 이탈해야 합니다.

성녀 마리아 말가리따가

두번째 대피정을 하게 되었을 때,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열심히 준비하여,

피정에 들어갈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를 알고 장상은 그에게

극기를 시킬 생각으로 피정이

시작되기 직전에 불러내어

다음과 같은 명령을 했습니다.

"말가리따도 알고 있듯이

당나귀나 말이 점잖게

목장에 있지 않고,

언제나 정원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대로 놓아두면 양배추르

짓밟아버릴 겁니다.

피정 동안 당나귀나 새끼말을

감시하는 일을 맡기겠습니다."

가엾은 말가리따 마리아

엿세 동안 성당에서

정원으로 몇 번을

뛰어나갔는지 모릅니다.

마지막에는 주님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성녀가 정원에 있는 당나귀를

몰아내기 위하여

또다시 나가려고 하자 주님은

"나와 함께 여기 머물러 있거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상이 성녀를 불러내어 꾸짖자,

"그렇지만 주님께서 야채는

하나도 짓밟히지 않으니

장상은 이 이상한 일을

확인하기 위하여 나갔습니다.

애덕의 또 한가지 표시는

성성에의 열망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미지근함을 싫어합니다.

미지근함에도 두 가지

성질의 것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초조할 때,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였을 때,

유혹을 당할 때,

기도할 때 쉽게 유혹을 느끼는 것,

또는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

등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콘트롤 하면서

자기를 단련하면 됩니다.

이것과는 달리,

피할 수 있는 미지근함은

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로 연관된 잘못을 고의로

계속 범하는 미지근함 입니다.

고의로 미지근함에 빠지고

마는 것은 영적 생활초기에는

보이지 않고,

수련기나 서원 초기에도 드물며

제법 영적인 일이 진전된 후에

생기는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쉽게 산만해지므로

기도가 어떻게 생각될지도

모르겠으나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상상이나 생각 때문에

산만해지고 여러 가지 것에

마음이 쏠릴 때,

그 사람의 미지근함은

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완덕에 도달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러한 원의는 우리를 높이

날아오르게 하는

날개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원의에 그치고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그 원의는 참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간적인 충동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살레시오의 성프란치스코는

곧잘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자기의 생활,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와 무관한 원의를 갖는 것은

나로서 승인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신심업도 승인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로써 영혼을 약하게 하고,

하느님의 뜻을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원의가 필요합니까?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원의는 하느님께 대한

사라의 행위요,

원대한 희망을 품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많은 원의중에서

아주 조금밖에 실현하지 못합니다"

고 말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음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만여 개에 달하는 알을 낳지만

이 알 중에 부화되는 것은

아주 소수입니다.

그럼에도 대양은 물고기로

가득합니다.

선의의 사람들이 세우는

결심들이 잘 실천된다 해도

그것은 점차로 그 사람을

성화시켜 갑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고자 하는 대망을 품고 있던

한 신학생이 사제서품을

받은 후 얼마 안 되어

결핵에 걸려 오랫동안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어떠십니까?" 하고 물으면 "

주께서 내 원의를 칭찬해주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답하였습니다.

동년배의 사제들이 열심히

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선을

알고는 기뻐하며,

그들을 축복하고 자기의 고통을

바치면서 그들을 도왔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큰 원의를 가져야 합니다.

성녀 데레사는

"성인이 되고자 하는 원의 위에

다시금 많은 원의를 갖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풍부히

은혜를 베푸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악마는 가끔 우리를

유혹하여 성인들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은 교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를 성화시키기 위하여

하느님은 우리의 좋은 결심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매일 조금씩 진보하겠다는

맹세는 훌륭한 결심입니다.

그러나 결심을 세우면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일을

내일까지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지키지 못할 결심을

세우는 사람도 있으나

오직 하나의 결심만을

세우고 하나의 의무를

잘 이행하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하느님은 계획만으로

만족하시지 않습니다.

대망을 품고, 견고한

결심을 세우고 애덕을

더 잘 실천할 수 있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애덕송을 자주 염합시다.

믿음 희망 사랑에서

-복자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적 가르침-

성바오로출판사, 198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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