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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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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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12-16 ㅣ No.134597

 


2019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민수 24,2-7.15-17

그 무렵 2 발라암은 눈을 들어

지파별로 자리 잡은 이스라엘을

 보았다. 그때에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4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5 야곱아, 너의 천막들이,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6 골짜기처럼 뻗어 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나무 같구나.

7 그의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고

그의 씨는 물을 흠뻑 먹으리라.

그들의 임금은 아각보다 뛰어나고

그들의 왕국은 위세를 떨치리라.”
15 그러고 나서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16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복음 마태 21,23-27

23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우리나라와 해외, 성당이든

일반 회사이든 가리지 않고

다니며 강의를 한 지 벌써 19년이

되었습니다. 강의했던 곳에 또 가서

강의하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이

새로운 곳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를 찾는 곳이 많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동시에 부담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누구는 19년 동안 강의를 했으면

이제는 강의하는 것이 익숙하겠다고

하지만, 항상 처음 시작할 때에는

 여전히 설레고 긴장도 많이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말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마 강의할 때

나쁜 짓을 많이 하라고, 자신을

바꿀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시간

 가는 대로 대충 살라고 말하겠습니까?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특히 주님 마음에 드는

삶에 대한 변화입니다.

그런데 이 말에 힘이 담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렵고,

 부담감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어느 선배 신부님께 이런 부담감을

 이야기했더니, “그러면 하지 마!”

라고 쉽게 말씀하십니다. 힘들게

살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살라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한때는 신부님

말씀처럼 강의를 더는 하지 않을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편하고

 쉬운 길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강의를 통해 변화되는

나 자신을 보면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렇게 부족한 나를 쓰시려는 것을

 나의 편함만을 생각하면서

 막아서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투정 부리지 말고

긍정적 효과를 바라보면서

더 기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안 하면 쉬운 일, 반대로 하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어려운 일도 할 수 있는

용기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리사이들은 위대한 기적이라

불러도 좋은 일들을 이미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하며 예수님께

누구의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기적을 많이

보고, 또 많은 대화를 했어도

주님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질문에

“모르겠소.”라고 답했던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것을 보여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바리사이들의

모습입니다. 자신을 구원할

예수님이 앞에 있어도 눈을

감고 있고, 그분을 받아들일

 용기도 없기에 구원이라는 가장

선물을 받지 못합니다.
쉽고 편한 길을 쫓아서는 안 됩니다.

특히 주님을 따르는 길은 절대로

 쉽지도 또 편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나 자신에게 필요한

길이고, 가장 많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길이기에 반드시 선택해야 할 길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의심과

공포가 생긴다. 행동하면

자신감과 용기가 생긴다.

두려움을 정복하고 싶다면

 집에 앉아서 생각을 하지 말고,

나가서 바쁘게 움직여라.

(데일 카네기)

소문

한 방송국에서 방청객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제작진은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과 함께 20대와

4~50대 방청객 각 100명을

스튜디오에 초대해서 소문 전파

실험을 했습니다. 심리학 강의를

 들으러 온 줄로만 아는 방청객들에게

 따로 사전고지 없이 ‘어느 연예인이

자살했다’라는 부정적인 소문과

 ‘어느 연예인이 아이를 입양해

키우기로 했다’라는 긍정적인

소문을 전달하고 소문이 퍼져나가는

속도를 지켜보았습니다.
실험 결과, 20대는 구성원 81%가

소문을 들었고 86%가 소문을

전했습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소문은

구성원 중 18%만 들었다고 대답했고,

 이 소문을 전달한 이들도 4%에

불과했습니다. 4~50대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나쁜 소문 84%,

좋은 소문 16%의 비율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렇게 좋은 소문보다

나쁜 소문이 더 빨리, 더 멀리,

더 넓게 퍼져 나갑니다.

인터넷에 소위 ‘가짜 뉴스’라는 것은

다 나쁜 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쉽게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소문을 전달하는 사람이

될지를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탈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의적인 소문은 한 번에 3명을

죽일 수 있다. 소문을 내는 사람,

소문을 듣는 사람,

소문에 오른 사람이다.”

(예수님의 강생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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