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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한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를 답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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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구 [hanikoo] 쪽지 캡슐

2019-10-31 ㅣ No.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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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한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를 답사하였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한 다산 유적지를 20181023일 수요일에 답사(踏査)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 사도 요한(丁若鏞, 176285(1762년 음력 616) ~ 183647(1836년 음력 222), 북경에서 1784년 초에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온 매부 이승훈에게서, 1784년 하반기경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형제 중에 세례를 제일 먼저 받았습니다. 생가와 사후에 건축한 건물들을 경기도청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다산의 4형제 중 큰형 정약현(丁若鉉)을 제외한 3형제가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입니다. 3남 복자(2014816일 시복, 124위 시복자 중의 한 사람) 정약종 아우구스티노(丁若鍾, 1760~ 180148) 1801년 신유박해 때에 순교하였고, 그의 맏아들 정철상 (丁哲祥)카를로도 아버지와 함께 순교하여 복자로 시복되었습니다. 그의 둘째 아들 정하상 (丁夏祥)바오로(1795~ 1839922) 그의 어머니 유소사(柳召史 1761~ 18391123) 체칠리아와 그의 누이 정정혜(丁情惠) 엘리사벳과 함께 1839년에 순교하였고, 1985년에 시성되어 103위 성인 중에 이 세 사람은 한 가족입니다.아내와 아들과 딸이 먼저 시성이 되고 아버지 정약종과 아들 정철상은 나중에 시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약현의 처남 이벽(李蘗 세례자 요한)과 사위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Alexis))이 천주교 신자인 것을 감안하면 정약현은 세례는 안 받았지만 신심은 간직한 분인 것 같습니다.

 

http://blog.daum.net/hanikoo/11862408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가 만든 천주교 넝쿨 : 민병일

중앙일보 [J플러스] 삶으로 보는 역사 2-17

정씨 형제가 만든 천주교 넝쿨

입력 2016.08.16.

 

이 위의 글을 읽으면서 정약용 4형제가 한국 천주교의 뿌리가 되어 넝쿨이 무성하게 퍼져나가는 데 크게 기여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산 유적지 건물 안에서,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쓴 책의 목록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주역에 관한 책을 제일 많이 지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둘째형 정약전은 호가 손암(巽菴)입니다. ()은 주역에서 많이 쓰는 글자이므로 주역의 대가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못난 작은이도 주역을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입니다. 201178일에 단체로 흑산도 관광을 하였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할 때입니다. 희한하게 우리 일행이 가는 곳에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회장 부부가 덕을 많이 쌓아 비가 피해간다고 생각을 하였고 부부를 칭찬하였습니다.

그 후에 다른 기도를 할 때에, 예수님께서, 정약전의 유배지 흑산도에 네가 갔을 때에 비를 피해준 것은, 두 사람 다 주역을 공부하여 신자가 되었으므로, 너를 위하여 비가 피하여 가도록 한 것이라고 느낌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의 블로그 http://blog.daum.net/hanikoo/11860943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 선생님 추모기도. 참조)

 

주역은 점을 쳐서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입니다. 점을 칠 때에는 정신을 최대한으로 집중합니다. 저는 동전으로 점을 쳤습니다. 결가부좌를 하고 두 손을 포개어 위로 하여 허벅지 위에 놓고 정신을 집중합니다. 두 손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면 동전을 두 손안에 넣고 흔들어 점을 칩니다. 저의 블로그 명상법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치유은사를 받은 신부님의 찬양치유미사에 참석하였을 때에 각자가 아픈 곳에 손을 대라고 말하십니다. 신령한 노래 말을 반복하자 성령이 내려, 저의 몸의 아픈 곳에 머물러 주시어 그 곳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경험을 한바 있습니다. 따뜻해지는 것 뜨거워지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주역점도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느님의 영(spirit)이 작용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저는 주식시세를 예측하는 주역 점을 많이 치면서 정신 집중 훈련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훈련으로 신자가 된 후에 묵상을 잘하여 성령님이 저에게 강림하여 주시었습니다.

 

주역의 대가인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가 묵상을 잘하여,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님이 강림하여 주시어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주역에 깊이 빠질수록 창조주 하느님이 계신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저는 토정비결이 저에게 잘 맞으므로 주역에 관심을 가졌고, 주역을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창조주 하느님이 계신다는 믿음이 점점 굳어져서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토정 이지함 선생은 창조주 하느님이 사람을 다스리는 질서와 법칙을 알아 깨달아, 음력 생년월일로 수리법(數理法)을 스스로 만드신 동양에서 최고수준의 주역의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주역을 공부한 사람이 주역 점을 못 친다면 공부의 성과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주역 점을 쳐서 점괘를 잘 해석하여야 적중률이 높아집니다. 정약용 선생께서 지으신 주역사전(周易四箋) 24권 은 주자의 주역본의(周易本義)에 근거를 두고 주역사법(周易四法)을 풀이한 책입니다. 역학서언 [ 易學緖言 ]은 평론집으로 중국의 주역 학자들 17명이 쓴 책에 대하여 각각 평가를 하였고, 복서통의(卜筮通義). 고대 복서의 의의를 밝히고 있고  주역답객난(周易答客難)은 가상적인 객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역리의 문제를 해명하였습니다. 자산역간(玆山易柬)은 흑산도에 유배되어 있는 정약용의 형 약전(若銓)과 문답한 역리의 내용입니다. 다산문답(茶山問答)은 문답의 형식으로 역리를 해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톨릭 신자가 된 후에, 성령님이 저에게 강림하여 주시는 은혜를 받은 후부터는 주역 점을 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제가 고통을 받을 때에, 특히 지적측량 소송을 당한 피고로 12년 동안 억울하게 고생을 하자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으로 또는 느낌으로 가르쳐 주시었고, 담당 판사를 다스려 주시어 승소하게 하여 주셨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성령님께서 많이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모든 행위를 사람의 능력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반드시 예언자를 선택하여 먼저 예언을 하여 주십니다. 주역 점은 단기 예측이지만 예언은 장기 단기 모두를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신자는 주역 점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역의 원리도 창조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다스리시는 질서와 법칙을 알아 만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주역을 깊이 연구하여 단기 예측을 잘하여 선용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 신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주역이 학문으로 계속 존재하도록 허용할 것입니다. 신명기에 언급한 점은 주역보다 아주 낮은 차원의 점술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동방박사 점성가들을 칭찬하였습니다. 정신집중훈련을 하여 묵상을 잘하는 것이 성령을 받는 빠른 길입니다.

 

 

 

저의 11대 조부 윗분부터 남인에 속하였고, 12대조 한병성(韓秉成,1709-1781)은 진사가 되었으나 4색 당파싸움에서 패하여 벼슬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정약용 정약전 윤지충 등과 비슷한 연대에 살았으므로, 13대조부(1729-1796)의 부인이 나주 정씨인 것을 감안하면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저의 증조할아버지의 부인이 풍산홍씨입니다.근래 까지 남인끼리 결혼을 한 것이 입증이 됩니다. 비문을 보면 정약용 선생의 부인이 풍산홍씨 입니다. 

 

 

 

 

다산 생태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팔당호 명경지수.

명경지수를 바라보는 것은 정신집중에 도움을 줍나다.

 

주역사전 [ 周易四箋 ]

요약 : 주자의 주역본의(周易本義)에 근거를 두고 주역사법(周易四法)을 풀이한 책.

구분 ; 필사본, 주역사법 풀이서

저자 : 정약용

시대 ; 1808

소장 : 규장각

 

필사본. 2412. 정약용(丁若鏞) . 1808(순조 8) 간행. 규장각 도서. 1804(순조 4) 주역을 주석하여 갑자본(甲子本)을 지었으며, 1805년 갑자본의 미흡한 점을 보완, 을축본(乙丑本)을 지었고, 1806년 병인본(丙寅本)을 펴냈다.

 

이어 1807년 이학래(李學來)에게 병인본의 궐오(闕誤)를 바로잡게 하여 정묘본(丁卯本), 1808년 다시 정묘본의 정밀치 못한 사리(詞理)와 그릇된 상의(象義)를 바로잡아 무진본(戊辰本)을 완성시켰다.

[네이버 지식백과주역사전 [周易四箋]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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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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